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우스의 <비잔틴제국 비사>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4권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치세 시의 이야기가 거의 다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 황제가 황제가 되는 과정부터 부인 테오도라 황후를 만나고 명장 벨리사리우스 장군 및 환관 나르세스를 통해 아프리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일부 영토를 회복하고... 그밖에 국가의 재정과 입법 형법 민사 등의 법률, 종교, 외교에 대한 내용들이 지루할 정도로 소개되어있다.
역사가가 한 황제의 시대를 이렇게 길게 쓸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특별히 황후 테오도라와 연관된 이야기는 황궁 로맨스 스토리로 재구성해도 좋을 만큼 흥미진진한 가십거리였다. 그것뿐인가!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부인 안토니나의 이야기는 지금 다루어도 자극적인 막장 불륜 드라마 그 자체이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황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 바로 프로코피우스가 있었다.
그는 당대의 원로원 의원이자 역사가였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치세 업적을 기록한 <건축론>과 <전쟁사>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황제의 인정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그는 <전쟁사>에서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업적을 자세히 기술함으로써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던 듯하다. 그 누구도 황제인 자신을 능가하는 인물로 비추어져서는 안 되는 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렇게 벨리사리우스의 비서로만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는 자신을 외면하고, 벨.. 장군을 홀대하는 황제의 사악함(?)에 치를 떨었다. 황제의 권위에 짓눌린 그의 가슴에 분노가 들끓어올랐다. 그 누구보다도 비열하고 몰염치한 황제와 황실에 자리한 인간들의 짓거리들이 뭉게뭉게 연기처럼 눈 앞에 피워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아~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고? 도저히 용납이 안 돼. 괘씸한 황제 같으니라고.. 내가 너 같은 인간을 추켜세우는 거짓 역사를 썼다니.. 아~ 참을 수가 없어!"
"안 되겠어! 난 기필코 쓰고 말 거야. 저 인간의 더러운 뒷이야기를 기록해 후대에 남기고야 말 거야.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마침내 프로코피우스는 이 <비사>를 썼다. 바로 유황제 그늘 아래에서 이를 갈면서 말이다. 그리고 꾹꾹 감추어두었다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에 드러내 놓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쓴 그의 <비사>가 먼 후대의 영국 역사가 기번의 역작 <로마제국 쇠망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내가 이 책을 시작하기까지는 또 다른 문제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나는 내가 기록하는 악행들이 후세에게 알려지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역사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미래의 독재자들 역시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종국에는 보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터이기 때문이고.. (중략).. 만약 당대의 사가들이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현재 누가.. (중략).. 네로의 광기를 알 수 있겠는가.. (중략)..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먼저 벨리사리우스의 우행遇行을 열거하고, 그다음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의 타락상을 이야기할 것이다.
- <비사> 저자 서문 중 -
다음은 이 책을 읽으면서 대충 뽑아본 프로코피우스의 언어들이다.
테오도라에 관한 언급은 19금에 속할만한 자극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있다. 그중 비교적 순한 일부를 옮겨본다.
그녀는 쾌락의 세계에서 패배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종종 열 명 혹은 그 이상의 남자들과 소풍을 가곤 했는데, 밤새도록 그들 모두를 상대해서 놀아주었다. 그들이 마침내 지쳐 떨어지면 그녀는 그들의 하 인들과 놀았는데, 아마 서른 명 정도까지 한 번에 두 명씩 상대했을 것이다. 그러고 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번은 제법 높은 신분의 사람이 저택을 방문했는데, 그녀는 식탁 모서리의 튀어나온 부분에 앉더니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드레스를 끌어올린 후 자신의 은밀한 곳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있는 문 세 개를 큐피드의 대사들을 위해 벌리면서, "만약 가슴에도 잠기지 지 않는 문이 있었다면 더 많은 대사들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탄식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주 임신했지만 그때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즉시 유산을 시켰다. 그녀는 극장에서 자주 모든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의상을 벗고 알몸을 드러냈는데, 다만 사타구니 주변에 걸친 거들만 남겨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무화과 나뭇잎 한 조각도 걸치지 않고 알몸을 노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가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왔을 때, 유스티니아누스는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는 처음에는 그녀를 보통의 첩으로 둘 생각이었지만, 곧 법률을 개정하기까지 해서 테오도라에게 귀족 신분을 주었다. 테오도라는 그를 통해 단번에 세속의 권력과 어마어마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 테오도라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존재였다. 다른 모든 연인들처럼 그 역시 사랑하는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호의를 베풀고 돈도 아낌없이 썼다.
