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화가 중 한 분이지만 요즘은 백반 기행 식객으로 더 유명하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한 끼를 선사하는 맛집을 찾아 전국을 다닌다. 그분의 맛집 컨셉은 어머니의 집밥 같은 편한 한 끼 식사이며, 서민들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가격이다
속초에도 허식객이 다녀간 곳이 세 군데나 된다. ‘곤드레밥집’, ‘감자바우’, ‘88생선구이’! 중앙동인 우리 집에서 모두 1km 이내 거리로 가깝다. 무심한지 이곳에 새터를 잡은 지 4개월이 넘었는데 한 군데도 못 다녀왔다.
특히 ‘88생선구이’네는 매주 서너 번은 그 집 앞을 지난다. 불꾼이 식당 앞에서 숯불을 부지런하게 지피는 모습을 보며 언제 한번 다녀가야지 생각했건만 쉽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아내가 직화구이라 건강에 좋지 않을 거라 미리 guidance를 준 터라 반포기 상태였다.
하루는 속초 토박이가 소개해 준 생선조림집에 식사를 하려다 못하고 집으로 향하다 갑자기 88집으로 의기투합하여 들어가서 생선구이에 도전했다. 모둠정식 단일 메뉴였으며 외국인 종업원이 수시로 다니며 생선을 구워주었다. 생선이 싱싱한 느낌을 받았고 오랜만에 직화구이 생선을 맛보았다.
지나가면서 구 본관과 신관만 있는 줄 알았는데 구 본관 뒤로도 확장되어 있다. 식당이 세 군데인 샘이다. 장사가 쏠쏠한 모양이다. 맛집 블로그와 방문자 리뷰가 5천 개가 넘는다. 더욱이 속초관광의 hot place 중앙시장에서 멀지 않고 갯배 선착장이 바로 옆이라 아바이마을 다녀오는 관광객들도 아름아름 찾아오는 것 같다.
이 집은 불판에다 8~9가지 되는 생선을 종업원이 직접 직화불에 구워주는 방식으로 손님들 취향을 맞춰서 성공한 것 같다. 내가 갔을 때는 고등어, 황열갱이, 꽁치, 도루묵, 삼치, 청어, 오징어, 메로가 제공되었고 계절별로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오징어 젓갈, 된장 미역국이 약간 눈에 띄는 밑반찬이다.
식당 앞을 다니면서 궁금했던 것은 ‘88생선구이’라는 식당 상호였다. 혹시 88 올림픽? 50년 전통이라면 올림픽이 열린 1988년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팔팔(88)한 생선을 사용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를 입증하는 것이 이 집 전화번호 633-8892였다. ‘88생선92’ 즉 팔팔(싱싱)한 생선구이 집을 지향하겠다는 주인의 의지로 저 번호를 가진 것 같다.
허식객이 어떤 기준으로 이 식당을 다녀갔고 평가했는지 모르지만, 생선구이 집 핵심은 싱싱한 생선 아니겠는가? 단일 메뉴로 운영하는 것도 좋은 전략인 것 같다. 손님들이 많으니 선순환하여 좋은 식재료로 조리할 수 있어 주인장이 헛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상호 8892를 구현하여 롱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집 생선구이 모둠 정식 가격이 17,000원이다. 싸다고 하기는 그렇다. 그런데 만 원 할 때 블로그 글도 있고, 만 오천 원 할 때 블로그 글도 보았다. 돈이 흔해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물가가 오르는가 보다. 그래도 꾸준히 손님들한테 사랑받는 것 보니 싱싱한 생선을 직화로 구어 따끈따끈하게 먹는 매력을 주는 맛집인가 보다.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을 의미하는 ‘식도락’이란 말이 우리에게 다가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100여 년 전에 ‘식도락’ 원조 소설은 대외 개방에 따른 일본인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외식 교양서 역할을 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가져왔다. 이에 비해 허영만의 ’ 백반 기행’이나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은 우리의 깊은 맛을 찾아다니는 여정이다. 수천 년 동안 어머니들의 손길에서 전해온 깊은 한국인의 맛을...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을 화로에 바로 구워먹는 생선구이! 어렸을 때 가끔, 정말 가끔 어머니가 꽁치를 사 오셔서 연탄불에 구울 때 맡았던 고소한 생선 기름 냄새의 추억이 떠오른다. 88생선구이가 내 봄 미각을 자극했나? 주말에는 감자바우 식당을 가봐야 하나! #8892 #생선구이 #갯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