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야기
우리는 누구나 성장의 과정을 거친다. 어릴 적 부모와의 애착을 통해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배우고, 그다음엔 자율성을 획득하며 점차 자신만의 의지를 형성해간다. 누군가는 이 과정을 비교적 무탈하게 통과하고, 또 누군가는 어느 한 지점에서 오래 머물거나 혹은 건너뛰듯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삶이란 그리 직선적이지 않다. 한 번 놓친 어떤 것을 영영 되찾을 수 없는 것인지, 혹은 아주 다른 시점에라도 다시 돌아가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깊이 연결된 물음이다. 특히 자립과 친밀감의 문제에서는 더 그렇다.
에릭 에릭슨의 발달 단계 이론 속에서, 청년기는 ‘친밀감 대 고립감’의 시기로 정의된다. 타인과의 깊은 관계를 맺을 것인가,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킬 것인가를 선택하게 되는 시점. 그런데 그 이전, 즉 신뢰감과 자율성, 주도성, 근면성을 제대로 획득하지 못한 채 이 시점에 이르렀다면, 과연 누군가와 온전히 친밀해질 수 있을까. 마치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야 하는 계단처럼 보이는 이 이론은, 어떤 단계에서 결핍이 있었다면 이후 삶 전체에 그 흔적이 남을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실제로 많은 심리학적 설명은 그러한 맥락을 따른다. 어린 시절 충분히 지지받지 못한 사람, 자율성을 억압당한 사람,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쉽게 신뢰하지 못하며, 결국 친밀함을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이론보다 훨씬 유연하다. 물론 과거의 상처나 결핍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고립을 선택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운명인 것은 아니다. 비록 선행 과정에서 결핍이 있었다 하더라도, 다시 무언가를 배우고, 다른 방식으로 채워나가며, 새롭게 관계 맺기를 시도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혹은 문득 찾아온 사소한 안정감 속에서 자신 안에 남아있던 신뢰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발달이란 꼭 순차적으로, 정해진 시기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처 얻지 못한 자율성이나 주도성, 신뢰감을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쩌면 더 깊이, 더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삶은 언제나 복원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다시 말해, 선행 단계의 결핍이 있다 해서 반드시 고립의 길로만 밀려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결핍이 만들어내는 경향성은 존재한다. 세상에 대한 불신, 타인과의 거리를 두려워하는 버릇, 관계 맺기의 어색함 같은 것. 그러나 인간 존재는, 의식하고, 직면하고,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있을 때 그것을 조금씩 바꾸어갈 가능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
자립 역시 마찬가지다. 진정한 자립은 단순히 부모나 타인으로부터 경제적, 물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 일이며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만약 어린 시절 충분히 지지받지 못해 자율성과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했다면 자립의 과정도 어려울 수 있지만 그 역시 삶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배워야 하는 과정이다. 자립은 결코 한 시기에 완성되는 것도,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수없이 실패하고, 관계 안에서 상처받으며,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조금씩 견고해지는 과정이다.
친밀감 또한 그렇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와 애정을 주고받으며 자라지만 또 어떤 이는 오랜 고립 속에서 타인의 손길을 경계하며 살아온다. 그러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오랜 시간 고립을 택하던 이도, 문득 어느 날 누군가와의 우연한 대화 속에서, 혹은 자신조차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음의 벽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니 친밀감이란 꼭 어느 단계에서만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서 반복해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관계의 기술이자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건, 발달의 선형적인 단계라기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관계를 시도해볼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선행 단계의 결핍은 흔적처럼 남지만, 그것이 현재의 나를 결정짓는 조건이 아니다. 인간은 늘 미완이고 관계 또한 완결되지 않는다. 친밀감이란 결코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시도되고 조율되는 살아있는 감정이다. 그러니 선행 과정을 온전히 통과하지 못했더라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믿고, 타인에게 손 내밀고, 우리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려는 마음만 있다면 친밀감의 가능성은 되살아 난다.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의 연속이다. 그것은 과거를 지우거나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 과거의 결핍과 상처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관계 맺기를 포기하지 않으며, 내 안의 고립을 조금씩 걷어내려는 그 시도 자체가 이미 친밀감으로 향하는 첫 걸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걸음은, 비록 더디고 아플지라도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