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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ul 03. 2024

응급실 2019

맥주와 망고

소 언니는 응급실 간호사다. 소 언니라 부르는 이유는 소띠라서는 아니고 성씨가 '소'이기 때문이다. 언니는 남미 여행에 가서 꼬불꼬불 히피펌을 받은 채 살사댄스 수업을 들은 적 있고 지갑에는 늘 맥주 따개를 들고 다니며, 5살 어린 나에게 늘 존댓말을 써주는 멋진 사람이다. 


휴학계를 내고 배낭여행을 떠난 만 스물둘의 나는 태국 빠이에서 언니를 만났다. 일개 학생이었던 나의 눈에 소 언니는 정말 멋져 보였다. 언제나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지갑에 맥주 따개를 넣고 다니는 인생의 자세도 그러했지만, 특히 간호사라는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광고회사 인턴을 하며 찝찔한 쇠맛 나는 현실을 느낀 나는, ‘어차피 해야 하는 직장 생활이라면, 기업이 아닌 사람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차였다. 


우리는 태국식 목조 주택으로 만든 호스텔의 서늘한 마루에 마주 앉아있었다. 나는 문득 언니에게 하소연했다. 


“언니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광고회사는 기업의 이윤 창출을 돕는 일인데, 간호사는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도움이 되잖아요. 어릴 땐 재미없을 것 같다는 철없는 이유로 간호사나 교사 같은 직업 생각도 안 했는데, 참 후회돼요. 사람들이 왜 그런 의미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가만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소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분이 돌아가셔서 보호자분께 사망 사실을 알리는 전화를 한 적 있어요. 돌아가신 분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에 아들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눌러서 사망 소식을 전했죠. 전 일로서 대하니까... 무미건조하게 돌아가신 사실을 전했는데, 수화기 건너에서 엄청나게 슬퍼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반면 제 목소리는 너무 무심해서... 스스로 엄청 놀랐어요.”


익숙지 않은 죽음이란 주제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하자, 언니는 내 팔을 잡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혹시 저한테 정 떨어진 거 아니죠? 그냥... 의미 있는 일인 건 맞지만 막상 잊고 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나였어도 그랬을 거라 생각했다. 죽음이 일상이 된다면, 분명 나도 그렇게 됐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지. 죽음은 이미 일상인 걸. 어쩌면 소언니의 무심한 목소리가 정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이에 맥주와 망고만 있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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