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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Mar 05. 2022

백지 시험지를 내던 이과생이 브런치 작가가 되다

글쓰기를 향한 놀라운 삶의 변화

쓰고 싶다.



대학 때 교육학 시험은 큰 종이에 몇 줄의 문제가 전부인 서술형 시험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전공 시험과는 달리 생각을 쓰라는 시험에 단 한 줄도 쓸 수 없어 백지를 내고 나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생각은 어떻게 글로 쓰는 건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남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글로 쓰는지 참 궁금하기도 했다. 


어릴 때 나는 말수가 매우 적은 아이였기 때문에 생각을 말로 하는 것도 힘들었다. 성인이 되고 교사가 되고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참 어렵다. 말이 어려우니 글은 더 어려웠다. 그래서 참 오랫동안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처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할 때만 해도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무감이 있었다.

' 자신이 생각한 바와 연구한 바를 글로 쓸 수 없다면 전문가라고 할 수 없어요.'

예전에 가까운 선생님이 한 이 말이 마음에 크게 남은 탓이다.


수업에 관심이 많고, 수업 경험이 점차 쌓여가고 있고, 내 수많은 경험들이 나의 전문성이 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경험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니. 내 교직 생활의 마지막 즈음에는 수업 전문가라는 수식어를 얻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글쓰기에 도전해야 했다.


처음엔 수업과 관련하여 조금씩 수업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글을 보여 준건 A4 한쪽이 채 안 되는 수업 참관 후기였다. 이후 내 공개수업 성찰록을 써보기도 하고, 간단한 독서 후기를 교환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시작해야 하는 무거운 일이었다.


이 글쓰기 훈련을 계속할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업 나눔 모임을 시작하며 모임 후기를 꼭 써서 선생님들께 드리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하게 되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한 번 시작하니 그건 모임 선생님들과의 약속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후기라고 해도 대화 내용을 옮겨 쓰는 정도였다. 하지만 점점 수업 나눔 중에 하지 못했던 내 속의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모임 녹음 파일을 다시 들으며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하고 글로 다듬는데 모임 시간의 두배가 들었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밤 10시 이후에나 가능했기 때문에 매일 한두 시간씩 거의 5일을 매달려야 겨우 한 편의 후기가 만들어졌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후기를 완성한 날엔 늘 설레었다. 이 글을 읽는 선생님들의 반응이 기대되었고 돌아오는 피드백의 말들이 너무 기뻤다. 고통과 기쁨의 시간을 오가며 2년을 이어왔다. 마지막 즈음에는 심지어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선생님들이 생겨났고 자료집으로 만들어 관내 학교로 보내고 싶다는 요청도 받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글쓰기도 연습하면 되는 것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많은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도전하고 연습하고 부딪혀서 안 되는 일이 없겠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못하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뭐든 할 수 있구나.'




올해 학습연구년 특별 연수에 선정되면서 1년 동안 하고자 하는 여러 목표들이 있었다. 그 목표들을 모두 아우르는 한 가지 목표가 '기록하는 삶'이다. 그래서 나를 강제할 새로운 약속이 필요했다. 3월이 되기 전 마지막 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글 세편도 정성스럽게 고르고 활동 계획도 아주 구체적으로 썼다.(사실 지난번에 떨어진 이후로(5달 전) 활동 계획은 수시로 생각날 때마다 메모해두었다.) 제발.. 제발.. 기도했다.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다. 매일 한 편씩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지금까지는 그냥 흘러가버렸던 내 삶 속의 생각들이 하나둘씩 글감으로 여겨지게 되고 급기야 이제는 쓰고 싶은 주제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모두 붙잡아 두고 싶다. 아직 써나가는 데는 서툴러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분명히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신기한 경험이다. 강제와 의무감으로부터 자발적 욕구로 이어진다는 것이 놀랍다. 앞으로의 내 브런치 글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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