다음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탐욕과 착취에 관한 고발 내용 중 하나이다. 정말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치안관은 도둑맞은 물건 중 귀중품을 발견하면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즉시 황제에게 바쳐야 했다. 이런 식으로 황제는 계속 귀중품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재무관은 혐의자를 불러오면서 동시에 그의 재산을 최대한 압류했다. 그러면 황제는 불법적으로 획득한 타인의 부를 매번 그와 함께 나누었다. 이 관리들은 심지어 재판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전에 이미 혐의자는 사형시키고 재산은 압류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후 이 살인에 길든 악마는 지방 치안감들에게 모든 범죄자들을 똑같은 조건으로 다루라고 명령하고, 그들에게 누가 가장 많은 사람들을 가장 빨리 파멸시킬 수 있는지 경쟁을 붙였다. 그러자 그중 하나가 질문했다.
"만약 어떤 사람에 대한 고발이 우리 세 사람에게 똑같이 들어오면 우리 중 누가 사건에 대한 관할권을 가져야 합니까?"
여기에 대해 황제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들 중 가장 재빠른 자이니라."
충직한 명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아내 안토니나와 애인 테오도시우스와 벌이는 노골적인 간통 장면에 대해 어리석게 속아 넘어가는 다음의 제보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한 번은 카르타고에서 벨리사리우스가 그녀가 애인과 함께 즐기는 현장을 잡았는데도 그냥 넘어간 일이 있었다. 그는 지하에 있는 방에서 둘을 발견하고 매우 화를 냈는데, 안토니나는 숨길 게 없으니 전혀 겁날 게 없다는 투로, “전 우리가 노획한 물건들을 여기 숨기려고 얘와 같이 온 거예요. 안 그러면 황제가 알아챌지도 모르니까요”라고 말했다.
이게 그녀가 변명이랍시고 내놓은 이야기였다. 그러자 벨리사리우스는 마치 그녀의 말을 믿기라도 한 듯이 자신이 본 것을 없던 일로 해버렸다. 심지어 그는 테오도시우스의 바지끈이 풀려 있는 걸 보고서도 그러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안토니나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던 나머지 자신의 눈이 확인한 증거를 불신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이에 더해 황후의 음모에 휘말려 벌벌 떠는 벨리사리우스의 다음 장면은 우스꽝스러운 개그쇼를 보는 듯하다.
그때 황후는 벨리사리우스가 동방에서 거대한 부를 쌓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궁정 환관 하나를 보내 그의 재산을 압수해오도록 했다. 그의 부인 안토니나는 남편과 냉전을 치르고 있었지만, 테오도라를 위해 카파도키아의 요하네스를 처리해준 덕분에 그녀와는 더없이 친근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테오도라는 벨리사리우스가 안토니나의 탄원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처럼 꾸미기로 했다. 이로써 벨리사리우스는 황후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안토니나의 노예가 될 터였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벨리사리우스는 몇 안 되는 추종자들과 함께 궁정으로 향했다. 거기서 황제와 황후가 불같이 화를 냈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벨리사리우스는 천출과 평민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늦은 오후, 벨리사리우스는 혹시나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이 따라오는지 수시로 고개를 돌려 확인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진땀을 흘리며 집으로 늘어선 그는 소파 위에 홀로 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는 비굴한 공포심과 생명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잔틴제국을 호령하던 장군은 사라지고, 초라하고 무력한 사내만이 남아 있었다.
해 질 무렵 갑자기 문 앞에 궁정의 장교인 콰드라투스란 사내가 나타났다. 벨리사리우스는 올 것이 왔다고 느꼈는지 소파 위에 가만히 누워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다. 이제 그에게는 마지막 기백마저 사라진 것이다.
콰드라투스는 그에게 황후가 쓴 편지를 전달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장군, 그대도 본인이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을 알 것이오. 하지만 나는 장군의 안사람에게 큰 빚을 진 바 있기 때문에 그대의 모든 혐의를 무시하고 그대를 아내에게 돌려주려 하오. 따라서 앞으로 그대는 생명과 재산에 대해 안심해도 좋을 것이오. 하지만 그대의 운명은 앞으로 그대가 아내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오."
편지를 읽고 난 벨리사리우스는 기쁨에 겨운 나머지 마치 미친 사람처럼 펄쩍펄쩍 뛰며 감사한 마음을 표시했다. 그리곤 아내의 발 앞에 부복하더니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지고 발가락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면서 그녀야말로 자신의 생명이고 구원이며, 앞으로는 그녀의 주인이 아니라 충실한 노예로 살아갈 거라고 다짐했다.
이밖에도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대한 프로코피우스의 개인적 소견은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성격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악의적이면서 다정하기도 한, 형언하기 어려운 이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도 진실하게 대하지 않았고, 언행에 있어서 항상 음흉했지만, 또 사기꾼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기도 했다. 그의 성정은 우둔함과 교활함을 부자연스럽게 뒤섞어놓은 듯했다.
