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산임수의 명당 터에 만석꾼의 안택이요, 시인묵객들과 사교의 전당인 선교장이 가시연 습지가 빤히 보이는 곳에 지어졌다. 선교장가 창시조의 6세손인 이내번이 충주에서 강릉으로 이사하여 300여 년 전에 이 아름다운 고택이 지어질 무렵 가시연 습지는 습지가 아니고 경포호수였을 것이다.
배로 다리를 만들어 호수를 건너갔다는 의미인 선교장(船橋莊)으로 이 집을 네이밍 한 것을 보면 그래 보인다. 아니면 소통한다는 의미로 배다리 즉 선교란 말을 사용했을까? 하여튼 경포호와는 떼어 놓을 수 없다.
경포호 주변에는 선교장은 물론 오죽헌, 해운정, 허씨남매 생가 등 명문가들이 살아온 흔적들이 즐비하다. 조선시대 강릉의 한남동이었던가?
입향 초기에는 안채만 짓고 기거했으나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찾는 풍류 시인과 묵객들이 구름같이 찾아오므로 100여 년 동안 꾸준히 건물을 증축하였다 한다. 1816년 연못과 활래정을 만들고 연꽃을 심어 현재의 선교장이 완성되었다.
족제비 무리가 안내한 길지라고 한다. 풍수를 전혀 모르는 내가 보아도 길지인 듯하다.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한옥 고택으로 국가 민속문화재 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인 남자가 거처하는 큰 사랑채인 열화당에는 러시아 공사관에서 기증한 러시아 양식의 차양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대궐 밖 조선의 제일 큰 집(99칸)으로 겸손, 후덕, 상생의 태도로 300년을 이어 오던 선교장은 정부의 고택문화재 관광자원화 정책에 따라 건물을 개방하여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공유, 전파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선교장 둘러보기 투어, 한옥스테이, 다양한 체험 및 음악 프로그램들이 가능하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선교장을 돌아보면 여행의 묘미를 몇 배 더 느낄 수 있다.
여유가 있으면 하루 이틀 편안하게 한옥스테이를 하며 경포호 주변 명승을 돌아보고, 아침 일찍이나 조명이 켜진 저녁 무렵에 선교장 둘레길을 돌아보는 것도 별미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최고의 경험이 될 것이다. 외국인을 위한 통역 해설도 가능하다.
선교장 투어의 백미는 입구에 있는 활래정과 선교장 뒷산 둘레길 산책이다. 서편 태장봉에서 맑은 물이 끝없이 흘러나온다는 그곳 활래정에서 정기적으로 가야금 연주도 하던데... 수련이 활짝 피는 초여름 저녁에 그 반주에 맞춰 약주 한잔 하면 신선이 될 것 같다.
선교장 곳곳에서 봄이 소식이 들려온다. 활래정과 안채 사이 화단에 막 꽃망울을 터트리는 매화를 만났고, 매실도 산수유도 봄맞이 채비를 하느라 바쁘다.
투어를 마치며 99칸 대저택의 안살림을 할 종부의 마음이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책임의식에 바지런하고 잔소리 많은... 문득 고향 큰댁의 작고하신 큰어머니가 떠오른다. 키는 작으만 한 분이 하루 종일 부지런하고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시던 그분의 모습이! 큰댁이라 제사도 많아서 집에서는 좀처럼 먹지 못하던 소고기 뭇국을 먹었던 큰댁의 추억도 함께 소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