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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의 눈 Dec 29. 2022

혼자가 되어가는 반 오십 MZ

한 해를 보내며 삶을 돌아보다.

 2022년을 마무리하며, 필자는 내년에 한국 나이 26살이 되어 반 오십을 온전히 보내게 되었다. 1980 ~ 1996년생이 밀레니얼 세대, 1997 ~ 2012년생이 Z세대임을 생각하면 MZ세대의 정 가운데에 존재하는 이들이 반 오십을 넘겨가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MZ세대를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이어지는 요즘 시대에 누군가 한 명쯤은 MZ가 반 오십을 보내게 된 소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거기에 더해 필자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과정을 기록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이 작성되었음을 알린다.


바쁘지 않으면 무능한 것 같아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그럼에도 혼자가 되어도 괜찮다는 감정을 조금씩 이해해 나가고 있다. 20대 초반까지의 필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올라오려고 하면 그 시간을 모두 타인으로 가득 채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꾹꾹 눌러 외면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라도 약속이 존재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약속으로 꽉 채워진 달력을 보면 조금 힘들어도 뿌듯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었다. 그래서 바쁨을 지향하고, 바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나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었던 20대 초반 시절을 보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주위에 비해 스스로가 보잘것없다고 느껴서 스스로를 포장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한 순간이라도 멈추면 사실 무능력한 자신을 주위에 들키게 될 것 같았고, 내가 사실은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쁨을 멈추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더 많은 일, 더 많은 약속을 만들어 내며 회피했다.


 그렇게 바삐 살던 와중 처음으로 혼자라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생겼다. 19년도 여름에 처음으로 혼자 8일간 미국 여행을 떠나게 된 때였다. 당시에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스스로가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놀랐던 충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늘 곁에는 가족 또는 친구가 존재했었고, 없으면 억지로 바쁘게 만들던 시기였으니 여행을 통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혼자가 된 것이다. 처음으로 혼자가 되어본 기분은 낯설고 불편했기에 조금이라도 나를 더 SNS로 타인과 연결하려는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시차에 의해 이러한 노력에도 여행 중 SNS 소통은 어려웠고, 우습게도 그 덕분에 필자 혼자만의 시간을 반강제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불편하면서도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던 당시 감정은 참 묘했다. '혼자여도 큰 일 나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느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관성적으로 이전처럼 돌아가 타인과의 시간에 의존하는 삶으로 돌아갔다. 여행 이후 드라마와 같은 엄청난 변화는 없었다.


타인에 의해 시작한 운동이 나를 혼자로 만들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군대를 가게 되면서 동시에 필자는 운동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필자는 옷을 잘 입고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금도 종종 올리고 있다) 당시에 통통하면서도 왜소한 체격 탓에 사진이 한 번에 잘 나오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정말 수십 장씩 사진을 찍어 겨우 한 장을 SNS에 올리는 수준으로 즐기던 취미 생활이었다. 여기서 오는 불편한 감정이 그래도 긍정적으로 발전되어 운동을 결심하게 된다. 운동을 해서 체격이 좋아지면 사진 찍는 횟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단순한 발상이었다. 타인에게 보일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줄어드는 원동력이 될 줄은 당시에 상상도 못 했다.


 운동 중에 특히 보디빌딩은, 운동 파트너와 함께 운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운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당시의 체형으로 헬스장을 혼자 가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도 한두 번이고 결국 혼자 운동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차츰 혼자 운동 가는 것이 익숙해지자, 어떻게 하면 운동을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운동 전에는 어떤 운동을 할지 고민하고, 운동 중에는 내가 힘들어서 포기한 것인지 정말 할 수 없어서 포기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운동 후에는 하루 운동을 최선을 다했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나와 대화하고,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하는 방법을 연습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충만한 자신감에, '얼굴은 못 바꿔도 핏은 바꿀 수 있다'는 주제로 교양 발표도 했었다..^^;

 누군가 명상, 글쓰기, 러닝 등을 통해 삶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아마 필자와 유사한 경험을 했지 않았나 싶은데, 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운동 외의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자 자신감이 생겼고, 업무나 공부에 대한 태도가 변화했다. 무작정 시작하는 것보다 주어진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자연스럽게 결과물도 좋게 나온 것 같다. 지독했던 20대 초반까지의 악순환을 끊고, 주어진 내 삶에서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혼자라고 하여 주위에 단 1명의 사람도 없이 마음의 벽을 만들어 혼자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필자가 본 글에서 말하는 '혼자'는 '혼자여도 괜찮다는 것을 이해하는 상태'가 적합하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것을 이해해가면서 변화된 것은 더 이상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어른으로 살아갈 용기"에서는 이러한 의존성을 두고 아이와 성인을 구분한다. 보살핌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아이는 타인에 대한 의존이 주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에 의존하게 되면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을 종종 보내는 것을 필자가 추천한다. 명상, 글쓰기, 운동 등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기에 반드시 필자의 예시처럼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 주어진 삶에서 홀로 설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지 않은지 혼자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 미셸 드 몽테뉴 (Michel de Montaigne)
있는 그대로 존중하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것을 여전히 이해해 나가고 있지만, 현재까지 가장 큰 변화는 다음과 같은 2가지가 있다.


1. 타인에게 나를 설득하지 않게 되었다.

 여러 경험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적어지자 삶의 태도에 있어서 '나'가 중심이 되었다. 이전에는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 즐거운 일 등은 항상 sns에 공유하는 경향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타인에게 공유할 만한 경험들을 더 높게 평가했던 것 같다. 또, 타인에게 끊임없이 나를 설득하려 노력해 왔다. 내가 이렇게 좋은 장소에 있다, 내가 이렇게 친구(연인) 관계가 좋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성취를 해냈다 등을 타인에게 나를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SNS에 공유하는 모든 사람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고, 필자도 종종 SNS를 즐긴다. 그렇지만 가끔은 즐겁거나 좋은 일은 타인에 간섭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나를 타인에게 설득하지 않게 되었다.


2. 인간관계가 개선되었다.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을 때는 인간관계로 괴로워한 적도, 주위를 힘들게 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서로 가깝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나에게 맞추고 싶어 하거나, 또는 상대방의 불합리한 요구에도 관계를 망 싶지 않다는 생각에, 어떠한 요구들이 싫어도 수용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오래된 친구, 연인 관계일수록 관계를 위한 관계가 형성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좋은 인간관계라면 서로가 독립적인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맺어져야 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는 아무리 친밀해도, 서로가 의존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서로가 각각 독립적인 상태의 관계가 건강할 수 있고, 서로가 상대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게 되며 성장하는 관계가 된다. 여전히 필자는 인간관계는 어렵지만, 있는 그대로 나와 상대를 존중하고자 하는 태도만으로도 많이 개선됨을 느낀다.



 한 번쯤 내 삶의 전반을 되돌아보는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연말을 빌려서 글을 적게 되었다. 부끄러워도 진솔하게 써 내려가려 노력했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한 내용의 글이라기 보단, 그동안 삶에 대한 고찰을 통해 앞으로 필자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과정을 글로 녹여내었다는 표현이 이 글에 더 어울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옳은 내용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지금의 이 글이 부끄러워질 만큼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나를 이해함에 있어서 부족한 점을 이 글을 정리하며 찾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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