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2장
글을 쓸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포인트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첫 문장'이라는 생각이다.
대개의 경우 첫 문장이 주는 임팩트에 따라 전체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유발되고, 밑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특별히 인문 사회 과학 역사서일 경우 첫 문장이 확실하면 대개 본문 내용도 그에 따라 잘 정리되어있기 마련이다.
'본문'까지 만족스러우면 하나 더! '마지막 문장'을 주목해본다.
작가의 확실한 소신이 담겨있다면 퍼펙트!!
이런 글을 읽고 나면 독자로서 희열을 느끼게 된다.
왜? 작가와 하나가 되었다는 일체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루할 수도 있는 긴 글을 인내하며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 조사해가며 기울인 노력의 시간과 수고들이 불과 몇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이 글에 응집되어 있다니...
그걸 생각하면 황공무지한 행복감에 젖을 수밖에 없다.
나도 여기 이렇게 책의 내용을 정리해 나의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책상머리에 앉아있지만... 이것조차 쉽지 않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만만찮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간다. 우선 책을 아주 천천히 메모해가면서 읽어야 하고, 간간이 참고자료를 검색하고, 재독을 거듭해야 한다.
텍스트가 내 머릿속에 정리되어있지 않으면 글쓰기가 무척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얕은 나로서는 거의 하루 온종일을 투자해야 하나의 글이 간신히 어설프게나마 완성된다.
그러니까...
이 글을 '로마제국 쇠망사의 요약본'이라고 칭한다면... 조금은, 아니 매우 섭섭하다. ㅠㅠ
기번이 탐구한 로마제국의 역사를 나 스스로 소화해, 나의 시각으로 풀어 써내려가는 것이기에 엄연한 창작글이다.
연재 글의 제목처럼 <아이얼의 로마제국 쇠망사 이야기>인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첫 문장'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슬쩍 내 심정을 토로했다. 저자의 수고에 힘입어 나 자신을 슬며시 기대고 얹혀본 것이다.
"기번 오빠~ 괜찮지요? ㅎㅎ"
"로마 제국을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정복의 신속함이나 광대한 영토 때문만은 아니다." p37
아까 서두에 언급한 바로 그 '첫 문장'이다.
1장의 내용을 함축하고 2장에서 다루어질 것들을 암시하는 아주 간략한 문장이다.
이어지는 부차적 설명은 다음과 같다.
"트라야누스와 안토니누스 황제들 시대의 순종적이었던 속주들은 법에 따라 통일되고 예술로 치장되었다."
"로마 정부의 일반적인 원칙은 현명하고 단순하며 이로운 것이었다." p37
그렇다면 저자가 뽑아낸 '위대한 로마제국을 있게 한 현명하고 단순하며 이로운 것들'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충 7가지로 구분해보았다.
로마 황제와 원로원의 종교수용정책은 계몽된 국민과 미신적인 국민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비록 각 계급마다 종교적 개념의 포인트는 달랐지만 저들의 입장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행위는 제국의 화합을 이루는 데 한몫을 하였다.
