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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Jul 05. 2023

지게부대

’지게‘는 우리민족의 전통적 운반 도구였고, 고단했던 농경생활의 흔적이다. 삼한시대부터 사용되었다 하니 서민들의 삶과 함께한 소중한 생활수단이었다.      


농촌에서는 모든 농부들이 지게꾼이었고, 도시에서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생필품들을 운반했던 요긴한 일꾼으로 요즘 퀵서비스의 조상 격이라 할만하다.     


근데 요즘은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지게를 거의 볼 수 없다. 경량 등산용 지게 등으로 명맥이 유지되긴 한다.      

그 지게가 한국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 ’지게부대‘ 이야기다.


7월  6.25 전쟁 최고 격전지 중 하나였던 경북 왜관 다부동에서는 전쟁영웅인 백선엽장군의 동상 제막식이 있었.      


이 행사에서 지게부대원을 추모하는 기념탑 제막식도 함께 있었. 이 탑은  백장군의 장녀 백만희(75)씨가 사비 1,200만 원을 들여서 만들어 .     


지게부대는 다부동 전투당시 지역민들로 구성된 민병대로서 탄약, 식량 등 보급품을 지게로 짊어지고 국군 1사단과 미군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 이 같은 명칭이 붙여졌다 한다.    

당시 미군들은 지게의 모양이 알파벳 대문자 ’A‘와 닮았다 해서 ‘A-frame-Army(A자 부대)로 불렀다 한다.  

   

이후로 군단마다 한국노무단(Korean Service Corps)을 편성해 물자보급 및 부상자, 전사자 이송을 담당했던 지게 부대원은 전쟁기간 30여만 명이 동원되어 9천여 명이 죽거나 다치고 행방불명되었다 한다.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무명의 헌신을 하신 분들이다. 이름 없는 호국영웅들이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노무인력으로 동원되었으며 귀향길에는 종군기장, 징용해제통지서, 열차승차권이 전부였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상상이 안되는 군의 조치였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한편 2017년 전사자 유해발굴시 피의 능선 전투현장인 양구에서 김아귀(당시 41, 아내와 33)님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지게부대원으로 첫 신원이 확인되어 유가족들의 품에 돌아온 것이다.   


이제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 속에 대한민국이 지켜졌고 오늘날 이만한 나라로 발전했다. 늦었지만 그들을 찾고, 추모하고 국가 유공자로 정성껏 모셔야겠다. 서울현충원 22, 25역에 모셔진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근 우크라니아 전쟁에서 참혹하게 국토가 유린되고 국민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니 더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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