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연히 독서동아리 회원의 북리뷰를 보고 검색을 해보았다.
지역 도서관 내 어디고 대출 중!
딱 한 군데 ‘제2회 한국 과학 문학상 수상작품집’ 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외에 <관내분실>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대상을 차지한 이력이 있었다. 궁금하던 차에 얼른 대출해 후다닥 읽어보았다.
최근 들어 이런 류의 SF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중국 출신 미국인 켄 리우의 신작 ‘싱귤래리티’
매우 독특하면서도 강렬하고 환상적인 소재와 메시지 때문에 책을 덮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이야기들이었다.
김초엽의 두 단편소설 역시 그랬다.
1993년생 현재 나이 28세의 젊은 작가 김초엽은 포스텍(포항공대) 화학과에 입학해, 생화학 석사까지 이수했다. 작가인 어머니와, 음악가인 아버지인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10대 후반엔 3급 청각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인 2017년 제2회 한국 과학 문학상에 무려 2편의 단편이 대상과 가작을 받으며 등단하게 되었다.
지금 난 그때 발행된 책을 읽은 것이다.
두 작품은 SF소설이면서도 일반 소설과 다름없는 인간의 정서와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가족애’였다. 20대 어린 여성이 과학적 상상으로 만들어낸 미래 세계 - 그 안에서 어쩜 이리도 진중하게 가족애를 다룰 수 있는지! 감탄할 따름이었다.
“다른 세계를 무대로 글을 쓰려는 사람은 현실을 무대로 쓰는 사람보다 더 논리적이어야 한다.”
“잘 모르는 개념은 함부로 소설에 넣는 것이 아니다.”
과학소설 수상작을 뽑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보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작가 스스로 과학적 소재에 대한 ‘개념 정리’가 되어있어야 이런 SF소설을 쓸 수 있고 독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작가 김초엽은 상상을 현실처럼 내다보기 위해 많이 공부하고 고민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듬직하고 반듯한 청년작가로 여겨진다.
“이제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거라네. 내가 여전히 동결 중인지, 사실 이 모든 것이 몹시 추운 곳에서 꾸는 꿈은 아닌지,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정말로 나를 영원히 떠난 게 맞는지, 그들이 떠난 이 후로 100년이 넘게 흘렀다면 어째서 나는 아직도 동결과 각성을 반복할 수 있는지. 왜 매번 죽지 않고 다시 깨어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많이 세상이 변했는지.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다시 만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럼에도 잠들어 있는 동안은 왜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왜 나는 여전히 떠날 수 없는지...”
소설 속에서 주인공 안나의 이 고민은 과학이 발전한 미래 세계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게 될 인간의 원초적 고민이다. 그리고 그녀가 뒤늦게 깨달은 진실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이어서 허망하기까지 하다.
결국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주어진 삶을 살 뿐이라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 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좋은 소설이 멋진 소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계와 삶과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고민이 필요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연결될 수 있고 어느 지점에서 공감하는가. 이 작품은 마음속 깊은 곳에 반쯤 묻힌 당혹감과 절망을 선보이고 독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 결론이 가늘면서도 질긴 현이 되어 읽는 이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작가가 글을 치밀하게 설계한 덕분이다.” - 김보영 소설가
그렇다!
작가는 안나의 차분히 느릿느릿 이어지는 고백으로 독자 모두를 끄덕이게 했다.
무심하게 바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깨어있는 만큼만 살아 있었다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렇게 멋진 소설을 쓴 그녀의 미래를 주목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