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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Apr 01. 2023

개학 2주 만의 공개 수업(2)

수요일 아침이 되었다. 공개 수업 안내 메시지는 월요일에 보냈으니 오늘도 공개 수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내려고 창을 켰다. '어떻게 쓰면 좀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한 시간 모두 참관하기가 부담스러울 때 초반과 후반 중에 언제 오시고 싶을까? 내가 어떤 정보를 더 제공해 드리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니 수업 과정을 조금 더 상세하게 안내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미니 공개 수업 안내]

오늘 3교시!!!
5층 생물실에서 미니 공개 수업이 있습니다.

1. 짝에게 설명하는 방법 안내 및 연습
2. 반응하는 방법 안내 및 연습
3. 활동 목표 구조 안내
4. 행동으로 읽기 안내 및 연습
5. 이기적 유전자 돌아가며 읽기
6. 자기 생각 쓰기
7. 짝에게 설명하기
8. 전체에게 발표하기(모두 손들기)

이런 순서로 수업이 진행됩니다.
관심 있으신 선생님들~ 주변 선생님과 같이 참관 오셔요^^

 

전교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늘 떨린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보내기 버튼을 누른다.




드디어 3교시 수업 시작이다. 학생들은 모두 생물실에 왔고 모둠과 자리 안내를 하는 동안 아직 아무도 오시지 않는다.

'오늘은 아무도 안 오시려나..'


시작하고 5분이 되었을까? 한 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자리를 잡고 앉으신다. 이 분은 수업 친구 모임에도 가장 먼저 답을 주신 분이었다. 조금 지나니 또 한분이 들어오신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이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었고 두 선생님은 하나 남은 모둠 자리에 앉아 올려드린 활동지를 보며 수업에 참관하셨다. 시간이 좀 더 지나니 선생님들이 또 오신다. 이번에는 생물 선생님이다. 시간 차이가 조금 있긴 했지만 두 분의 생물 선생님이 모두 오셨다. 와..!! 나의 두 번째, 세 번째 목표 모두 달성이다.


수업은 계속 진행되어 5번째 단계인 이기적 유전자 돌아가며 읽기에 들어갔다. 책에서 이번 단원과 관계된 부분을 발췌하긴 했지만 내용이 꽤 길었다. 학생들이 혼자 읽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는 2~3문장마다 번호를 붙여두었다. 그리고는 한 사람당 한 번호씩 소리를 내어 읽어 전체 학생이 돌아가며 읽어 함께 읽는 방법을 택했다. 번호는 총 30번까지이고 학생은 25명이었다.


학생들이 순서대로 책을 읽는 동안, 남은 모둠 자리에 앉아 계신 선생님들에게 살짝이 같이 읽어주십사 요청드렸다. 첫 번째 차례가 된 선생님이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한 번호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어주셨다. 듣고 있던 아이들이 놀라 뒤를 돌아본다. 선생님들이 함께 해 주고 계심을 보고 다시 책 내용으로 집중한다. 네 분의 선생님들이 모두 수업에 함께 참여하는 학생이 되어 한 번호씩 읽어주셨다. 참관 선생님들이 구경꾼이 아니라 수업에 함께 참여하, 그러면서 수업을 그대로 느끼고 학생의 입장에서 경험하시기를 바랐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또 기꺼이 그렇게 해 주셨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책 읽기의 마지막이 되어갈 때쯤 교장, 교감 선생님이 뒷문으로 들어오셨다. 어제는 앞부분만 보고 가셨는데 오늘은 그 뒷부분을 보러 다시 오신 것이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기쁜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교장 선생님은 순회하며 여러 학생들의 활동지를 보기도 하시고 어떤 학생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셨다.




오늘은 결국 총 여섯 분이서 수업에 참관하셨다. 수업이 끝나고 교장 선생님은 먼저 와 계셨던 네 분의 선생님들과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셨다. 학생들도 모두 나가고 참관 오신 분들도 나간 후 생물 선생님 두 분이 수업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쓰고 발표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 놀라웠다. 나도 모두 손들기를 꼭 해봐야겠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알려주니 아이들이 다 할 수 있게 되는구나.' 이런 말씀들을 하며 서로 자신의 수업상황에 어떻게 활용해 볼 것인지 한참 얘기하였다. 내 수업을 소재로 하여 선생님들과 서로 수업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 내가 정말 바라던 순간이었다. 오늘이 그 시작이 된 것 같아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모두가 돌아가고 책상 정리를 하는데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앉으셨던 자리에 활동지가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활동지에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써 두신 것이었다. 활동지의 부분 부분마다 여기에서 무엇이 좋은지, 어떤 의미가 느껴졌는지, 무엇이 더해지면 좋을지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다음 수업이 있어 이렇게 메모만 하고 먼저 가신다는 글귀가 보였다.


내 자리로 돌아와 선생님들이 해주신 말들과 써주신 글을 여러 번 곱씹다 보니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네 분의 선생님들께 각각 메시지를 보내며 카톡으로 커피 쿠폰을 보냈다. 선생님들이 또 메시지로 마음을 전해오다.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교장 선생님은 '시나브로 물들듯이 나아가면 된다. 어제는 우리 둘 뿐이었지만 오늘은 다른 선생님들도 오시고 이렇게 점차 점차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많이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참 감사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아낌없이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는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든든했다.


또 한 번의 도전을 하고 그 마무리를 잘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스스로가 대견했다. 몇 분 안 되지만 수업에 와주시고 마음을 나눠주신 선생님들께만이라도 내 진심이 전해진 것 같아 희망이 느껴졌다. 그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참 애쓰고 있구나'라고 느껴졌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애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애쓰도록 만들었을까?


내가 오던 날부터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시던 교감 선생님, 수석교사실 만드는데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교장 선생님이 떠올랐다. 두 분 모두 수석교사를 원하고 수석교사로 인해 우리 학교가 무언가 변화되길 바라고 계셨다. 교육청에 끈질기게 수석교사를 요청하셨다고 했다. 수석교사를 요청하는 학교가 많아 교육청에서는 배치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다.


어깨가 무거웠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많은 기대들에 부응하고 싶어 무언가를 계속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나눔 선생님을 더 섭외하고 싶고, 수업 공개로 내 진심을 전하고 싶고, 간식을 들고 학년실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이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나의 부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천천히 스며들어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나는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여유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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