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야기
우리는 결핍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훈련받아 왔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무엇을 갖추었는지로 평가받았고, 무엇이 우리에게 부족한지를 발견해내는 데 익숙했다. 성적이 낮으면 보완해야 했고, 말투가 서툴면 고쳐야 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더 사교적으로 행동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감정 표현이 지나치다고 지적되면 차분해져야 했다. 외모에 대한 기준에 못 미치면 다이어트를 하거나 스타일을 바꾸라는 권유가 따랐고,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도 자주 마주쳤다. 그 모든 과정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안에는 결핍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렇게 결핍은 늘 숨겨야 할 무언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결핍을 부정하려 할수록 그 존재감은 더욱 또렷해진다. 마치 감추려 애쓸수록 자꾸만 신경 쓰이는 흉터처럼, 무시당할수록 더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우리는 자주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왜 나는 이만큼밖에 안 되는가,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못하는가, 왜 나는 항상 뭔가 부족한가. 이 질문들은 발전의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책의 회로를 만든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점점 더 거칠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결핍을 대하는 방식은 곧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다. 나의 부족함을 바라보는 눈은, 나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다. 결핍을 문제 삼을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문제적인 존재로 간주하게 된다. 마치 결핍이 사라져야만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처럼, 나의 어떤 부분은 나로서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고착된다. 그러나 진실은,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어긋나 있고, 빈자리가 있고, 누군가에겐 모자라거나 과한 존재다.
그렇다면 결핍이란 나에게 없어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품고 가야 할 것이라는 전환이 가능하다. 결핍은 나를 구성하는 한 조각일 뿐, 제거 대상이 아닌 나의 일부다. 어떤 사람의 불안은 그를 더 깊은 사유로 이끌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외로움은 타인을 더 세심하게 돌보게 만든다. 우리가 가진 결핍은 종종 우리 안의 감수성과 연민의 시작점이 된다. 오히려 모든 것이 완비되어 있다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나 연약함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핍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의 불완전함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거절하지 않고, 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겠다는 의지다. 자기 수용이란 모든 것을 만족스럽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채로도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결심이며, 그것은 도피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에 너무 낯설고 서툴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스스로를 고쳐야 했고, 결핍은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을 진정으로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결핍의 해소가 아니라, 결핍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태도다. 어떤 부족함이 있든, 나는 나라는 사실을 놓지 않는 것. 그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삶의 기준을 외부에서 가져오지 않게 된다.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는 사람은 누구와도 덜 비교하고, 더 깊이 연결된다. 결핍은 더 이상 결점이 아니라 고유함이 되며,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서사로 자리 잡는다.
삶의 불편함을 모조리 제거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우리를 더 예민하고 고립되게 만든다. 결핍을 지양해야 할 무엇으로 바라볼수록, 우리는 끊임없이 불안한 인간이 된다. 반면 그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삶은 조용히 정돈되기 시작한다. 완벽을 향한 끝없는 추구가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의 안온함을 허락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기댈 수 있게 된다.
결핍은 삶의 틈이다. 그러나 그 틈을 채워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빛 아래에서, 조금 더 자신을 이해하고, 조금 더 타인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부족한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가장 조용한 승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