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를 주시하라

로마제국 쇠망사 - 1장

by 아이얼

고전 낭독 모임에서 로마제국 쇠망사 4권을 마치고 기분 전환 겸해서 잠시 진도를 멈추고

그 대신 두 달간 다른 책 - 곰브리치의 <미술사>를 각자 읽어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이용해 그동안 놓친 쇠망사 1권부터 차근히 읽어보려고 한다.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

로마사의 핵심인 서로마 제정을 건너뛰고 정리하기 시작했으니 나름 어수선한 출발이었다.

역사에 문외한인 내게 다소 무모한 도전이긴 했지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12회에 걸쳐 4권을 얼추 정리해보았다.

비록 마지막 2개의 장(46, 47)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이유는 페르시아 제국과의 복합적 관계 및 기독교 신학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 핑계 대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노리티움의 <비잔티움 연대기>를 내용에 맞추어 발췌해 읽어보기도 했지만 전체적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매달려서 쓰면 되는데.. 다른 과제들에 밀려 접어놓다 보니 맥이 끊기고 말았다.
더 이상 끙끙대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중간부터 시작한 일이니 잠시 멈추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ㅎㅎ

심기일전하여~~ 1권부터 새롭게 읽기로 했다.

욕심내지 말고 챕터별로 주목한 몇 가지만 정리해보려고 한다.


기번의 설명에 힘입어 개괄적으로 이해해보는 나만의 <로마제국 쇠망사 이야기>

이제 첫 권부터 다시 시작이다!




"서기 2세기의 로마제국은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토와 가장 문명화된 인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하 역사서 <로마제국 쇠망사>를 여는 첫 문장이다.

제목에 비추어볼 때 지극히 상식적인 출발이다. 제국의 '쇠망사'를 쓰기 위해서는 절정기의 '번영사'를 언급함이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럼 로마제국 번영기는 어떤 모습일까?



- 태평성대 로마제국의 모습 -


당대의 중심인물인 하드리아누스와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들은 더 이상 제국의 경계를 확장시키려 하지 않았다. 대신 제국의 위엄을 굳건히 다져나가는데 힘을 기울였다.


"로마 제국의 힘은 오로지 정의와 질서 추구에 있다."


이러한 캐치 프레이즈 아래 전 인류적인 평화를 모색하였다. 이로써 주변 국가로부터 존경을 받는 대국이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 인류적인 평화 유지가 단지 아름다운 슬로건 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당근 NO No!


황제들의 온건 정책에 힘을 실어 주고 위엄을 부여한 것은 바로 로마 군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로마인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했다.

부국강병!

전성기의 로마제국은 엄격한 군대 조직 아래 훈련하면서 전시 때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 부국강병 로마제국의 군대 -


당시 일반 병사는 모병제로 모집되었다. 농부나 직공들은 군인을 고상한 직업으로 여겼다.

군대 안에서는 자신의 용맹으로 지위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받아들였다.

병사가 처음 입대할 때는 아주 엄숙한 분위기에서 선서를 행했다. 훌륭한 병사는 적보다는 상관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 로마 군대의 변함없는 좌우명이었다.

따라서 로마 군대의 지휘관들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로마인들은 용맹이란 기술과 훈련 없이는 불완전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군대 = 훈련'

라틴어로 군대라는 말을 훈련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따올 정도였다.


그들의 전투 연습이 실제 전투와 다른 점은 실제로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뿐이었다고 한다.

유능한 장군이나 황제 자신까지도 몸소 시범을 보이면서 군사들의 연습을 독려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러한 군대 분위기에 힘입어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세 동안 전술학이 크게 발달했다고 한다.


중추적인 병력이었던 중무장한 보병 군단은 10개의 대대, 55개의 백인대로 나누어져 각각 대대장과 백인대장의 명령을 받았다. 그중 제1대대는 용맹과 충성심이 가장 뛰어난 정예 군들로 구성되어 중심에 섰다.

또한 기병대 역시 열개 대대로 편성되었다. 로마와 이탈리아의 귀족 자제들로 구성되었던 공화정 시대와 달리 일반 시민 중에서 모집되기도 하였다.


로마 군단의 병영은 요새화 된 도시의 모습을 띠고 있었는데, 병영을 구축하기 위한 노역을 군사들 스스로 감당했다. 이때 요구되는 인내심과 성실성이 바로 군사 훈련의 결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속주를 지키기 위해 지역에 적합한 병력을 주둔시켰고,

수도 방위대 혹은 근위대 2만여 명은 중앙에서 황제와 수도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다.


해군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편이었다.

로마인의 야심은 육지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에게 바다는 호기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로마 군사력의 전반적인 상태를 다시 검토해보면, 보병과 기병 또는 군단과 보조군, 근위대, 해병을 모두 합해 도 육지와 해상의 방어를 책임지던 병력이 45만 명을 넘지 않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로마 제국이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었다 할지라도, 이 숫자는 로마 제국의 속주 중 하나에 불과했던 현재의 한 왕국의 군주가 지난 세기에 보유했던 군사력과 같은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20쪽


기번은 로마제국의 군대 설명을 마감하면서 이렇게 그의 의견을 살짝 덧붙이고 있다.

이후 로마제국이 쇠락해갈 수밖에 없는 단초를 넌지시 건네고 있는 것이다.

왕정으로 넘어와 오현제 평화시대를 거치면서 군대의 영향력이 서서히 약해지게 됨을 암시하고...

귀족들의 활동장소가 군대 밖으로 이동하면서

군대의 리더십에 변화가 일어나는 조짐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음을 예감한다...


불현듯 현재 한국의 군사력이 궁금해진다.

군인들이 득세하던 시대를 벗어나 새 시대, 문민정부로 전환된지도 어언 18년이 되었다.

남북 분단의 상황 아래 여전히 징병제 군인을 기반으로 세워진 작금의 군대 현황.

오랫동안 너무도 무관심하게 지내왔다는 각성이 든다.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했던 2세기 로마제국의 스토리가,

그리고 이어지는 변화의 모습들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적용되어야 할 교훈 같아서 말이다...




- 로마제국의 지배 범위 -


에스파냐, 갈리아, 브리타니아, 이탈리아, 도나우 강과 일리리쿰의 국경지방, 라에티아, 노리쿰과 판노니아, 달마티아, 모에시아와 다키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그리스, 소아시아(유프라테스 강에서 유럽 쪽으로 뻗어있는 흑해와 지중해 사이 반도의 일부 지역), 시리아, 페니키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 지중해의 여러 섬들...

위에 열거한 지역 모두가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어 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천혜의 환경을 움켜쥐고 쥐락펴락하는 로마인들이었다.



"이토록 광범위한 지배와 아무도 저항할 수 없었던 막강한 힘, 황제들의 온건 정책에 미혹된 로마인들은 야만적인 독립 상태를 누리던 변경 지대의 나라들을 무시하거나 거의 잊어버렸으며, 점차 오만하게도 로마 제국이 곧 전 세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로마 제국은 안토니누스의 성벽과 다키아의 북쪽 경계에서 아틀라스산과 북회귀선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2000마일을 넘었고, 길이는 대서양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3000마일이 넘었다. 또 한 온대 지방 중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북위 24도에서 56도 사이에 위치해 있었고, 160만 제곱마일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총면적의 대부분이 비옥하고 잘 개간된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 30 쪽 -


가장 정점에 있을 때의 로마제국을 이야기하면서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저자 에드워드 기번.

그의 관점에서 파헤치게 될 '로마제국 쇠망사'의 기울어가는 다음 역사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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