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의 기구한 운명과 문재(文才)

by 시냇물

강릉은 태백준령 너머 동해안 지역의 중심지로 비옥하고 넓은 땅을 가진 곳이다.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아 인재도 많이 배출했다.


그러나 남존여비의 가치가 사회를 지배하던 조선 중엽까지는 여성들의 자유로운 사회적 활동이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릉 출신의 뛰어난 두 분의 여성,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있다. 황진이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문인으로 꼽히던 분들이다.

특히 허난설헌은 남달랐다. 문재를 뽐낼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황진이 같은 기생도 아니었고, 화가로서 탁월한 재능도 있었지만


훌륭한 자식(율곡)을 길러낸 것에 더 초점을 맞춘 신사임당처럼 부덕을 상징하는 여인도 아니었다.


오히려 행동이 제한된 사대부집 여인으로서 오로지 자신의 시로써 이름을 남겼다.

힘들었던 가정사를 겪은 불우한 천재 여류시인 난설헌 초희, 그녀는 인습의 굴레 속에 자아를 구현하고 요절한 문인이었다.


경포호 남쪽 아르떼 뮤지엄 옆에 있는 허난설헌 기념관과 생가터를 돌아보며 그 흔적을 쫓아 본다.


16세기 중엽 강릉 양천 허씨 명문가에서 태어난 난설헌 초희는 관대한 부친과 오빠들의 영향으로 공부를 하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질 수 있었으며, 어려서 부터 천재성을 보였다.


아버지 허엽, 오빠 허봉, 남동생 허균(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배다른 형제인 허성과 함께 ‘허씨5문장’으로 불렸다.


이들은 우리 문화사에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강릉 경포대는 그들에게 문학적 소양과 향기를 불어넣어 주던 곳이었다.

15세의 나이에 가부장적 문화를 가진 가문으로 시집을 간 그녀는 고부갈등, 남편의 무관심, 잇단 두 자녀의 죽음과 태아 유산의 슬픔, 몰락하는 친정에 대한 안타까움 등으로 건강을 잃고 쇠약해져 자신의 죽음을 자신의 시에 예언한다.


❮꿈에서 광상산을 유람하며 시를 쓰다❯

벽해의 바닷물이 하늘바다로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 기대어 있다/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늘어지며/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차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지듯이 2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그녀는 죽을 때 자신이 쓴 시를 모두 불태우도록 유언을 하였다 한다.


그러나 동생 허균은 천재성을 가진 누이의 작품이 불꽃 속에 스러지는 것을 안타까워 친정집에 남겨놓고 간 시와 자신이 암송하는 누나의 시들을 모아 ‘난설헌집’을 펴냈다.


남편 김성립은 그녀가 죽고 3년 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출전하여 전사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에서 그간의 사연을 들어보고 ‘허씨5문장’ 시비가 세워진 허균-허난설헌 공원을 돌아보노라니 가슴이 찹찹하다.


공원내 그녀의 생가터에 들려 벽에 걸려있는 두 자녀를 먼저 보내고 피눈물로 쓴 시, ‘곡자(哭子)’를 읽어내리기가 힘들어 중간에 그만두었다.


절박함은 극한의 에너지나 능력을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직시하고 그 어떤 영감이나 통찰을 끌어내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천재성을 가진 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늘은 아름답고 처연한 시간여행을 하였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피곤하다. 마음 수추린 뒤 슬프지만 예쁜 그녀의 시들을 한번 더 음미하며 읽어봐야겠다.

난설헌의 시비에 있는 자연속에서 초희의 마음을 노래한 죽지사(竹枝詞)를 소개한다.


나의 집은 강릉 땅 돌 쌓인 갯가로/

문 앞의 강물에 비단옷을 빨았어요/아침이면 한가롭게 목란배 매어 놓고/짝지어 나는 원앙새만 부럽게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