저들은 종교적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에 주목했다. 당시 학자들은 종교가 세속적인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표면적으로 각 속주의 종교를 인정해주었고, 가치를 존중해주었다. 심지어 저들의 공공 축제를 장려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관용과 화합의 수용정책으로 인해 각 지역의 종교는 당시 로마 제국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강력한 기반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기번은 과거 그리스 몰락의 원인을 저들의 '순수 혈통 유지'에 대한 고집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로마의 포용정책을 다음과 같이 옹호하고 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외래의 피를 섞지 않고 시민의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고자 한 편협한 정책 때문에 더 이상 번영하지 못하고 쇠퇴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로마는 공허한 자존심 대신 야망을 택했다. 로마인들은 노예나 이방인, 적이나 야만족 모두에게서 장점과 미덕을 취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사려 깊고 영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p37
"현명한 황제들은 여전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교훈에 따라 로마인의 이름이 갖는 명예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한편, 사려 깊고 신중하게 로마 시민권을 확산시켰다." p37
이렇게 로마 시민권을 적절히 확산 보급함으로써 당시 베르길리우스, 리비우스, 키케로 등 위대한 위인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로마 시민권 취득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고 충족시키면서 로마의 안전과 번영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그들은 군사적 진전과 함께 라틴어가 통용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 서방과 동방 속주의 차이를 보게 된다. 정복자의 언어 수용을 거부한 동방 속주와 달리 서방 속주들은 라틴어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라틴계 속주민들에게 시민권이 더 쉽게 부여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참고로 트라야누스 황제가 바로 에스파냐 출신이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크게 라틴어 권역과 그리스어 권역으로 나누어졌다. 여기에 시리아와 이집트 언어를 덧붙일 수 있겠다. 이 두 속주국들의 자국 언어에 대한 고집은 스스로 진보를 막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것이 찬란한 고대 이집트 문명을 꽃피우던 나라가 더 이상 발전을 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당시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전 제국에 걸쳐 서로 다른 분야에서 동시에 사용되었다. 그리스어는 학문 언어로, 라틴어는 사법과 행정 언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당시 교육받은 로마인이라면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Bilingual 이중언어 사용자였다. 이는 우수한 두뇌로 훈련될 수 있는 환경 여건이 되었을 듯하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당시 노예제도가 어처구니없는 인간 천대의 모델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 노예제도를 활용하여 인구를 증식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발판으로 삼았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당시 노예는 재산으로 간주되었다. 부유한 원로원 의원의 집에는 모든 종류의 학문과 기술 분야에 정통한 전문직 노예들이 있었고, 그밖에 사치나 관능, 노동 기구 등으로 취급된 노예의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일례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의 한 해방노예에게 가축으로 분류되던 노예 4116명이 남겨졌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노예는 인구수에 포함시키지 않았기에 정확한 숫자를 어림잡을 수는 없지만... 이들의 존재가 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당시 로마의 인구는 약 1억 2000만 명으로 근대 유럽의 인구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동일한 정부 체제 아래 가장 많은 인구들이 모여 살았던 사회였던 것이다.
이 시대 부자들의 돈 쓰는 양상을 살펴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저들의 헌납 덕분에 지금의 이태리는 많은 부분 관광수입으로 먹고살고 있다. 지난해 유럽 여행 시 퐁 뒤 가르드 수도교의 웅장함 앞에서 로마제국의 위대함을 느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젖과 꿀이 흐르는 생명의 땅이 되기 위한 제1 조건이 바로 생활용수 공급에 있다는 것! 이 필수 조건을 실현시키는 이러한 수도교 건축의 대사업은 당시 가장 위대한 민관합작 공공사업이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사통팔달의 직선 도로를 내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을 종횡무진하였던 저들의 과감한 실행력을 어찌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말의 배경이 되는 로마의 도로건설 사업은 21세기 디지털 산업 혁신만큼이나 획기적인 사업이었음이 틀림없다. 오늘날 모든 길은 '디지털 검색'으로 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로 건설은 부가적인 우편시설 발달로 이어지게 되었다. 신속한 정보 전달력으로 넓은 대제국을 무리 없이 다스릴 수 있었다.
또한 당시 항해술의 발달로 인해 로마 수도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9~10일 만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두 도시는 이러한 왕래를 통해 문화가 교류되고 번영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교통의 발달은 생활의 발전을 가져왔다. 각 속주국들 및 주변국들과 활발히 교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때로 악습을 퍼트리는 통로가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각 속주들 간의 활발한 교역은 농업의 확산과 발달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기근이 퇴치되었고 각종 과일, 올리브, 포도나무가 여러 지역으로 확산 재배되었다.
