김승일 <재미의 발견> 리뷰
<재미의 발견>
책 제목에 자꾸 눈길이 갔다. '재미'를 찾고, 실행하며 사는 인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그 재미를 발견하도록 안내하는 책이라면 분명 매력 있는 내용이 담긴 책일 것이다. 그래서 책을 신청하고 받아 읽게 되었다.
처음 저자 김승일 님을 브런치에서 만났다. 책을 읽다 보니 예상과는 달리 아들뻘 되는 문화부 기자 출신의 젊은 청년임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관심 있는 주제인 '재미'를 화두로 주변의 뜨는 각종 문화 콘텐츠를 분석해가는 전개 방식이라 편안하게 읽혔다. 역시 청년답게 쿨하게~ 직설적으로~ 연관자료를 빗대어 재미의 요소를 제시해주니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재미의 발견을 이야기하는 책이니만큼 당근! 재미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재미있는 콘텐츠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음의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1. 특이(特異) : 보통 것이나 보통 상태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다름
2. 전의(轉意) : 생각이 바뀜, 의미가 바뀜
3. 격변(激變) : 상황 따위가 갑자기 심하게 변함
이러한 '특이, 전의, 격변'(이하 '특전격'으로 표기)은 시청자를 당혹하게 하고 거기에 집중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끄덕여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보았을 영화 <기생충>을 제시하면서 특전격을 찾아 대입해보는 재미를 느꼈다. 생후 1년 된 어린아이의 '까꿍놀이'에서도 이 원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새삼 발견하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손주의 근래 모습을 통해 여실히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특이함'이 떠오르는 콘텐츠를 살펴보았다. 그중 내가 처음 접하는 가수 '빌리 아일리시'가 인상 깊었다. 일부러 유튜브 검색을 해서 비디오 감상을 했다. 한두 번만 시청했는데도 그 강렬함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 그건 과연 특이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밖에 '전의'나 '격변'이 담긴 콘텐츠들을 주욱 제시하는 대로 읽어 내려가면서 색다른 재미가 부가되었다. 그 이유는 처음으로 듣고 이해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세대 간극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특전격'을 만드는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나와 다른 존재를 만나고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도 있겠지만, 독서를 하거나 다양한 콘텐츠를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요즘은 콘텐츠가 개개인의 입맛에 맞게 큐레이션 돼 나오는 경우가 많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콘텐츠만 보기 쉽습니다. 저와 인터뷰한 김영란 전 대법관과 스타강사 김미경은 그래서 일부러 종이 신문 등 아날로그 콘텐츠를 구독한다고 했습니다. SNS에서 영감을 쏟아내는 다양한 인플루언서들을 팔로우하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가진 박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색다른 시각을 배우고, 어떻게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울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움은 다다익선입니다." (280쪽)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소위 요즘 힙한 소재의 방송 콘텐츠들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요즘의 시대 트렌드를 모르고서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배우는 자로 살아가기"가 내 여생의 모토이기도 하니까~ ^^
얼마 전 독서동아리에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나눔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때 한 회원이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 최고의 만능 엔터테이너 유재석은 운이 좋은 걸까요? 아님 능력이 좋은 걸까요?"
이와 관련하여 아주 적절한 답변을 찾아낸 듯해서 무척 반가웠다.
