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Jan 24. 2020

떠나는 자의 불안

떠나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문제는 설레지도 않았다는 거였다.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참 여러 가지를 걱정했다.



첫 번째는
억지로 따라온 동생


 나는 연년생인 여동생이 하나 있다. 그리고 나는 혼자 좋자고 가족을 버리고 여행을 떠나기 죄책감이 들어, 동생을 여행에 끌어들였다. 영화를 전공하는 동생은 방학 동안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며 별로 가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끊임없는 언니의 애원으로 동생은 하는 수 없이 여행에 합류했다. 하긴 언니가 여행경비를 모두 댄다는데 안 갈 동생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출발 날까지 영 시큰둥한 동생에게, ‘어차피 두 달 방학 금방 간다고, 넌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할 거다’라고 큰소리쳤지만. 동생이 이 여행을 원치 않는다는 생각은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결국 동생은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내 여행은 동생과 한 달, 나 자신과의 한 달로 채워지게 되었다. 



두 번째는
혼자 남을 엄마



 엄마한테 손을 벌려 떠나는 것도 아닌데 엄마한테 미안했고 또 걱정됐다. 엄마는 스물넷에 나를 낳고 독박 육아와 독박 생계를 유지하느라 청춘을 즐기기는커녕 여행도 즐기지 못한 사람이다. 나에게 큰 희생을 한 엄마를 두고 떠나는 것은 나에게 큰 도박이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직장 다니느라 늘 지쳐있는 우리 엄마. 주말에 영화라도 보자며 현관문 밖으로 끌어내는 딸들이 없다면 엄마의 한 달이 너무 적막할 것 같았다. 그래서 걱정됐다.



세 번째는
無계획



 동남아 배낭여행 간다고 결정 난 건 몇 달 전이지만, 계획 짠다고 요란법석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몇 달 전부터지만.

 

 출발 전날까지 계획이라고 하기에도 무색한 뭉텅한 선만 그려져 있다. 우리의 첫 도시인 미얀마 양곤 이후로는 '여기서는 어디에 가야겠다'라는 계획도, '어디가 좋다'는 정보도 쌓지 못한 상태다. 한 번도 계획 없이 떠나본 적이 없는 터라 계획이 없다면 시간 낭비를 하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네 번째는
나의 처지



7학기를 마친 대학생.

다른 친구들은 막 학기 재학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는데 나는 떠난다. 머나먼 오지로.


'내가 감히 이래도 되나? 내게 사치인 거 아닐까?'

'가난한 내 처지에 맞게 얼른 취업 준비해서 돈 벌어서 가정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내 인생 내내 나를 따라왔던 <착한 장녀 콤플렉스>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실 취업에 대한 막연한 혐오와 자신감이 섞여 있었다. 평범한 삶을 살기 싫다는 혐오와 왠지 운 좋게 괜찮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감정인 불안이 태어났다.



이 네 가지 걱정이 눈덩이처럼 꼭꼭 뭉쳐 나의 속은 불안과 걱정, 우울로 꽉 채워졌다. 네 개 다 답은 없는 불안이었다. 하긴 그러니 불안이 되었겠지. 하지만 답을 찾으려는, 결론을 찾으려는 나의 헛된 시도로 내 손가락은 살이 벗겨진 채 붉어져 있었다.





떠나던 날,

엄마는 일찍 퇴근해 우리에게 마지막 집밥을 선사했다. 사실 대단한 것 없는, 된장찌개와 반찬들이었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계란말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우리가 늦을까 봐 정신이 없어 얼린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펴 그릇에 옮기지 않고 그대로 식탁에 올렸다. 보기엔 안 좋지만, 남이 봤을 땐 여행 가기 전 마지막 밥상인데 너무 허접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겐 평범해서 더 행복했던 밥상이었다.


 의정부에서 인천까지는 차로 2시간. 하지만 엄마는 거기까지 태워줄 여력이 없다. 공항 대신 가까운 도봉산역까지 데려다준 엄마와 포옥 인사를 했다.

 

 촌스럽게 눈물은 흘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전철 개찰구까지 따라 내려오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네 가지 불안 중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다.

 

 다행히 엄마가 가자 눈물은 멈췄고 동생과 둘만 남게 되었다.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 말없이 1호선에 몸을 맡겼다. 내가 메고 온 빨간 배낭은 부피가 사람만 해져서 전철 바닥에 세워두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무거운 배낭은 내가, 가벼운 배낭은 동생이.



 떠나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문제는 설레지도 않았다는 거였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건데 왜 내 심장은 잔잔하지? 비행기를 타면 실감이 날 거라고 대충 넘겼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도 하나의 물음이 둥둥 떠다녔다.



과연 나 이 여행, 가도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길고도 찌질한 비교의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