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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an 01. 2024

MZ는 왜 9 to 6도 싫대?

연말마다 찾아오는 회의감 2편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9 to 5) 근무를 처음 경험해 본 미국 사회초년생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는 못 산다'라고 하소연하는 틱톡 영상이다.


미국 틱톡커 브리엔 "9시에서 5시 근무는 정말 미친 짓이다. 어떻게 친구를 만나고 데이트를 하나. 아무것도 할 시간이 없고 너무나 힘들다"


만약 이 영상을 보고


"라떼는 말이야 9 to 10도 감사히 했어~!!!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유난이야?"


라고 생각하는 OB가 있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 아마 초년생 때의 당신도 저렇게 느꼈으나 틱톡이 없었기 때문에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나 또한 혹독한 회사 생활을 처음 경험한 뒤 영상 속 학생처럼 충격을 금치 못했던 순간이 있었다.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친 22살, 지금 생각하면 한참 놀았어야 할 나이에 처음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계약기간 5개월 동안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 광고 회사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반학반회(반은 학생, 반은 회사원)로 살았다. 여름에 시작한 인턴 생활은 다음 해 겨울이 되어서야 끝났다.




❁ 인턴의 삼단 변화 ❁


[1단계-1개월 차] 신기함

처음엔 직장에 다닌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비록 회사 생활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었지만, 괜찮았다. 1시간 반을 걸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사무실에 도착해 8시간 근무를 마친 뒤, 다시 1시간 반을 걸려 퇴근하면 에너지가 방전되어 외식도 운동도 할 수 없었다. 9 to 6을 처음 겪어본 나는 마치 배터리 효율이 낮아 10분 만에 50%가 방전되는 구식 핸드폰처럼 급속도로 시들어졌다. 회사에서 뺏긴 에너지를 충전하면 바로 다시 출근 시간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첫 회사 생활이니까. 다들 이러겠지. 적응의 시간이겠지.



[2단계-2개월 차] 경외감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신기함은 회사원에 대한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짧으면 3년, 길면 16년째 회사에 매일 출근하는 중이었다. 때로는 깨지고 무너져도, 아무 일 없는 듯 성실히 출근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어 경외감이 들었다.


[3단계-4개월 차] 부정

그리고 이윽고 현실을 알게 되었다. '저건... 멀지 않은 내 미래 모습이겠구나!' 아직 인생을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했는데.. 가보고 싶은 나라가 수두룩 빽빽인데..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내 미래가 저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부정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8시간, 가뭄에 콩 나듯 주어지는 휴가와 평일 대비 말도 안 되게 짧은 주말을 제외하고는 회사에 나와 있는 상태로 앞으로 최소 20년은 살아야 한다고? 내 인생의 70%를 회사 생활에 쓰기로 결정한 노예 계약이라도 체결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회사원 생활은 학생 생활과 비슷하지만 졸업이 없다는 점에서 달랐다. 50살에 다소 이른 은퇴를 한다고 쳐도 최소 20년 이상 꼼짝없이 회사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도착 지점이 계속 늘어나는 마라톤처럼 말이다.


인턴인 나도 이런데, 팀원들의 인생은 회사로 꽉 차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바쁜 와중에 인생의 중대한 일들까지 겸하고 있었다.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아이 교육도 했다. 그들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에 감탄하다가, 생각해 보니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 다 이렇게 사는 것 같길래 감탄을 멈췄다.

 

"사람들… 다 이러고 사는 거였어? 일주일의 5일을 하루 종일 일하면서, 밤에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여행도 가는 거였다고?"


미래가 아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럼 29살의 솔이도, 39살의 솔이도, (운이 좋아 회사에서 짤리지 않는다면) 49살의 솔이도. 360일 중 260일은 회사에 있을 예정이었다.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인턴 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모이면 항상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엄마아빠가 어떻게 직장생활을 지금까지 하신 건지 모르겠어. 갑자기 존경하게 됐잖아."
"어떻게 이렇게 20년을 더 다녀? 어떻게 이러고 20년을 살아?!?


직장의 퀄리티나 팀 분위기 같은 것은 나중 문제였다. 매일 9시까지 출근하고 6시까지 일하는 프로세스에 몇십 년간 갇혀있을 거란 생각만으로도 MZ의 눈앞은 캄캄해져 버렸다. 셀 수도 없이 켜켜이 쌓인 채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직장생활이 아득하게 느껴졌겠지.


그래도 인턴일 때는 어느 정도 남 얘기처럼 느껴졌다. 아직 대학 생활이 남았으니, 회사원 말고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뻔한 막장 드라마가 더 재밌듯, 나 또한 뻔한 회사원 엔딩을 맞았다.





앞서 이야기했듯(*1편 참조), 회사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나약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회사가 적성에 맞는 사람은 감히 예상하건대 단 1명도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입사 첫날 스스로와 한 약속이 있다.


적어도 제일 잘하는 일이

회사 일인 어른은 되지 않을 것이다.


회사 업무보다 더 잘하는 게 있는 사람일 것이다. 또 꿈꾸는 걸 멈추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새해를 맞아 남몰래 감춰왔던 꿈을 고백해 보자면, 사실 나에게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여행자로서 출연하는 꿈이 있다. 그리고 시골에 오래된 한옥을 사서 리모델링해서 살아보고 싶고, 엄마랑 인도로 장기 여행을 떠나 보고도 싶으며, 글쓰기 수업도 열어보고 싶고, 다 때려치우고 남미 여행을 가고 싶기도 하다. (독자님들에게만 살포시 얘기하건대) 그러니까 내 미래에 회사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멀지 않은 미래에는 아직 회사원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엔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크니까.


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

우리 언젠가 용감하게 회사 밖 시나리오를 적어 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오늘도

사부작사부작 글을 쓴다.

언젠가 만날 해방을 위하여.




❁ 1편 보러 가기


주간 에세이 {이솔 올림}

인스타도 놀려오세요

@solusism






안녕하세요. 2024년 갑진년 1월 1일에 인사드립니다. 

독자님들 떡국은 드셨는지요, 저는 송여사의 야심작 어묵떡국을 먹으며 한 살 더 먹어버렸답니다. 나이가 드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 올해 몇 살인지 의식하게 되네요 ㅎㅎ. 

2023년 한 해 동안 구독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댓글과 좋아요, 심지어 그냥 조회수 1 조차도 제게는 글을 써나갈 큰 힘이 되었습니다. 멋지고 대단한 글은 못쓰더라도 투박하고 오래 쓰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바 이루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한 한 해 되세요!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



ps. 그리고 이 짤은 제가 올해 잊지 않고 살려는 명언인데요, 작은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는 자세를 키워보고자 합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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