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3)

삶은 언제나 미지수이기에

by 세잇

「돌아오는 밤」 - 최진영


죽음은 언제나 백 퍼센트의 확률로 우리를 기다리지만 삶은 그 불확실한 미지수 속에서 비로소 반짝인다.


영국 에든버러에서 들려온 이름 모를 누군가의 부고는 시차를 넘어 일상의 평온을 흔든다. 타인의 죽음은 때로 너무 멀어 실감이 나지 않지만 그 소식이 건드린 파동은 곧장 가장 내밀하고 아픈 기억—얼마 전 세상을 떠난 친구 ‘향기’—에게로 닿는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 「돌아오는 밤」은 이처럼 죽음이라는 확정된 결말과 삶이라는 미지수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집요하게 비춘다.


슬픔 앞에서 인간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인공지능의 조언이라는 풍경은 상징적이다. 챗지피티는 ‘짧고 진심 어린 톤’을 조언하며 매끄러운 애도의 말을 내놓는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이 완벽하고 결함 없는 문장 앞에 기묘한 소외감이 감돈다. 기계의 언어에는 슬픔의 무게를 지탱할 뼈대가 없다. 그것은 고통을 직면하기보다 고통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최적화된 문장이기 때문이겠지.


인간이 기계에게 위로를 묻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감당할 자신이 없거나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설명할 단어를 유실했음을 뜻한다. 독감의 치사율을 검색하며 노년층의 확률이 높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곧이어 그런 자신을 징그러워하는 모습은 서늘할 정도로 솔직하다. 우리가 믿었던 ‘젊음’이나 ‘낙관’은 사실 현실을 내가 원하는 결론에 맞춰 왜곡하는 ‘동기화된 추론’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이토록 비겁하고도 투명하게 살고 싶어 하는 존재다.


헬싱키 공항의 커다란 통유리 너머 활주로를 바라보며 느끼는 ‘수화물처럼 옮겨지고 있다’는 감각은 현대인의 실존을 관통한다. 대출금이고 월세이며 생활비라는 숫자의 체계 속에 갇혀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정신은 크레바스 같은 틈에 끼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 이는 존재라는 커다란 공간에 갇힌 영원과도 같다. 이 답답함은 소설 속 12·3 계엄 사태라는 물리적 폐쇄성으로 확장된다. 길에서 마주친 군인들과 총구,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공포를 하나로 묶는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으로 가는 길이 차단된 밤, 인간은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과 마주한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데 결국 다시 도움을 요청해야 할 대상도 사람이라는 모순. 우리는 서로에게 위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일한 구명줄이기도 하다.


친구 ‘향기’는 타인에게 건네는 자신의 선의가 상처가 될까 봐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향기가 건넨 꽃을 나는 뱀으로 받았다"는 고백은 관계의 비극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얼마나 많은 진심이 곡해되고 날 선 방어기제에 밀려나고 있을까. 상처받지 않으려는 자기보호가 타인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되는 그 기묘한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향기 같은 사람들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원자(atom)의 단위로 확장하는 시선은 구원과 같다.

"원자는 사라질 수 없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상태일 뿐이라는 철학적인 통찰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거대한 위로다. 향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밤을 통과하는 호흡 속에, 손안에 쥔 트롤 인형의 감촉 속에 다른 형태로 일렁이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행복할 권리’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권리’다.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지만 추구는 스스로 움직이는 행위다. 텅 빈 거리, 방전된 핸드폰, 언제든 광기로 변할 수 있는 타인들 사이를 뚫고 집으로 향하는 그 위태로운 발걸음 자체가 바로 ‘추구’의 과정이다.


죽음은 백 퍼센트의 확률로 결정되어 있고 삶은 언제나 미지수다. 하지만 그 확률에 매몰되어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뒤엉킨 시차 속에서 사라진 여섯 시간을 ‘당겨 쓴 시간여행’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존재라는 수용소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존엄이다.


누군가가 건넨 꽃을 뱀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매끄러운 기계의 언어 뒤에 숨어 타인의 진실한 비명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최진영 작가가 그려낸 이 서늘하고도 뜨거운 밤을 통과하며,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좁은 감옥의 문을 열고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물소리를 내며 몰래 우는 누군가의 슬픔을 알아채는 마음, 그리고 "그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거야"라는 그 투박하고도 간절한 믿음뿐이다.




#이미출처 :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