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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눈 Mar 31. 2024

이제는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수업 수다 친구 모임 start!

‘올해는 어떤 분이 함께하시게 될까?’

설렘과 기대감으로 주말 동안 작성해 둔 메시지를 전 교사에게 보냈다.

[수업 수다 친구를 모집합니다.]

드디어 선생님들께 이 메시지를 보내게 되었네요.
두근두근 설레고 떨립니다.

올 한 해 동안 저와 함께 수업 수다를 나눌 선생님들을 찾고 있습니다.
조건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수업에 대한 고민만 있으면 됩니다.

작년에 10여 분의 선생님들과 함께 모임을 하였습니다.
담당 학년도, 과목도, 경력도 모두 다른 선생님들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매우 풍성한 대화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대화들이 쌓여 각자의 수업에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고, 나아가 서로에게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살짝 손만 들어주셔요.
한 달에 한 번 함께 만나 수업 수다를 나누어봐요~~^^


주말 동안 한 시간을 끙끙거린 메시지이다. 메시지가 너무 길어서도 안 되고 너무 건조해서도 안 된다. 진심이 느껴지면서도 무겁지 않게, 진지하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게 써야 한다.

‘무슨 요일에 보낼까? 시간은 언제가 좋으려나?’

일 년 중 메시지 보내는 데에 가장 공을 들이는 때이다. 가까운 선생님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결국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을 택했다. 일찍 출근해서 한글 파일에 미리 작성해 둔 메시지를 메신저 창에 옮겨 쓰고 ‘보내기’ 버튼을 누른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000 메시지 수신’ 알림이 몇 개씩 뜨고 사라진다. 하루 종일 메시지에 신경이 쓰였다. 많이 신청해 주실까? 어떤 분이 신청하실까?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여러 이유로 망설이는 분이 계실까 봐 이틀쯤 후에 다시 한번 메시지를 드렸다. 어떤 마음이실까를 상상하며 문장을 고르고 골랐다.

[수업 수다 친구. 이런 선생님들이면 더 좋아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별로 나눌 게 없는데 괜찮을까요?’

많은 선생님들이 특별하고 잘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수업 수다 친구는 잘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고민하는 무언가가 있는 분이면 좋습니다.

특히 이런 선생님들이면 더 좋아요~
• 학교에 오면 외로워요.
• 수다 떨 친구가 필요해요.
• 수업을 잘해 보고 싶어요.
• 수업과 평가가 어려워요.
• 수업을 나누고 싶은데 낯설고 부끄러워요.
• 수업이 뭔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데 뭘 바꿔야 할지 모르겠어요.
• 매일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의미를 못 찾겠어요.

지금은 누구도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저는 함께 나누는 것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 함께 해요~~^^ 

작은 용기를 내어 ‘저요’라고 손만 들어주세요.     

역시나 그 메시지를 보고 연락을 주신 분들도 계셨다. 전부 열네 분, 나까지 열다섯이다.




첫 모임에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질문을 넣었다가 뺐다가 하며 며칠을 고민했다. 서로 얘기 한 번도 나눠보지 않는 선생님들도 많을 테니 처음은 어색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형식적이지 않은 소개, 사적인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소개 질문을 고민했다. 결국 ‘자기소개와 함께 수수친에 신청한 이유, 최근 가장 힘들었던 일, 최근 가장 행복했던 일’을 소개하기로 했다.      


선생님들이 오시는 시간 동안 먼저 오신 분들은 질문에 답을 작성해 보시라고 했다. 진지하게 작성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첫 번째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가 중요한데, 그걸 놓쳤다. 내 소개를 더 제대로 준비했어야 하는데, 아쉬웠다. 질문을 준비해 두고 정작 내 답은 준비해 두지 않았다니.. 바보 바보.. 이렇게 또 배우는구나.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겠지? 아직도 모임을 진행하는 데에 한참 부족함을 느낀다. 지금 다시 소개하라면 내 이야기를 좀 더 많이 해야지.


초등학교 6학년 딸과 4학년 아들이 있고, 무언가에 꽂히면 바로 실행하고 마는 남편이 있어 요즘은 한 달째 아침에 샐러드를 먹고 있는 중이에요. 영어 공부를 평생의 숙제처럼 안고 있어 늘진 않지만 매일 30분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내가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제 꿈은 70이 되어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 남편은 이 말에 전혀 공감을 못해요.ㅎㅎ 작년에 수석교사가 되었고, 우리 학교로 발령을 받았어요.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데 오래 걸리는 성격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아하는, 그래서 늘 외향적이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타입입니다. 작년엔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네요. 과학과라 그런지 극 T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부턴 희한하게 F로 바뀐 것 같아요. 툭하면 눈물이 나요.ㅋㅋ


이렇게 시작했으면 선생님들의 자기소개도 더 다양해졌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셨다. 또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질문도 하고 농담도 하고, 모임장은 허술한데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분위기가 한층 따뜻해졌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교통사고로 반년 이상을 병원에 계시는 친정어머니 이야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셋째가 있는데 학교에서도 신입생을 받는 1학년 부장이라 너무나 힘들었다는 이야기, 이른 출근과 잦은 야근으로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 무거운 업무에 연일 야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런 사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들을 수 있었을까? 너무나 어렵게 꺼내셨을, 그리고 힘들었을 마음을 안아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 행복한 순간들도 많이 있었다. 아이맥스에서 듄 2를 보았던 일, 자전거로 오는 아침 출근길 피어있는 개나리를 보는 시간, 야구가 개막했고 응원하는 팀이 연승을 한 것,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 저녁 시간의 행복, 고가의 실험 장비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 학생들로부터 받는 긍정의 피드백들, 큰 걱정거리가 없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올해는 이런 모임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중 모두의 부러움을 산 건 다섯 식구와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한 것이었다. 여러 명의 선생님들이 있는 만큼 행복의 순간과 모습들도 다 달랐지만 서로의 행복한 기억을 듣는 것으로도 말랑말랑 행복해지는 시간이었다.     




삶 나누기가 끝나고는 앞으로 우리 모임의 방향에 관해 이야기했다. 작년에는 특별한 주제 없이 발제문을 작성해 왔는데 올해는 얇은 책 한 권을 소재로 삼기로 했다. 한 꼭지당 4~5장밖에 되지 않아 미리 읽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고, 하지만 주제는 우리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수업에 대한 이야기라 친근한 내용이 많은 책이다. 차례를 그대로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에 스캔한 이미지를 넣었는데 글씨가 너무 작다. 이런..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는지. 이미지도 넣고 차례 제목도 한 번 더 쓰면 될 것을..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주제마다의 제목을 한 번 읽고, 선생님들 각자가 발제하고 싶은 장을 골랐다. 앞으로의 일정도 학사 일정에 넣어 출력해 드렸고 선생님들이 발제하실 날을 고르시도록 했다. 작년에는 모임 때마다 그때그때 다음 발제자를 정하고 발제의 주제도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하니 확실히 앞으로의 모임에 대한 기대나 의지가 더 커진 느낌이다.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서로 어색한 사이에서 시작했지만, 마칠 때는 서로에게 질문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설렘으로 기다려 온 올해의 첫 수수친 모임이 잘 끝났다.



수수친 모임 후기를 정성스레 작성하고 한 분 한 분 선생님들께 가져다 드렸다. 선생님들은 다시 후기를 읽은 소감을 메시지로 보내오신다. 이 모든 순간들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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