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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un 04. 2021

대충 딸기 비슷한 것을 사다 먹었다

딸기가 너무 비싸다

딸기가 너무 비싸다.

그래서 대충 딸기 비슷한 것을 사다 먹었다.

이제는 썩어버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딸기였을 무언가를.



  주제에 맞지 않는 것을 갖고 싶어 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제철일  가장 비싼 과일, 출시 직후의 전자기기 같은  말이다. 하필 딸기는 가장 비쌀 때 가장 땡긴다. 밤사이  눈이 우리 동네를 힘껏 안아주고 아침 인사도 없이 떠난 , 이상하게 추워 보이는데 따듯했던 . 딸기가 먹고 싶은데 너무 비싸다.


 그래서 대충 딸기랑 비슷한 걸 사다 먹었다. 분명 딸기지만 딸기가 아닌 그것을 발견한 것은 우유를 사러 들른 슈퍼에서였다. 잠깐 스친 시선이 할인상품 매대에서 딸기를 찾아냈다. 그곳엔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모양이 망가진 상품들이 저렴하게 팔리고 있었다. 더 상하기 전에 빨리 팔아치워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창고 근처의 어두운 구석에 위치해있다. 숨겨버리고 싶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두 걸음만 더 가면 신선하고 새빨간 딸기가 눈처럼 하얀 스티로폼 박스에 가득 담겨있지만, 그쪽은 최대한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 거뭇거뭇한 딸기가 담긴 플라스틱 팩에는 덕지덕지 가격표가 적혀있다. 가격표는 구천구백 원이었다가, 오천 원이었다가, 구백구십 원이 되었다고 말한다. 마지막 구십 원은 딸기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리라.


그리고 뒤적거려 그나마 상태 좋은 딸기 박스를 골라낸다. 이제는 썩어버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딸기였을 무언가를.


 얕은 기대를 안고 딸기를 수돗물에 살살 씻어낸다. 딸기가 썩으면서 만들어낸 부산물이 말라붙어있다. 기적처럼 아직까지 쨍한 채도를 유지하는 열매도 더러 있다. 그런 것은 얼른 헹궈내어 입에 넣는다.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한다. 너무 오래된 나머지 세상의 온갖 향기에 섞여버린 것일까. 자신을 잃어버린 것일까. 딸기 씨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면 분명 딸기향이 나는데, 앞니 두 개로 살살 베어 물어 혀로 으깨어가며 먹어도 맛이 연하다. 향만치도 못한 맛의 세기다.


 그럼에도 딸기를 먹는 기분은 난다. 나는 딸기를 먹고 싶었고 지금 딸기를 먹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뤘으니 나는 이제 더는 딸기가 먹고 싶지 않다. 비록 지금은 본래 불리우던 이름과 멀어진 어떤 썩어가는 물체이지만, 내가 먹음으로써 딸기는 본인의 소명을 다했다. 맛이 달건 시건, 진하건 연하건 상관없다. 딸기로 피어나 딸기란 이름으로 불리웠으며 딸기가 먹고 싶던 사람에게 먹혔다.



썩어 문드러져도 딸기라고 불리는 딸기처럼, 나도 세월이 나의 존재를 흐려놓아도 나의 이름으로 불리우게 될까. 나의 욕심일까.





솔향을 머금은 글과 사진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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