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Jan 22. 2020

길고도 찌질한 비교의 역사

인생의 절반 정도는 나보다 남처럼 살고 싶었다.

 인생의 절반 정도는
나보다 남처럼 살고 싶었다.

 


 나의 비교의 역사는 길고도 찌질하다. 초등학생 때는 백수가 아니라 회사 다니는 아빠를 둔 친구가 부러웠고, 중학생 때는 넓은 집에 살아 나를 초대하던 친구가 부러웠고, 고등학생 때는 학원에 빠지고 싶다고 징징대는 친구가 부러웠으며 대학생 때는 소득분위가 10분위라 국가장학금이 나오지 않는 친구가 부러웠다.


 나는 평생 나보다 나은 상황의 사람을 끊임없이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해야만 평범한 다른 사람들만큼, 돈 걱정 없이 자가로 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먹고 싶은 음식 맘껏 먹을 수 있는. 딱 그만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무것도 병행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함을 느꼈다. 바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이것저것 발을 담그며 남들보다 딱 1.5배 바쁜 대학 생활을 보냈다. 20여 개의 대내외활동을 했으며 5개월의 인턴을 마치고 바로 6개월 계약직 인턴에 지원해 합격했다. 남보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나의 치졸한 노력에 '열심히 산다'는, 꽤 있어 보이는 라벨을 붙였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해댔다는 것이다.


 두 번째 회사에서 시체처럼 일하던 중 내 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가슴 속에서 찰랑 거리며 쏟아질랑 말랑 버티던 불안이 덫에 찔린 것이다.




덫에 걸렸다.



 열심히 살면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다며 나를 달랬는데, 어느 순간 내가 설치한 덫에 스스로 걸려버렸다.


 내가 선망하는 평범한 삶을 위해서 나는 현재를 포기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살아서 좋은 회사에 간다고 해도, 하고 싶은 건 미루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채 20년은 견뎌야 겨우 손바닥만 한 아파트 한 채 얻게 된다. 고작 그것을 위해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가. 그 순간을 위해서 나는 인생을 즐기기는 커녕 회사에서 작은 나사처럼 주어진 일만 겨우 하며 살아내야 하는가.


 인생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절대 될 수 없는 타인처럼 되기 위해 지겹도록 하던 비교를 멈추고, 온전한 현재의 '나'로서 존재하고 싶었다. 내가 대학 생활 내내 떠들고 다녔던 ‘꿈’이라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럴싸해 보이는 직업으로 정한 것은 아닌지, 왜 인간은 드넓은 세상을 뒤로하고 좁아터진 사무실에서 찬란한 인생을 낭비해야 하는지, 이 모든 게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거대한 세력의 음모는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의 근본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당장 내게는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하는 것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 말고, 내가 원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절실했다.

 



상담을 받았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인턴을 관둔 목적은 분명했다. 지금껏 잘못 살았다는 불안함과 자괴감이 나를 뒤덮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 가난과 구질구질함은 벗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아무것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음은 한껏 닫혔고 정서적으로 무뎌져 감정을 느끼기도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중도 퇴사하고 복학을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재학생에게는 심리 상담이 무료이기 때문이다.


 심리검사 결과, 나는 '보통' 사람보다 불안하고 우울했다. 본래의 나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간관계의 지속성을 믿지 않았으며, 내가 상처받기 싫어 마음을 열지 않은 거면서 타인의 호의를 모두 가식으로 치부했다. 거기에다 가난에 대한 자격지심과 함께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이 합쳐져 괴물이 되어버렸다.


 꼬박 4개월 동안 상담을 받았다. 13회 차 상담을 마치고 나는 전보다는 덜 불안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부모가 미웠고, 특별해지고 싶지만 뛰어난 재주도 없이 대한민국 20대의 평범한 루트를 따라가고 있는 내가 싫었고, 영원히 나를 따라다닐 가난 때문에 무기력했다.


그래서, 일단 여행을 가기로 했다.

어깨 가득 무거운 짐과 가난이 당연한 배낭여행.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 가난함이 용서되고, 한 푼 아끼겠다는 구질구질함이 디폴트가 되며 한국에서 뭘 해 먹고살 건지(혹은 살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여행자 1'이 되고 싶었다.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달간의 배낭여행은 나에게 ‘ 쉬는  가르쳐줬다는 것이다.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간신히 가슴을 열어 얕게 쉬던 숨을, 이젠 폐까지 열어 깊이 내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타인이 아닌, 오직 나의 숨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 걱정과 불안은 접어두고 일단 떠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