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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an 30. 2020

스물넷 엄마의 빨간 배낭

그리하여 어린 엄마의 청춘은 가위로 오린 듯 말끔하게 사라졌다.

엄마는 스물네 살에 나를 낳았다.

대학교 3학년 때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나를 낳았으며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동생을 낳았다. 가장 역할도, 아빠 역할도 못 하는 아빠는 돈벌이도, 육아도 손대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그 둘을 모두 해내야만 했다. 그리하여 어린 엄마의 청춘은 가위로 오린 듯 말끔하게 사라졌다.


엄마는 그나마 말이 통했던 첫째 딸인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대부분 자신을 위로하려는 듯, 일찍 결혼해서 갖게 된 이점에 관한 말이었다.

 

일을 마치고 밤에 돌아온 엄마는 어두운 방에 들어와 설핏 잠이 든 내 머리맡에 앉았다. 그리곤 잔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너희 일찍 키워놓은 덕분에 친구들이 애기 낳느라 회사를 그만둘 때도    있을 거야

‘엄마가 건강하고 어릴 때 낳았으니까 너희가 이렇게 건강한 거지’

‘우린 나이 차이가 적게 나니까 나중에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거야. 같이 여행 다니고 놀러 다니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


마치 흔들리는 자신에게 말하듯, 엄마는 내게 말했다.



그러던 엄마가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빨간 배낭 하나를 샀다. 하나에 10만 원도 넘는, 당시 내겐 충격적으로 비싼 가방이었다. 책가방이라기엔 컸고 너무 튀는 빨간색이라 우리 집 누구도 맬 일이 없어 보였다. 엄마는 여행용 배낭이라고 했다.


‘우리 딸들 크면 같이 배낭여행 가려고 샀지~ 같이 유럽 같은 데 배낭여행 갈 때 쓰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희망적이었다. 떠나고 싶었지만 우릴 먹여 살릴 돈이 필요했고 애들 봐줄 사람도 없었던 엄마는, 비행기티켓 대신 배낭을 산 것이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나는, 내가 대학생이 되면 엄마와 유럽 배낭여행을 가는 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우리 집 경제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32살의 엄마와 42살의 엄마는 달랐다. 먹고살기 위한 일상에 파묻혀, 반짝이던 젊은 날의 꿈을 잃었다. 노후에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기 위해 은퇴까지 지켜야 하는 직장이 생겼다.


당신의 청춘을 바쳐 키운 딸들과 유럽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던 엄마는, 이제 너희끼리 재미있고 편하게 다녀오라고 거실에 앉아 손 흔들어주는, 현실에 타협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이 없다면 거렁뱅이 여행을 하면 된다. 원래 배낭여행이 그런 거니까. 

그런데 나는 변한 엄마의 꿈에 서러움을 느꼈다. 그렇게 즐겁게 딸들과의 여행을 꿈꾸던 엄마가 그 꿈을 포기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이 있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하길 포기했다. 아무리 가자고 해도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마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엄마 대신 엄마의 빨간 배낭을 메기로 결정했다. 젊은 엄마가 하고 싶었던 배낭여행. 

나를 키우느라 젊음을 허비한 엄마 대신, 청춘을 짊어 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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