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의심받는 시대, 나는 어떤 선배였을까.
수많은 매장의 직원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하도록 도왔고,
동료들과 함께 브랜드의 가치를 전하는 일을 정말 사랑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오버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그 일을, 그 회사를,
그리고 함께했던 사람들을 아꼈다.
특히 나보다 어린 팀원들에게
"잘했어",
"이건 이런 식으로 해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말하는 순간, 후배들의 반짝이는 눈빛에 설레였고, 즐거웠다.
내가 쌓아온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그만큼 내 존재가 의미 있다는 증거일테니까.
그러나 어느 날, 내 진심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배의 조언이 부담스러웠어요.",
"지속적으로 위축감이 들게 만들었어요.",
그건 마치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모습으로 내게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충격을 넘어 멍해졌다.
정말 걱정했고, 잘 되길 바랐던 건데..그만큼 믿었던 후배들 이었는데...
그래서 더 아팠다.
어쩌면 그 일 이후, 나는 '인성'이라는 단어에 꽂혀버린듯 하다.
생산성과 효율과 결과가 중요한 직장에서 참 안어울릴 것 같은 단어.
딱떨어지는 답이 아닌, 꾸준히 성찰하고 살펴야 하는 단어.
마치 공기 같아서 부족해 어려움을 느껴야만 그 무게를 깨닫게 되는 단어.
그래서 역량향상/ 세일즈스킬/ 같은 교육은 수없이 해왔어도
정작 함께 일할때 필요한 공감과 배려, 신뢰와 존중을 제대로 표현하는 그 인성이 바탕이 된
교육은 해보지 못했다(물론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분명 윗선에서 막혔을테니...)
진심이면 다 괜찮은 걸까.
배려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간섭이 되고,
신뢰는 왜 어떤 순간에 배신으로 바뀌는 걸까.
나는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좋은 선배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내 방식이 옳다고 믿고, 후배의 감정을 놓쳤던 건 아닐까.
내가 편한 대화가, 그들에겐 압박이었을 수도 있다.
정의롭다고 느꼈던 태도가, 누군가에겐 통제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인성 강의를 하고 있다.
사람 사이의 신뢰, 오해, 존중, 배려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시작은 누구보다 깊이 상처받은 나였다.
지금은 안다.
인성이란 결국 '나의 선의'가 아니라,
'상대가 느끼는 감정'까지 함께 헤아리는 감각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어떤 선배였을까.”
그리고,
“이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