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호의 히든 플레이스 해운정

by 시냇물

홍매화가 활짝 핀 지난달 경포대를 다녀오다 주변 명승을 돌아보았다. 지난번에 못 들린 오죽헌, 해운정, 허균 시비가 가고 싶은 곳이었다.

경포로 들어오기 전 하평마을의 허균 시비는 찾지 못했고, 경포대의 운치가 뛰어나고 뒷산 오솔길이 좋아서 걷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 다음 행선지인 해운정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가시연 습지가 끝날 무렵 구도로로 접어들자마자 해운정 안내표지가 보이는데 순두부 집들이 연달아 보여 길을 잘못 들었나 생각도 했지만 조그마한 안내표시가 보인다.


명승 속에 멋진 정자를 기대한 나의 상상이 빗나갔다. 그냥 사람 사는 마을에 아담한 고택이 하나 보이고 옆에 별당 같은 한옥 한 채가 있으며. 고택 옆으로는 한옥 형태로 지어진 ’ 400년 집 초당순두부‘ 식당이 있다.


별당 같은 건물 경내로 들어가려 하자 주차안내를 하는 분이 제지를 한다. 이유를 물으며 대화를 해보니 이 분이 이 고택의 주인이며, 해운정을 만든 심언광의 8대손이라 한다. 순두부집 사장님이기도 하다. 내심 반가워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 강릉 해운정은 정자라기보다 별당에 가까워 보인다. 심언광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것이라 했는데 요즘 기준으로 보면 세컨 하우스의 정자 같다. 외가가 있어 그 연고 때문에 지은 것이라 주인이 설명한다. 은퇴 후 살거나 별장 개념으로... 요즘 속초나 양양이 뜨는 것 같은 이유 아닐까?

해운정의 진가는 건물의 우람함이나 가치, 풍광보다 시인묵객들의 흔적 때문이다. 해운정 현판은 송시열의 글씨이며 건물 안의 ’해운소정‘은 명나라 사신 오희맹의 글씨이고, 내부에 유명한 문인들이 지은 시 40 여수가 걸려있다 하니 이곳 경포에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은 명소임을 확인해 준다.

주차장 끝에 조그마한 연못이 보여 주인께 물어보니 신작로(구도로) 때문에 매몰되었지만 꽤큰 연못이 있었고 경포호가 보였다 한다. 경포대처럼 높지 않아서 시계는 제한되지만 해운정 앞 풍광도 아득하고 평온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고택은 ㅁ자형 구조의 한옥으로 해운정보다는 늦게 지어졌고 사대부집 전통가옥 형태는 아니다. 안채를 지은 후 점차 늘려지었으며 현재는 한옥스테이로 활용되고 있다 한다.

강원도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임의로 구조를 변경하거나 공사를 할 수 없으나 국가가 예산을 지원해주어 고맙지만 예산신청, 편성, 집행에 3년이나 걸리는 게 불편함이라 한다.

고택과 연접한 ’ 400년집 순두부‘ 식당은 해운정이 지어진 1530년이 아니라 고택이 지어진 17세기를 기준으로 연도를 산정한 것 같아 보인다. 하여튼 조상님 덕분에 다른 경쟁 식당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절대 상호를 가졌다.


경포호의 히든 플레이스 해운정 방문 기념으로 400년집에서 순두부를 청해서 먹어 보았으나 수리골 이 동네 평범한 순두부집 맛 딱 그 정도였다. 조상님한테 순두부 제조법을 전수받은 것 같아 보지지 않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평범함에서 깊은 맛이 나는 거 아닐까? 밥이나 김치가 우리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