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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Aug 23. 2023

스물여섯 번째 이사!

'이삿짐이나 보따리를 싼다!'는 사람들에게 좀 서글픈 의미의 말이다. 그동안 정들었던 곳에서의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불편한 어색함을 마주해야 하기에...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이사론을 꺼내들 것 도 없이, 정주권 문화 속에 오래 살아온 한국사람들에게 이사는 결코 쉽지 않은 큰일이다. 농토(직장)를 구하고, 살집을 마련하고, 병원이나 상점 같은 편의시설을 세팅하고 주변 친구를 사귀기까지...


그런데 지난달 갑자기 이사를 했다. 속초살이를 마치고, 경기도 하남 새 보금자리로... 집 정리를 마치며 제법 파란만장했던 우리 집 이사역정을 돌아본다.     


이삿날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하고 주민등록표의 초본을 받아보니 주소 변경 기재사항이 42번째로 초본용지 4장이 꽉 찼다.(행정구역, 세대주 변경 등도 포함되어 실제이사는 26)       

생각해 보니 제주도와 충북을 제외하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조금 기가 막히기도 하고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가 막힌 건 이사를 많이 했다는 의미이고, 대견한 것은 곳곳에 다니면서 네 식구들이 잘 견뎌내며 큰 탈없이 살았다는 의미다.     

 

아내는 장인어른이 농사를 지으셨기에 결혼 전까지 이사랑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았지만 유목민 같은 직업군인과 결혼한 원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살게 되었다.    

  

나는 부대업무를 핑계로 야근을 밥먹듯이 해 집안일은 물론 이사준비는 대부분 아내의 몫이었고 나는 집안일에 거의 문외한이었다.      


이사를 하면 초년에는 PX나 동네마트에서 공박스를 구하고, 비닐끈을 사서 바리바리 짐을 포장하고 용달차를 불러서 이삿짐을 차에 실었다. 병사들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요즘 같으면 난리가 날 상황).


이삿짐을 실으면 난 선임탑승을 하고 살 곳으로 갔었다. 군부대 2.5톤 트럭으로 간 적도 있다.


몇 년 뒤에는 나라 형편이 좋아졌는지 짙은 주황색의 대한통운 트럭이 지원되었을 때 대견했고, 전역이 가까워 젔을 땐 요즘의 전문 이사용역차 서비스가 제공될 때는 날아갈 듯 좋았다.   

     

이렇게 어느 육군 직업군인의 이사는 제주와 충북을 제외하고 전국을 누비는 특권(?)을 누렸다. 덕분에 시시 틈틈 전국 곳곳에 명산 비경이나, 유적지를 다닌 것은 아이들에게 무형재산(?)을 상속한 셈이다.    

  

아이들에게 준 무형재산은 또 있긴 하다. 1~2년마다 거주지와 학교가 바뀜에 새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알게 모르게 배양된 것이다. 그러나 민감한 사춘기 소녀들에겐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살다 보니 여러 위기도 있었지만 곱이곱이 잘 견뎌 준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사실은 묵묵히 뒷바라지해 준 아내가 수훈갑이다.     


전역을 할 때 두 달의 학자금 대출금을 제하고 남은 돈을 모두 모으니 용인의 우리 집에 전세금을 돌려주고 딱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청빈한 공직자라고 국가 유공자가 되었나?


군인들의 전역이 너무 빠르기에 은퇴자 생활을 하기는 형편이 안되었다. 지식노동자로 열심히 강의를 하였다. 대학 두 곳을 전전하고, 운이 좋아 골프장도 경영할 기회도 있었다.      


한 해 두 해 일을 하다 보니 10년이 될 무렵, 수도권지역이라 강의하러 다니는 게 고역이라 출퇴근 시간 단축을 위해 아내를 설득해 위례로 이사를 했는데 전역 후 처음이었다.      


13년 동안 할 만큼 일했다. 더 욕심부리면 안 되기에, 재작년에 경제활동은 그만하고 그동안 고생한 아내와 장년의 행복을 찾는 속초살이에 도전을 했다.


나름 꿈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도 지지고 볶고 사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이 있었고, 2년을 계획하였지만 의도치 않게 조기에 하남의 새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부동산이 폭발한 뒤라 전세권 문제가 꼬이고, 무더위 속 이사라 힘들었으나 어찌어찌 해결이 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나의 이사 역정을 돌아보니 내 인생 여정이 보였다. 항상 새로운 환경과 도전요인이 나타나고, 선택해야 하고 견뎌내야 하고 또 선택해야 하고...         

 

고생한 아내가 제일 생각난다. 앞으로 절대로 이사는 안 간다 하다가도 이사가 결정되면 어디서 힘이 나는지 무거운 가구도 번쩍 옮겨버린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사를 하면 우리 집은 가구와 살림살이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든다. 요즘 새집은 수납공간이 많아서 그런지 이번 집에서는 세간들이 모두 수납장 안으로 숨어 버려 거실이며 방이 횡하다.


그건 아내와 내 취향이 100% 맞다. 그러기에 세간 버리기의 여왕인 아내는 내 천생배필인가 보다.      

 

이번 이사 후 아침마다 걸레질을 하다가 요령이 생겼는지 귀차니즘 때문인지 rovot 청소기 구매하는 것에 관심을 표명하니 아내도 제법 관심을 갖는다.


동조자가 생겨서 고맙긴 하지만 문득 아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아 보인다. 고생만 시키고 사랑한다는 말도 뽀대 나게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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