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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배우자에게서 부모를 찾는가?

심리상담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결혼은 흔히 사랑의 결실로, 혹은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사회적 의무로 설명되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은밀하고 무의식적인 동기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단순히 현재의 성격이나 외모, 조건에 매혹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더 깊은 층위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있으며, 그 결핍이야말로 부부 관계의 갈등과 해소를 동시에 규정하는 근원적 요소가 된다.


어린 시절 누구나 결핍을 경험한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간섭받으며 자유를 빼앗겼거나, 혹은 부모의 관심이 형제자매에게 치우쳐 있었을 수도 있다. 이 결핍은 단순한 기억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무의식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그 자리를 기억하고 있으며, 결혼은 바로 그 빈자리를 배우자를 통해 메우려는 시도로 작동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는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말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이 사람이라면 내 결여를 채워줄 수 있다”라는 희망으로 결혼을 선택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결혼 생활에서 갈등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배우자가 나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상대 역시 결핍을 지닌 존재다. 서로가 구원 받기 위해 다가가지만, 동시에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며 아픔을 되살린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충분히 받지 못한 애정을, 안정감을 배우자에게서 찾으려 하지만 배우자가 그것을 충분히 주지 못할 때 우리는 실망하고 분노한다. 이렇게 결혼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시도이자, 그 상처를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장이 된다.


부부 싸움의 많은 순간은 사실 사소한 일로 시작된다. 설거지를 누가 했는지, 약속을 지켰는지, 집안일의 분담이 공평한지와 같은 일상적인 문제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사소한 갈등 속에는 어린 시절의 결핍이 겹쳐져 있다. 배우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분노가 치솟는 것은 단순히 약속이라는 규범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감각이 어린 시절 소홀히 대접받았던 기억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무심하게 대할 때 느껴지는 서운함은 실제 상황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데, 이는 유년기의 사랑받지 못했던 고통이 그대로 소환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결혼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무대다. 배우자는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라, 어린 시절 부모의 그림자를 대신 짊어진 인물로 자리한다. 우리는 배우자에게 어린 시절의 부모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갈등이 폭발한다. 동시에, 우리는 배우자를 통해 그때 채워지지 못한 욕구가 채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기에 쉽게 관계를 포기하지 못한다. 결혼 생활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상처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과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배우자가 나의 결핍을 완벽히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배우자는 나를 구원하는 부모의 대체물이 아니다. 상대 역시 결핍을 가진 또 다른 인간일 뿐이다. 전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결핍을 메우기 위해 배우자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상처를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은 결핍이 없는 상태를 향한 환상이 아니라, 결핍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상대방이 나의 모든 공허를 채워줄 수 없음을 받아들일 때, 오히려 그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에서 진정한 친밀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서로의 상처를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상처를 함께 견디며 살아가는 연습이 결혼의 핵심이다. 우리가 결혼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은 결핍 없는 완전함이 아니라, 결핍 속에서도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부 갈등은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갈등 속에서 드러나는 분노와 서운함은 결국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내면의 공허함을 말해주며, 그 공허함을 직시할 때 비로소 관계는 성숙한다. 결혼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르침은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의 수용이다. 그리고 이 수용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결핍에 묶여 있지 않고, 결핍을 넘어선 성숙한 사랑의 가능성에 다가가게 된다.


결혼이란 결국 두 사람이 서로의 구원자가 되려다 실패하고, 그 실패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여정이다. 그것은 결핍을 치유하려는 헛된 시도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결핍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부부 갈등은 그 과정의 일부이며,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한 성장의 장치다. 우리는 결혼을 통해, 배우자를 통해, 그리고 갈등을 통해 결국 어린 시절의 상처와 화해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결혼의 깊이이자, 가장 절묘한 삶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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