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만 앞선 효도여행의 역사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가족들을 이끌고 여행하기 시작했다.

by 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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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왜 우리 가족이 여자 셋뿐인지부터 설명해야겠다. 그러려면 우리의 시작인 명희씨의 역사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딸은 살림 밑천이라며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대학에 잘 보내지 않던 시절, 진주 여고에 다니던 명희는 서울로 떠났다. 절대 형편이 넉넉했던 것이 아니다. 딸이 하고 싶은 것 다 해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고집에 가까운 사랑이 있었다.

국문학과 92학번 명희는 윤기 흐르는 까만 머리에 벽돌색 립스틱을 바르고 뾰족구두로 캠퍼스를 누볐다. 그녀를 노리며 하숙집으로 전화 거는 오빠들이 많았지만 명희는 아무나 만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 이상을 연기하기 위해 쇼트커트를 한 연극부 최고참 명희는 아홉 살 많은 데다가 가진 거라곤 잘생긴 얼굴밖에 없는 연극배우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졸업과 동시에 그와 결혼했고 연년생 딸 둘을 낳으며 인생 난이도를 수직 상향시켰다.


“명희는 국회의원이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

“기껏 딸내미 서울에 대학 보내놨더니…”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이었으므로 슬프지 않았다. 나는 종종 나를 낳지 않고 살았을 엄마를 상상했다. 그리고 더 자주 내가 엄마의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원죄였다. 나는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만 했다.


네 명이었던 가족이 세 명으로 줄었던 해 겨울, 처음으로 셋이서 가족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강원도 속초였다. 저녁 식사로 다리가 잘려 상품 가치가 떨어진 홍게를 저렴하게 먹고, 바다 뷰 호텔에서 낑겨 자고 일어나 새해 첫 일출을 감상했다. 그리고 아침으로 퍽퍽한 명태구이를 먹었다. 셋이라는 게 아직 어색했던 우리는 차에서도 식당에서도 별다른 말이 없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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