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 학교에 재직 중인 아끼는 동생이 불쑥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고문을 전했습니다.
<**학교 초등학교 연극 협력강사모집>
초, 중학교 및 기타 기관에서 연극과 영어를 지도한 지도 10년 이상 지나간 시점이라 새삼스레 여겨졌습니다. 해당 파일을 열어 모집 요강을 훑어보고 나서 이렇게 답변을 보냈습니다.
“내게 꼭 맞는 일이긴 하네요. 내 나이가 걸림돌이 아니라면.. 지원해 볼게요!”
노트북을 열어 이전에 시행했던 교육연극에 대한 수업자료와 기록들을 쭈욱 열람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학생들과 더불어 연극대본 선정에서부터 대본연습, 리허설 및 공연에 이르기까지의 온 과정을 편집 제작한 동영상물을 보면서는 가슴이 울컥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기억의 저장창고 한쪽 구석에 처박아두고는 외면하고 있었던 당시 연극지도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흥분과 기대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도대상이 이전과는 다른 ‘인지장애가 있는 초등학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가면서 새롭게 도전해 볼 만한 일이라 여겨졌습니다.
전 어렸을 때 한동안 ‘말더듬이’라 놀림을 받았었습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말하려면 긴장이 되어서 첫 말이 나오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ㅇㅇ아아아~안녕ㅎㅎ하ㅅ에ㅇ요~”
이러는 나를 주변에서 참고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짓궂게도 말 더듬는 나를 흉내 내며 깔깔댔지요. 난 부끄럽고 잔뜩 움츠러들어서 그만 입을 꼭 다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수업 중 주어진 책을 낭독하거나 준비한 웅변을 발표할 때는 말을 더듬지 않았습니다. 나 스스로도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전 예비하고 연습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또박또박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 후로 ‘또박또박 책 낭독하기’는 나의 장끼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이것이 바로 ‘연극 행위’였던 것입니다. ‘연극’을 통해 당시 나타났던 나의 인지장애 현상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후 자연스레 연극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연극동아리활동을 열심히 했고, 졸업 즈음해서는 당당히 국립극단 배우모집에 지원, 선발되어 연수과정을 밟기도 하였죠. 그러나.. 당시 여배우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못 이겨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학교가 추천하는 중등교사로 전환했고.. 그나마 결혼을 앞두고는 교사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는 남편 따라 미국에서 7년간 지냈던 덕에 귀국 후 초, 중학교 기간제 및 방과 후 영어강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유독 영어발음이 좋아서 영어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어강사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 또한 기본적으로 ‘모방하기’에서 비롯되는 연극적 재능의 발로였다고 여겨집니다.
한편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에서 예배를 돕는 스킷드라마를 담당하다 발전하여 교회극단을 창단, 단장으로서 섬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부족함을 느껴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극교육을 공부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대학원 재학 당시 마침 분당 **중학교에서 시행하는 성남교육청 지원 연극프로그램에 담당 지도강사로 선발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학위 논문의 실제 연구자료로서 아주 훌륭한 기회였던 거지요. 정말 열정을 다해 학생들을 지도하며 다양한 교내, 외 활동과 공연 제작과정을 더불어 해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해당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정리할 즈음 급작스런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 한 명을 잃게 되었고.. 이와 관련한 충격으로 나의 제반 활동들이 올스탑되고 말았지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슬픔 및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학교 및 교회에서의 활동을 접었고, 수년이 지나 다시 시작해 보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당시의 두꺼운 졸업논문 파일은 완성을 코앞에 둔 채로 굳게 닫혀있습니다..
**학교 연극소통강사 지원은 내게 주어진 인생, 마지막 소명의 기회라고 여겨집니다.
오랫동안 접어두었던 ‘시청각훈련사역 (Audio-Visual Mission)’에 대한 꿈과 비전이 새로운 형태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비록 나이 들어 지도 대상 초등학생들의 할머니 뻘 되는 연령이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애정과 자비의 마음으로 그네들을 알아가고 다독이면서 아름답게 세워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평소 부단히 다양한 지적, 신체적 활동하며 자기 관리를 잘하고 있는 덕분에 신체 및 정신 나이는 청년 못지않다고 자부합니다.
지원서를 작성하기 전, 인지장애가 있는 초등학생들의 특성을 탐구해 보았습니다. 간단하고 명확한 언어를 천천히 사용하고, 다양한 시각적 자료를 활용하며, 비언어적 몸짓과 표정을 더해 인내심을 가지고 그네들과 일관성 있게 꾸준히, 반복적으로 소통하는 훈련을 해나간다면.. 더욱 확실하고 구체적인 지도방향이 잡혀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매주 Trial & Error의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만을 위한 창의적 연극소통 프로그램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소풍 가기 전의 어린아이처럼 ‘기대감’과‘설렘’을 느껴봅니다.
오랫동안 가슴 한구석에 처박아놓고 잊고 있었던 나의 비전과 소명의식이 되살아나서 그런가 봅니다.
내가 믿는 그분이 당시 내게 주셨던 새 이름 *아이얼로 나를 소환하여 새로운 소명의 자리에 다시 불러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감당해 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얼(Eyear): 어린아이의 영혼(아이의 얼)을 가지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eye+ear) 세상을 알아가고 깨우친다는 의미
2025년 6월 24일
작성자: *** (서명 또는 인)
어제 저녁 제출한 자기소개서이다.
한참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도전해 보았다.
설사 강사로 채택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놓아버렸던 꿈을 다시 소환시켰다는 데 의미를 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