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나의 세 번째 수업 참관 노트가 시작되었다.
나의 첫 번째 수업 참관 노트는 2018년 4월에 시작하였다. 그 시작이 이리도 큰일이 될 줄 몰랐던 때라 정확한 날짜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고3 담임을 하던 때였다. 하지만 수업 공부를 하고 싶었다. 오히려 고3을 가르치던 때라 내 수업의 의미를 더 찾고 싶어 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3년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둠 수업을 해오며 또 수업 나눔 모임을 하며,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던 탓이다.
수업을 배우려면 다른 수업을 많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의 공개 수업은 참관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여기던 때였다. 대부분 강요에 의해 혹은 순서에 의해 그 해의 공개 수업자에 당첨된 것이라 안 가주는 게 예의라는 말을 신규 시절부터 들어왔었다. 학기에 한 번씩 하는 자율장학도 교장 교감 선생님이나 들어가는 것이지 동교과 선생님이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문화가 그랬고 분위기가 그랬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공문을 보기 시작했다. 다른 학교에서 하는, 교사 1명의 이름이 찍힌 대외공개수업을 찾아다니기로 한 것이다. 교육청 단위의 연구회에서는 꼭 대외공개수업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곳도 공문만 보내고 아무도 안 올 거라고 기대하는 곳도 많았겠지만 나는 그냥 뻔뻔하게 참관을 가보기로 했다.
다른 학교에서 하는 수업에 참관을 하려면 출장을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4시간 정도 있는 수업을 다른 선생님과 시간을 교체하여 오전 1~4교시로 몰아서 하고 공개 학교로 향해야 한다. 4시간을 연속으로 수업하고 나면 사실 너무 힘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수업을 교체해 주신 선생님께도 죄송함이 있다. 담임이라면 우리 반 종례도 부담임 선생님께 부탁드려야 한다. 우리 반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데 내가 먼저 나오는 것도 참 마음 불편한 일이다. 학교 행사나 다른 이유로 절대 출장을 나갈 수 없는 날도 많았다. 다른 학교로 수업을 보러 간다는 것은 온갖 불편한 일을 감수하고서도 실행할 만큼 엄청난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수업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것을 감수하겠노라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 공개 수업 공문은 잘 보이지 않았다.(나중에 세어보니 내가 갈 수 있었던 대외 공개 수업은 1년에 서너 번 뿐이었다.) 그러니 더욱 수업을 열어 준다는 곳이면 열일을 제쳐두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피곤함, 여유로움 등과는 타협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처음으로 참관한 수업은 우리 학교에서 45분 정도 거리의 중학교에서 있었다. 수업 참관을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몰랐고 가도 되는 자리인지도 몰랐지만 그냥 무작정 갔다. 수업 후 협의회 자리에도 덜덜 떨면서 앉아 있었다. 협의회에서는 돌아가면서 의견을 말해야 하는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온 출장인데 말하는 것이 무섭다고 배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협의회 자리에서 오고 간 말들을 기록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단지 수업에서 본 것을 써보자는 생각에 노트 한 권을 들고 갔었다. 그날의 기록은 참 짧았다. 그 노트가 첫 번째 수업 참관 노트가 되었다. 이후의 수업 참관에는 항상 이 노트를 가지고 갔다.
그 후 참 감사하게도 우리 학교에서 함께 수업 나눔을 했던 선생님 두 분이 자율장학 수업에 진짜 와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수업을 열어주시는 선생님들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정말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분들께 보답을 하고 싶었다. 나는 어땠었나 생각해 보았다. 어렵지 않게 수업 참관 후기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 잘하지도 않은 수업이었는데 교사의 이런 의도가 보였다고 말씀해 주신 옆자리 선생님의 수업 참관 후기.(이 옆자리 선생님은 현재까지도 나의 멘토이시다.) 그것을 받았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참관 후기가 나를 수업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참 감동적인 것이었다.
내가 그런 감동을 드릴만큼 글을 쓸 수 있을지 자신 없었지만 참관 후기를 써드리기로 했다. 일상의 수업을 공개해 주시는 선생님들이라면 수업으로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실 거라고 믿었다. 2018년 4월 24일에 그렇게 나의 첫 수업 참관 후기가 탄생하였다. 그 후 나는 수업을 공개해 주신 선생님들께는 꼭 보답으로 참관 후기를 써 드렸다. 그리고 그것을 소재로 함께 수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 잘 쓰지 못한 참관 후기였지만 선생님들은 너무 고마워해주셨고 서로 더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그 후로 수업을 관찰하는 연수, 대외 공개 수업, 교내 공개 수업, 가능한 곳이면 어디든 수업을 보러 다녔다. '수업 비평', '수업 코칭'과 관련된 책도 읽으며 어떻게 수업을 봐야 하는지도 공부했다. 위에서 언급한 멘토 선생님께는 수시로 수업 참관하는 방법에 관해 물어보고 배웠다. 멘토 선생님께 배운 후부터 수업 참관에서 꼭 지키는 3가지는 이것이다.
수업 전에 다른 사람과 잡담하지 말고 교수 학습 과정안을 꼼꼼히 읽어라.
수업은 첫 시작부터 끝까지 보는 것이 예의이다.
수업은 손으로 보는 것이다. 교수 학습 과정안과 같은 교사- 학생 양식을 만들어 수업 속의 대화를 모두 기록하라.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내 수업 참관 노트에 기록들이 쌓여갔다. 한 권이 끝나고 또 한 권이 끝나고 이제 세 번째 노트이다. 5년 동안 약 50여 개의 수업을 보았다. 참관 후기를 쓰는 방법도 점차 진화해 나갔다. 첫 참관 후기는 한쪽 정도였는데 최근에 가장 정성 들여 쓴 참관 후기는 12쪽이었다. 수업을 보고 참관 후기를 쓰고, 수업자 선생님이 행복해하시고 나도 덩달아 행복하고. 이것이 좋아 수석교사를 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수석교사가 된 올해는, 그렇게 만나기 어렵던 공개 수업이 내 앞에 수없이 펼쳐져 있다. 수석교사도 교장 교감 선생님과 함께 자율 장학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교장 선생님과 상의하여 올해는 기간제 선생님들과 저경력 선생님들의 수업에는 필수로, 다른 선생님들은 희망을 받아 들어가기로 했다.
자율 장학이라는 이름보단 수업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수업으로 함께 토의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하고 선생님들께 안내하였다. 수업을 열어주시면 성심 성의껏 참관하고 이틀 내에 나만의 참관 후기를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속의 작은 고민을 함께 나눠보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참 감사하게도 첫 주에 세 분에게 초대를 받아 수업 참관을 하였고 정성 들여 참관 후기를 작성하였다.
한 분의 참관 후기를 완성하는데 서너 시간이 걸렸다. 일주일에 세 개를 쓰고 나니 한 주가 내내 숨차게 달리기를 한 기분이었다. 아직 내공과 실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힘들다 느껴지니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지난주 목, 금에 두 개의 수업에 더 참관하여 이번 주말에는 참관 후기에 매달려야 한다. 마음이 무겁다.
부끄러웠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이런 마음이라니.
이 글을 쓰며 시작할 때의 마음을 다시 기억해 내게 되었다. 다시 간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수업 참관에 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