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헌 뒷 이야기

by 시냇물

여기저기 봄이 몰려오는 3월 하순 경포대 탐방의 마지막 코스로 오죽헌을 다녀왔다. 율곡과 그의 어머니 사임당이 태어난 곳으로 오죽헌은 검은 대나무에 둘러싸인 집이란 의미다. 들어가는 정문이 우람하고, 생가뿐만 아니라 박물관이나 교육관, 공원 등 부속시설이 넉넉해서 아산의 현충사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이 집은 단종 때 병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집이었으나 율곡의 이종사촌인 권처균에게 상속되었다. 강릉은 율곡의 외가 일가들이 살던 곳으로 율곡은 이모네 집에서 태어난 것이다.

율곡은 과거시험에 아홉 번을 장원급제한 수재로 퇴계와 함께 조선 성리학의 양대 기둥이다. 어머니 사임당은 자식 교육도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문학적 소질도 뛰어나 허난설헌, 황진이와 함께 조선 3대 여류문인으로 꼽힌다. 대단한 모자지간이다. 사실 이것이 오죽헌이 국민교육 차원에서 성역화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오죽헌과 모자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다. 먼저 모자지간 화폐 인물로 세계 최초라 한다. 어머니는 오만 원권, 아들은 오천 원권! 흥미로운 일이지만 화폐의 인물이 조선시대, 문관 위주 선정이어서 다양한 시대, 인물이 선정되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꽤 있다.

다음은 사임당이 허난설헌, 황진이와 함께 조선 3대 여류문인으로 꼽히는데 현모양처의 부덕을 강조하는 유교적 사회분위기 때문에 사임당은 과다 평가되어 생가가 성역화된 데 비해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고 많은 작품을 남긴 허난설헌의 유적은 초라하게 관리된다는 지적이다. 일리 있는 측면도 있다.

마지막으로 남자가 결혼을 하면 부인의 집이나 그 근처에 살고 처가의 재산을 물려받는 풍습인 서류부가혼에 의해 오죽헌 집이 물려지게 되는 데 흥미롭다. 일종의 데릴사위 제도로써 고려시대부터 행해지던 제도였다.

오죽헌 집은 최응현이 사위인 이사온에게, 이사온은 그 사위인 신명화(사임당의 아버지)에게, 신명화의 부인은 묘지관리를 조건으로 외손인 권처균에게 물려준다.


이는 혼인 후 상당기간 처가에 거주하며 출산, 과거 준비 등을 하여 기반이 갖추어진 후 독립하는 생활형태로 처가의 배경과 부를 감안한 결혼 풍습이라 할 수 있다.


사임당이 결혼 후 친정인 강릉에 거주하였고, 부친이 사망하자 삼년상을 치렀으며, 율곡이 강릉 외가에서 태어남은 물론 여섯 살까지 이곳에서 공부를 한 것이 이 제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하여튼 이 모자는 요즘 기준으로 보아도 대단한 성공이고 본받을 만한 일이다.


오죽헌의 활짝 핀 율곡매(수령 600년의 홍매, 천연기념물 484호)가 불청객을 반긴다. 율곡이 태어난 몽룡실을 보며 아내에게 정기를 받자 하니 웃는다.

돌아 나오는 길에 정문 옆으로 ‘어머니의 길’이란 안내 간판이 나를 유혹한다. 오죽헌 담벼락을 따라 한옥마을을 경유하여 사모정 공원까지 가는 1.5km의 길인데, 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한양으로 가던 길이라 한다. 교통도 한적한 곳이니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어머니들이 자녀와 함께 걸어야 할 길로 보인다. 강릉판 맹모삼천지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