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친 두 번째 모임이다. 이번 모임부터는 책의 한 챕터를 읽고 그와 관련된 질문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내가 첫 발제를 맡았다. 사실 내가 처음 수업 나눔 모임을 했을 때 발제라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몰랐던 경험이 있어 수업 모임에서 모임장인 내가 먼저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번에 읽을 챕터의 제목은 ‘수업의 본질’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이다. 책을 읽고 선생님들과 나누고 싶은 질문을 고민해 본다. ‘어떤 질문이면 선생님들 각자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고민할 지점이 있는 질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막 써보다가 결국에는 3가지 질문을 골랐다.
가. 전체적인 느낌(소감)과 함께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나. p.15 ~ p.16에 제시된 수업 중 선생님의 수업과 가까운 수업이 있나요? 혹은 추구하고 싶은 수업이 있나요? 다. ‘수업의 본질’에 관해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언제 그런 생각이 드셨나요?
한 명씩 돌아가며 발언을 시작했다. 첫 번째를 자처한 선생님은 책을 읽으면서 혼나는 느낌이 들었고 그러면서도 약간의 반발심이 생겨났다고 했다. 매우 솔직한 발언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공감했다. ‘꼭 좋은 수업을 한 방향으로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학생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수업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겨났다며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너무 기뻤다. 그러한 솔직한 질문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이 무조건 옳고 그래서 우리는 여기 적힌 말대로 해야 한다는 수동적인 자세보다 책을 비판적으로 읽고 우리는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제일 좋은 공부라고 생각했다.
이후 개별화에 관해 여러 경험들이 오고 갔다. 꼭 개별적인 학습지를 제공해 주는 것이 개별화는 아니다. 개별적으로 다른 것을 준다기보다 교사가 다양한 것을 준비해 두었다면 학생이 자신의 능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개별화이다. 또는 수업에서 이해한 것을 자신의 말로 설명해 보게 하는 것도 개별화가 될 수 있다. 각자 자신만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에 대해 교사가 피드백해 주는 것도 해당된다. 개별화 수업이란 학생 개개인이 자신만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수업이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선생님의 질문으로부터 우리는 좋은 배움을 얻었다.
교사가 생각하는 수준의 배움과 아이들 수준의 배움이 달랐음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며 모둠활동에서 학생들의 대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의 배움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교사가 원하는 배움의 수준에 있는 내용을 강의한다면 수업에서 학생과 교사는 분리되고 말 것이다. 모둠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의 수준에서 교사가 원하는 수준까지 데리고 오기 위한 발문을 계단처럼 놓아주고 모둠 내에서 차근차근 밟아 올라올 수 있도록 해 준다면 고민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활동만 열심히 하고 나서 시험 문제 풀 때 배운 것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열심히 강의를 하게 된다는 마음을 털어놓은 선생님이 계셨다. 사실 많은 선생님이 그렇다. 교사가 알려주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듣는다고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배움은 사고 과정이 있을 때 일어난다.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는 배움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 학생들에게 들으면서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 채 안 된다. 하지만 교사는 학생들이 들으면서 사고하기를 기대하며 강의를 한다. 수업 중 전체에게 던지는 질문 또한 학생들이 사고하기를 기대하면서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교사의 말은 그냥 흘러가는 소리가 될 뿐이다. 교사가 한 질문에 곧 교사가 답할 거라는 것을 아는 한, 혹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고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들이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교사가 전체를 향해 던지는 질문을 활동지에 제시하고 각자 답을 써보라고 하기만 해도 학생들은 사고하게 된다. 오늘 수업에서 핵심을 이끌어갈 질문들을 고르고 그것을 미리 활동지로 만든다. 그 질문의 답이 되는 것들이 교사가 강의로 알려줄 내용이 되면 된다. 학생들이 모둠 토의로 미리 사고한 후 서로의 답을 비교하며 교사의 답에 근접하게 하면 학생들은 훨씬 능동적으로 배울 수 있다.
올해 신규교사인 선생님은 ‘열심히 가르치지만 배운 것이 없다면 열심히 가르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서 ‘의미’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고 했다. 현재 선생님 자신은 무의미한 억양, 강조, 제스처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고 자신의 배워왔던 많은 선생님들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의도를 가지고 자신만의 수업 방식을 만들어야 하며 그것은 수업의 본질인 배움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엄청난 말을 하셨다. 이제 막 교직 생활을 시작한 선생님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정말 놀라웠다. ‘의미와 의도’ 이것은 교육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 모임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음악 선생님은 그 연륜이 드러나는 음악 수업에 대한 선생님의 철학을 멋지게 설명해 주었다. 학교에 오며 ‘나는 음악을 열심히 배울 거야’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다고, 그래서 교사의 머릿속에 아는 걸 막 설명해 주고 학생들이 많은 걸 배웠으면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으셨다고 했다. ‘음악’은 ‘소리 음’에 ‘즐길 락’이다. 그래서 음악 시간이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학생들이 즐겁게 배울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고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학생들이 흐름에 맞춰 따라오기만 하면 될 수 있도록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었고, 그와 관련하여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고를 필요한 순서와 흐름에 따라 경험하게 함으로써 선생님이 의도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를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꼽았다. 또 합주를 통해 훨씬 더 재미있게 기량을 크게 향상시킬 수도 있어 평가는 아니지만 수업에서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실제 학생들은 모둠활동을 하면 훨씬 활기차다. 함께 하며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한다. 다른 교과에서도 모둠활동을 교과 내용과 별개로 단지 재밌는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합주와 같이 내 교과를 깊이 고민할 수 있는 활동으로 만든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은 배움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수업에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날 때 아이들도 선생님도 행복한 수업이 될 것이다.’라는 부분을 선택한 선생님들도 많이 계셨다. 특히 한국사 선생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를 학생들이 싫어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수업 시간을 조금은 기대하는 과목, 한 명에게서라도 한국사 수업 재밌다는 말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수업하신다고 했다. 특히 ‘교사는 인강 강사가 아니다.’라는 말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나만의 방법으로 학생의 배움이 일어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신다는 말이 참 울림이 컸다.
이후의 질문에서도 우리는 어떤 수업이 학생들이 잘 배울 수 있는 수업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활동 수업과 강의식 수업, 균형 있는 수업, 학생들이 겪어 보는 수업 등에 관해 여러 선생님들의 생각을 나누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고 조율하며 수업의 본질에 관해 깊이 고민해 보았다. 단 아홉 페이지의 책을 읽고 이렇게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역시 선생님들은 엄청난 내공을 가지고 계신다.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들은 수업, 행복, 배움이었다. 우리는 수업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하고, 그것은 학생들의 배움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많고 많은 이야기들을 꿰는 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우리 모두 수업에서 행복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여기에 모여있었다. 그 행복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질문은 언젠가는 답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막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에게 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수업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