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선생님도 날 불편해할 거예요

심리상담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상담실에서 내담자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선생님도 저를 불편해하실 거예요.” 그 말은 예감이나 추측이 아니다. 그 말은 자기 안에서 이미 굳어진 결론이자 오래도록 품고 있던 자기 혐오가 외부 세계에 드러나는 방식이다. 내담자는 자기가 얼마나 부담스러운 존재인지, 자기 이야기가 얼마나 피곤하고 지루한지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감정을 마치 거울처럼 상담자에게 비춘다. 그 거울 속에는 사실 상담자의 얼굴이 아니라, 내담자 자신의 얼굴이 비쳐 있다.


이 순간, 상담가는 낯선 긴장과 마주하게 된다. 내담자의 말이 내 안의 진심을 비껴간다는 느낌, 혹은 나조차 몰랐던 무의식의 층위에 무언가를 비추는 듯한 불편함이 찾아온다. 그 감정은 꼭 ‘맞다’ 혹은 ‘틀리다’로 나뉘지 않는다. 다만 내담자가 꺼내는 말은 상담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이 질문은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좋다’, ‘괜찮다’, ‘불편하지 않다’ 같은 표면의 감정이 아니라, 상담자 자신의 역전이 감정과 직면하게 만드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담자가 이런 말을 꺼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한다. 처음에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눈치를 본다. 상담가의 얼굴을 자주 훔쳐보고, 대답의 길이와 목소리의 톤,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한숨까지 민감하게 관찰한다.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라고 믿는다. “지금 상담자가 말을 끊었으니까, 내가 너무 이상한 얘기를 했나 봐.” “지금 웃었으니까, 내가 바보처럼 들렸나 봐.” 내담자는 상담자의 아주 작은 반응에조차 의미를 부여하며, 그 안에서 ‘불편해하고 있는 상담자’라는 상을 조용히 만들어낸다.


이 상은 실재보다 강력하다. 상담가가 “아니에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라고 말해도, 그 말은 쉽게 스며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담자는 그 부정이 오히려 확신을 준다. “상담가라서 저렇게 말하는 거구나.” 진실은 언제나 내담자가 믿고 싶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진실은 내담자가 오랜 시간 자기 자신에 대해 반복해온 내적 독백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다. 나는 짐이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이 내면의 문장은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어, 이제는 진실처럼 느껴진다.


이 순간 상담가는 불편하지 않다고 해명하고 싶고, 서둘러 오해를 풀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런 말은 내담자에게는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감정을 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내담자가 싫어하는 것은 상담가의 불편함이 아니라, ‘자신을 싫어할 것 같은 사람 앞에서의 자기 자신’이다. 상담가는 내담자가 이 감정을 안전하게 펼쳐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 감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는 자기비하로, 때로는 무기력으로, 때로는 상담가를 향한 공격성으로 뒤틀려 나타난다. “이런 말 해봤자 의미 없어요.” “선생님은 저 같은 사람 많이 봐서 질렸겠죠.” 이런 말들 속에는 사실 ‘나를 좀 봐주세요’라는 간절한 바람이 숨어 있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이는 ‘투사적 동일시’의 구현이다. 내담자는 자기 안의 싫어하는 자기상을 견딜 수 없어 그것을 외부 대상, 즉 상담가에게 투사한다. 상담가는 어느새 ‘불편해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내 존재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문제는 내담자가 그 이미지를 단지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상담가가 실제로 그렇게 반응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내담자는 자기 혐오를 상담가에게 투사한 뒤, 상담가가 그 혐오감을 실제로 느끼도록 만드는 정교한 무의식적 연출을 수행한다. 상담자가 무의식적으로 피곤해지거나, 반응을 줄이거나, 어느 순간 거리를 둔다면, 내담자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말 것이다. “봐요, 결국 선생님도 저를 불편해하시잖아요.”


이 지점이 바로 고비이자 가능성이다. 상담가가 이러한 역동을 감지하고, 그 감정이 자신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오랜 고통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할 때, 상담은 전환점을 맞는다. 상담가는 단순히 “나는 당신을 불편해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그 ‘불편해하는 시선’이 어디서 왔는지를 함께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제가 당신을 불편해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그런 느낌을 예전에 누구에게도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이런 질문들은 내담자가 상담가를 현실의 타인으로 다시 만나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상담가가 좋고 나쁨으로 분열된 대상이 아니라, ‘통합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상담은 내담자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방식이 어떻게 타인과의 관계 속에 되살아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상담가는 그 관계의 중심에서 종종 ‘미움받는 사람’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역할을 잘 살아낼 때, 상담가는 단지 듣는 사람을 넘어, 내담자의 분열된 내면을 통합할 수 있는 거울이 된다. 그 거울 속에는 더 이상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만 비치지 않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담가는 그 얼굴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상담에서 ‘불편함’을 견디는 태도다. 내담자가 꺼내놓은 자기 혐오를 상담가가 조용히 품고 있을 수 있을 때, 내담자는 드디어 처음으로 묻는다. “절 불편하고 싫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이 질문이 가능해지는 순간 상담은 더 이상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시작이 된다. 내담자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감정을 더 이상 외부에 던지지 않고, 안으로 가져와 마주할 준비를 한다. 상담가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거울이자, 처음으로 ‘나를 미워하지 않는 타인’이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어쩌면 내담자의 삶 전체를 다시 쓰기 시작하는 가장 조용한 혁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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