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1)

이름 없는 삶이 남긴 문장이 마침내 나의 현장이 될 때

by 세잇

「김춘영」 - 최은미


타인의 생애를 한 권의 책으로 묶는다는 것은 거대한 설산에 파묻힌 누군가의 발자국을 뒤늦게 더듬어가는 일과 같다. 우리는 흔히 역사라는 거대 담론 속에 개인의 삶을 사건의 증언자로 호출하곤 하지만 정작 그 삶이 발 딛고 서 있던 고유한 영토와 그 안의 소소한 질서에는 무심하기 마련이다. 최은미의 소설 「김춘영」은 바로 그 지점, 사건으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단단하고도 비루한 삶의 결을 응시하게 만든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묘사되는 김춘영의 집은 그녀의 삶 그 자체를 은유한다. 황도 통조림 캔에 심긴 다육식물, 농협에서 받아온 달력, 오래된 괘종시계와 수납함이 된 김치통들. 그것들은 엄격히 정돈되지도 그렇다고 방치되지도 않은 채 '김춘영 일인의 질서' 안에서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관찰할 때 종종 우리만의 세련된 잣대를 들이댄다. 연구자 홍이 거실에 걸린 지등(紙燈)을 보며 "화운령의 야생화가 새겨진 아름다운 등"이라며 의미를 부여할 때, 김춘영은 무심하게 대답한다.


"그거, 내 조카가 이케아에서 사다준 겁니다."


이 장면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서늘한 각성이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이나 역사를 숭고하게 포장하려 할 때 정작 당사자는 그저 이케아 등 아래에서 묵묵히 오늘의 삶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최은미 작가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도사린 불안과 공포를 예민하게 포착해 내는 작가다. 이번 작품에서 1980년 사북항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파도 뒤편에 가려진 여성이자 술집 주인인 김춘영을 조명한다. 탄광촌의 광부도 그들의 헌신적인 가족도 아닌, 밤마다 광부들에게 술을 내어주며 "꼭 내일 죽을 사람들처럼" 마셔대는 그들의 위태로운 생을 지켜봐야 했던 인물이다.


"많이들 죽었지요. 그래도 다 사람 사는 곳이었어요."


라는 김춘영의 말은,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지속되어야만 했던 평범한 인간들의 생명력을 증명한다.


소설 속 화자인 연구자 박정윤은 김춘영의 구술이 어떤 사회적 사건의 증언으로 수렴되기를 거부하며 김춘영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개인에 도달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도달의 과정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폭설로 고립된 밤, 예상치 못한 불청객들과 섞여 혼란을 겪는 와중에 김춘영이 흘린 소변이 박정윤의 무릎을 적시는 순간 연구자와 구술자 사이의 매끄러운 거리는 파괴된다. 그것은 관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비루함이 내 살결에 직접 닿는 지독하게 물리적인 현장의 경험이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삶을 다 안다고 자만하거나 혹은 너무 멀리 떨어져서 연민의 시선만을 보낼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성찰은 타인의 삶이 나의 단정한 일상을 침범해 올 때 그 무겁고 눅눅한 무게를 함께 감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김춘영이 지켜온 그 '이케아 등'은 단순히 값싼 소품이 아니라 거대한 공포와 기억의 눈보라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밝히며 버텨온 한 개인의 안식처였다.


소설의 끝에서 화자는 눈 덮인 고요한 풍경 속에서 주황색 텐트 하나를 발견한다. 그 안에서 누군가 등을 켜고 앉아 있는 모습은 이제 막 누군가의 생애를 듣고 기록한 화자가 마주해야 할 '최종 청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김춘영의 이야기는 이제 기록자의 손을 떠나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 불을 밝힐 것이다.


삶에서의 잔잔한 깨달음이란 대단한 철학적 명제에 있지 않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내 멋대로 해석하지 않겠다는 겸손함, 그리고 그가 겪어온 세월의 갈피마다 새겨진 이름 없는 공포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용기에서 온다. 화운령의 눈보라가 잦아든 뒤 마주하는 평평하고 하얀 풍경처럼 우리 역시 누군가의 문장을 통해 그들의 삶이라는 낯선 영토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리고 그 발자국 끝에서 비로소 나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나만의 질서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문장은 때로 타인의 고통을 옮기는 수레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수레가 멈춰 서는 곳은 나의 마음 한복판이다. 김춘영의 생애가 박정윤의 무릎을 적셨듯 이 소설은 독자인 우리의 안일한 시야를 적시며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름으로 당신의 생을 견디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