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책

《플랫폼》, 미셸 우엘벡

by 을룡

화창한 날 열어 우기가 시작될 때 덮었다.


장편소설을 싫어한다. 작중 인물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끝은 알고 싶지 않다. 그들의 이야기를 열어두는 편이 편하다.


미셸은 미셸답게 미셸의 끝을 잘라버렸다. 도입부를 읽을 때 이게 어떻게 장편이 되지 했던 갸우뚱이 문득 떠오르며, 그제서야 (아무 타격 없는) 죽음으로 시작해서 (삶을 송두리째 거세시킨) 죽음으로 끝낸 시니컬함이 아주 이 작가스럽다고 생각했다.


선정적/마초적이다 못 해 봉건적이고, 대놓고 편협한 데다, 결정적으로 내가 질색하는 프랑스인 특유의 거만한 냉소가 줄창 깔린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 건, 결국 이 모든 불편을 해소시켜주는 솔직함이었다. 작정하고 키치적인 작품을 볼 때의 상쾌함 같은 게 있다. '픽션'으로 핑계 삼지 않겠다는 듯 인물 이름도 자기 이름 그대로다.


그치만 결국, 에르노 아줌마처럼 이 아저씨도 치트키를 썼다. 작품 속에 미리 방패(또는 창 또는 구멍)를 넣어두는 건 유럽 작가들 종특이다.


내내 세상을 관조하고 많이 읽고 오래 생각을 정리하면서 한껏 뾰족해진. 40대 남자의 로망과 아집이 포장 없이 꽉꽉 눌러 담겨 있다. 사실 그게 꽤 재미있다. 야해서만은 아니고.

나와 아주 다르고 또 같기도 한 생각들이 흘러 넘쳐 메모를 27개나 남겼다.


인류는 특별하며 제각기 자기 안에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고 우기는 것은 거짓이다. 어쨌거나 그런 특이성이라는 것이 내겐 흔적조차 없었다. 개개인의 운명이나 성격을 구분하려 드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부질없다. 요컨대 인간 개개인이 유일하다는 생각은 과장되고 부조리한 것이다. 어떤 책인지는 몰라도 쇼펜하우어가 써놓았듯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과거 어느 순간에 읽었을 소설책 한 권보다 조금 더 기억을 잘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그것이다. 그저 소설책 한 권보다 조금 더 기억을 잘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포기,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어떤 의존상태, 연약한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불가능해. 감정적 고조와 성적 강박도 근원은 같아. 모두 다 자신에 대한 부분적인 망각에서 오는 것이거든. 그건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서 자아를 실현하는 그런 분야가 아냐. 우리들은 냉정해지고 합리적이 되고 지나치게 우리의 개인 존재와 권리를 의식하게 되었어. 무엇보다도 착란과 의존 상태를 피하고자 하니까. 게다가 건강과 위생에 사로잡혀 있기도 해. 그런데 이런 것이 사랑을 나누는 이상적인 조건이 전혀 아니거든.



애정생활이 끝나면, 삶 전체는 약간은 관례적이고 강요된 무엇인가를 얻게 된다. 사람들은 인간의 형체와 습관적인 행동들, 일종의 구조를 유지하지만, 그러나 마음은 사람들 말마따나 이제 그곳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확신한다. 내게 발레리는 찬란한 예외였을 뿐이라고. 그녀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고, 그것을 매우 신중하게 자신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 속했다. 그 일은 참으로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그 속에는 행복과 솔직함과 기쁨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지 못 한다. 만일 내가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나머지를 이해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마지막 챕터를 푸켓에서 읽지 않아 다행이다.


#미셸우엘벡 #찬란한예외 #급결말 #갑작스런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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