"전 출연자를 관찰합니다. 미세한 움직임, 표정의 변화를 주목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특징을 뽑아내는 게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재석 <범인은 바로 너> 제작 발표회 발언)
<놀면 뭐하니>와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유재석의 화려한 초식을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그와 만나는 순간 모두 웃기는 사람으로 변합니다...(중략)... 어떤 캐릭터든, 어떤 장르이든, 어떤 콘셉트이든 거기에서 유재석은 창의적인 웃음을 뽑아냅니다. 그 창의성이 바로 유재석을 역대 코미디언 중 가장 긴 전성기를 누리게 한 원동력입니다. (282쪽)
유재석은 타고난 능력에 겸손함과 성실함까지 겸비한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또한 김승일 작가는 한국에서 특이하지도, 전의가 일어나지도, 격변이 있는 것도 아닌 교양 프로그램이 살아남는 슬픈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100만 부 이상 팔린 채사장의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저의 스승이신 EBS 오정호 PD 님은 "한국인은 유독 교양 결핍이 강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도전 골든벨>이나 <우리말 겨루기> <알쓸신잡> <라틴어 수업> 같은 교양 콘텐츠가 인기 있는 이유,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들이 흥행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한국인 특유의 교양 결핍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양 결핍이 강한 이유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지속된 굉장한 학습열은 성인이 돼서도 관성처럼 이어지지만, 곧 여러 가지 이유로 가로막힙니다. 보수적인 인간의 뇌는 불안해지고, 그 관성에 집착하게 됩니다. 잠을 방해하면 더욱 잠이 오고, 먹지 못하게 하면 배가 고픈 것처럼, 학습이 가로막히는 순간 학습은 결핍이 됩니다. 그래서 1시간 30분 정도 쉬는 시간을 이용해 TV를 볼 때조차 자신의 교양을 채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372-373쪽 중)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정말 깊이 공감이 되었다. 60이 넘어 침침해진 눈으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투영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도 이를 다루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에 덩달아 동병상련(?)의 애틋함으로 가슴이 짠해지기도 하였다.
"젊은 나이에 결혼하셔서 가족을 먹여 살리려 일만 하신 제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워킹맘으로서 지금의 저보다 더 시간이 없었을 제 어머니께서 잠시 짬을 내서 보는 TV에는 늘 누군가가 강연하는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373쪽)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입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고, OTT 플랫폼들은 세계적인 기업이 되어 활발히 경쟁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아프리카 TV 등 다양한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시청자를 당혹하고 집중하게 하는 이들은 크리에이터라 불리며 많은 돈을 법니다. '재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특전격과 그 증폭제를 만드는 힘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습니다.”
“재미를 만드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민해져야 합니다. 어떤 콘텐츠가 당신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로 그 지점에서 '특전격'을 비롯한 공식들을 대입하며 감을 잡아가야 합니다. 여러 번 타보고 넘어져도 봐야 비로소 자전거를 탈 수 있듯, 이 공식들은 처음 감을 잡기란 쉽지 않지만, 한번 체득하면 그 뒤로는 잊어버리지 않고 더욱 탁월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재미의 근원'을 인지한다면 갈수록 콘텐츠를 분석하는데도, 그리고 콘텐츠를 제작하는데도 급이 높아질 것입니다.” (392쪽)
인생의 격변과 콘텐츠 속 격변의 차이,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와 없다의 차이, 내가 직접 겪는 것과 간접 경험과의 차이... 그 엄청난 차이는 바로 '결과'에 있을 것이다. 내 삶에 지장을 주지 않으리라는 확신 때문에 잠시 지나가는 격변 - 불안과 초조를 재미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 재미를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기쁨!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성정 이리라!
이 책을 읽는 내내 20여 년 전 교회에서 예배용 스킷드라마를 제작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동안 묻어두었던 창작 욕구가 꿈틀댔다. 이것도 내게 작은 ‘격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뭉툭한 일상에 휘리릭~ 바람을 불어넣어 주는 김승일 작가의 담론 <재미의 발견>
자신이 속한 틀을 벗어나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재미진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책임에 틀림없다.
김승일 작가는 현재 브런치에서 <아침 경제 기사 읽기> 매거진을 연재하고 있다.
온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이 시대의 경제 사정'을 그의 시선으로 콕 집어내어 정리하는 내용이 유익하고 재미있다.
이렇게 성실히 차근차근 주변에서 특, 전, 격을 찾아내는 그에게 늘 새로운 재미거리가 쥐어지게 될 것이다.
그의 다음 화두는 무엇일지.. 적잖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그의 책 <재미의 발견>을 내려놓으며 또 하루를 마감하는 스스로에게 '사라짐의 미학'에 대한 감동을 되새겨보기로 한다.
곧 사라질 저녁노을이 아름답듯 사라짐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무언가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싶다면 그것을 곧 꺼질 듯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이게 하십시오.
감동적인 영화의 끝에는 반드시 사라짐이 있습니다.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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