스키타이 숲의 모피. 발트해 연안의 호박, 바빌로니아의 양탄자, 동방의 실크, 다이아몬드, 진주, 각종 향료 등등..
수요에 따른 공급의 원칙에 따라 무역이 발전하고 세계가 서서히 확장되었다.
특별히 이번에 새로이 주목한 것은 사치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하게 된 점이다. 당시 경제가 발전하고 예술, 문화가 부흥하기 위하여 인간의 사치와 향락이 윤활제가 되어주었다. 부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사치품을 제작해주고 대가를 얻는 노동자들로 인해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와 예술이 부흥하게 된다는 순환의 원리를 확인한 것이다. 이는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여전히 적용되는 경제 문화 원리이다.
인간은 원래 과거를 찬미하고 현재는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로마 시민들과 속주민들은 제국의 평온과 번영을 진심으로 느꼈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들은 지혜로운 아테네 인들에 의해 시작된 풍속과 법률, 농업과 학문의 원칙들이 이제 로마의 권위에 의해 확고히 자리 잡혔고, 그 결과 사나운 야만족들까지 공통의 정부와 언어로 통합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구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도 시인했다. 그들은 날로 화려해지는 도시들, 거대한 정원처럼 경작되고 장식되는 아름다운 시골의 모습, 많은 나라들이 과거의 원한을 잊고 미래의 위험에 대한 우려에서도 해방되어 누리는 긴 축제와도 같은 평화 상태를 찬미했다. p61
이 구절에서 보듯 당시 로마제국에 속한 모든 민족들이 만족스러운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시대인들의 눈에는 이와 같은 국가적 행복 속에 잠재되어있던 쇠퇴와 부패의 원인들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지속된 평화와 로마인으로만 구성된 단일 정부는 제국의 활력에 서서히 은밀한 독소를 주입시켰다. 사람들의 정신은 점차로 하향 평준화되었고, 번뜩이던 천재성은 소멸되었으며, 군인 정신마저 사라져 버렸다. p62
로마 병사들에게서 독립심, 애국심, 모험 정신, 주인 의식 등으로 무장된 과거의 용맹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황제가 정해 준 법 대로 총독의 리더십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제국의 방어는 용병들에게 맡겼다. 과거 용맹을 떨치던 지도자의 후손들도 시민과 신하라는 계급에 만족했다. 혹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라 해도 기껏해야 황제의 궁전 주변에 모여들 뿐이었다.
이러한 로마인들과 대조적으로 야만인들이라 칭했던 유럽 원주민들은 용감하고 건장했다. 에스파냐, 갈리아, 브리타니아, 일리리쿰은 뛰어난 병사들을 배출했으며, 이들이 제국의 실질적인 힘을 구성하고 있었다. 일관된 정치력을 상실한 채 버려진 속주들은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했다.
또한 평화시의 세련된 취미로 문학을 사랑하는 '수사학'이 붐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나태한 시기 동안 독창적 재능을 가진 뛰어난 작가는 거의 배출되지 못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심으로 스스로 굴레 씌우면서 서로 비굴한 모방만을 부추길 뿐이었다. 그렇게 획일적인 교육 아래 개인의 독창성과 재능이 철저히 무시되고 억압되는 사회 풍조! 그 아래서 로마제국은 서서히 쇠퇴하고 타락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로마 제국 쇠망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기번이 언급한 것들을 모두 다 조사하고 세밀히 들여다보려면 한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개략적인 설명 가운데 은근슬쩍 허를 꼬집어내는 저자의 냉철한 시각에 감탄한다.
하루에 밤낮이 있고, 한 해에 여름과 겨울이 교차되듯...
과거 로마제국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담아낸 그의 성찰의 글을 읽으며 새로운 교훈을 얻는다.
맹목적인 추종, 비판 없는 수용, 창의성이 배제된 교육의 결과가 인간의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참 두려운 발견이다...
"인간의 타락은 사치와 향락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는 학문 표방에서도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