이 황제는 부정직하고, 기만적이고, 거짓되고, 위선적이며, 이중인격 자에, 잔인하고, 자기 생각을 감추는 데 능하고, 기쁘거나 슬프거나 절 대 울지 않고, 다만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거짓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였다. 그는 말뿐 아니라 글로도 거짓말을 하고 살았다. 심지어 신하들이 듣고 있는 앞에서도 거짓으로 신성한 맹세를 하곤 했다.
신용할 수 없는 친구이자 모략을 일삼는 적인 그는 살인과 약탈, 불화와 도발을 좋아했고, 무엇이든 악한 일에 쉽게 끌렸다. 그는 훌륭한 조언자를 곁에 두려 하지 않았고, 나쁜 제안에는 쉽게 이끌려 바로 그 일을 해치웠으며, 좋은 일은 듣는 것조차 싫어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방식을 어떻게 다 언어로 옮길 수 있을까? 이 인간은 워낙 많은 악덕을 몸에 지니고 있어서, 마치 자연이 다른 이들의 수많은 악덕을 모아 이 인간의 영혼에 심어놓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귀가 너무 얇았다. 어떤 고발이든 들어오면 그는 충분히 검토하지도 않고 고발자의 말만 들은 후 바로 처벌을 내렸다. 심지어 그는 한 나라를 침략하거나, 도시를 약탈하거나, 한 민족 전체를 노예로 만들 때도 별 고민 없이 망설이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아마도 로마인들이 이제까지 겪었던 모든 재앙을 다 합쳐서 무게를 재보아도 그가 저지른 범죄보다 가벼울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한 인간의 손에 죽은 사람들만 해도 이전의 전 역사를 통틀어 살해당한 자 들보다 더 많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4권을 읽는 도중 궁금해서 읽은 이 책 때문에 이전에 내가 유스티니아누스, 테오도라, 벨리사리우스에 관해 썼던 호의적인 글들이 잠시 무색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물론 프로코피우스의 이야기가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상당 부분 그랬을 것이라 수긍한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이 있다. 천하의 악질 살인자도 자신을 의지하는 가족들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엄마와 아빠 되어 헌신하는 법이다.
난 그저 프로코피우스의 상대를 경멸하는 부정의 언어 곁에, 같은 상대를 이해하는 긍정의 언어를 나란히 사열시켰을 뿐이다.
나도 오래전 프로코피우스와 비슷한 심경인 적이 있다.
아주 명성 높은 지도자를 흠모한 나머지 그분을 칭송하는 글을 쓰고 주목받았었다.
어찌어찌 그분과 가까워지며 친분을 쌓아가던 중...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그분은 내 앞에서 부끄러운 언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던 것이다.
황망히 그 자리를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 이후로 참 많이 힘들었었다.
나만이 알게 된 그분의 치부가 악몽 되어 나를 괴롭혀댔다.
그때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언젠가... 이 사실을 세상에 밝혀야 하지 않을까..."
난 프로코피우스처럼 역사가도 아니고, 따라서 미래 후손들을 위해 진실을 밝혀야만 한다는 그럴듯한 소명의식도 없다.
당시 그 사실을 밝히고 나서 나 자신이 역으로 감당하게 될 수욕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그 일은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사회에도...
이 프로코피우스의 <비잔틴제국 비사>를 읽고 나니 더욱 생각이 확고해졌다.
때론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독이 된다고...
프로코피우스는 이 글을 써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결코 존경받지 못하는, 가벼운 역사가로 남게 되었다.
그 어느 누구도 참고서적으로서의 이 책의 가치는 인정할지언정, 저자를 깊이 있는 역사가로서 평가하지는 않는 듯하다.
분이 나서 쓴 글, 남의 치부를 드러내고 까발리는 글은 언젠가 자신에게 부메랑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귀에 솔깃하고 흥미진진하여 주목받긴 하지만... 사람을 비난하는 행위는 일시적 감정 해소일뿐, 쏟아 내고 나면 허탈과 공허함만 남을 뿐이다.
'비사'가 아닌 '인간사'를 쓰는 자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흑역사를 파헤치려는 분노의 감정을 추스르고..
의연하고 담담하게 인간의 면면을 살피다 보면
모든 것이 해 아래서 낱낱이 드러나질 것이다.
폭로하기 위해 쓴 글은
'역사'가 아닌,
말 그대로 그저 '비사'일뿐이다.
심판은 기록하는 자의 것이 아닌, 바라보고 지켜보는 자의 몫이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히브리서 10:30)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