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만 39세. 마흔 준비에 돌입한다.

내년엔 불혹, 아직은 미혹

by 을룡


"20대가 피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흔히들 인생에서 20대가 꽃이고, 나머지는 꽃 피기 전 준비나 꽃 진 후 마무리 기간 같은 걸로 생각하잖아? 근데 난 이제 20대에 전혀 관심이 없어. 지금은 30대가 주인공 같거든. 내년이 되면 40대가 주인공이라 생각하겠지?"


영리한 친구 쪼이는 말했다. "응, 자기가 속한 세대 외에 나머지 세대는 일종의 회색지대가 되는 거지. 내가 속한 세대만 컬러로 보이고, 나머지는 음영 처리된달까. 어차피 다들 자기가 인생의 주인공이니까." 역시. 38년 동안 딱 4명 발견한 베프들의 현명함은 번번이 감탄스럽다.


(장생지에 놓여 평생 어린아이 같을 거라던 누군가의 말마따나, 나는 무언가 배울 수 있는 사람, 나와 다른 앵글로 설명해주는 사람, 나를 설득시키거나 다독일 수 있는 사람들을 졸졸 따른다. 그래선지 관계의 동심원 가장 안쪽 '내 사람' 영역에는 나보다 어른인 이들만 있다. 외동딸이 언니나 오빠를 직접 만든 걸지도 모르겠다.


나를 포함해 동생들은 대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몇 달 전 했던 동일한 질문을 마치 아주 새로운 이슈처럼 다시 꺼내놓기를 수년간 수십 번 되풀이하며 사람을 탈진시킨다. 여초 세계에 오래 속했고 한때 교회누나이기도 했던지라 나도 철이 없는 와중에 20년 넘게 동생들에게 상담자 노릇을 했는데, 같은 질문을 반복할 뿐 아니라 심지어 매번 같은 결론을 전혀 생경하다는 듯 듣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람을 아연하게 만들곤 했다.)




불혹을 반년 앞두고 요즈음 내 세계에는 아주 빠르고 급진적인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상반기 내내, 사실은 수년 전부터 생채기 나듯 조금씩 생기던 균열들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순식간에 판을 뒤집었다. 봉인해뒀던 여러 생각들이 균열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기존의 판을 녹이고 새로운 층을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결혼을 내려놓기로 했다.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20대 중후반부터 미친 듯이 일만 하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않을까?'라며 그 모든 망개팅과 연애 흑역사의 포문을 연 게 서른하나였으니 8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나는 원래 내가 잘 못 하는 분야에는 금세 흥미를 잃는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 노력이 무용한 영역에는 관심을 끈다. 안 되는 게임, 잃는 게임은 하지 않는 편이다. 8년이면 잃은 판돈 대비 오래 버틴 것이다.


작년 가을 사유리는 혼자 아이를 낳았고, 지난봄 정부는 1인가구나 한부모/다문화 가족, 사실혼 등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계획을 발표했다.

마침 그 봄 강릉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지인과의 긴 대화를 계기로, 나 또한 결혼의 개념을 다시 정리하던 중이었다. '혈혈단신 혼자될 것에 대한 외동딸의 물리적/심리적 공포와 한국사회에서의 (싱글족, 딩크족 등) 비주류에 대한 타자화 심판(집단으로부터의 분리 공포를 불러일으키는)을 고려했을 때 나는 결혼이 필요하다'는 30대 초반의 1심 판결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이 잘 맞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방법이 꼭 결혼일 필요는 없다는 데 동의했고, 혼자살기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떨쳐가는 중이다. 이제 1인가구는 정부가 법 개정의 근거로 들 만큼 크게 늘어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며, 남녀의 결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가족의 그림들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됐다. 공교롭게도 지난해부터 부쩍 친구나 지인들과 냉동난자 얘기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요새는 내년에 데려올 반려견을 위해 동네 강아지유치원을 알아보고 반려견 카페를 탐독 중이다.


한편, 십여 년 전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북유럽의 공동주택(또는 협동주택) 툴스투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이상적인 주거 형태로 여겨졌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형태의 코하우징(co-housing)이 시도되고 있는 듯하다. 몇 년 전에는 한겨레 기사를 보고 친구들 부부와 마당을 공유하고 생활공간은 분리하는 단독주택을 짓는 로망을 품은 적이 있는데, 최근 중앙일보에 실린 김은희 작가와 지인 세 가족의 협동주택 프로젝트 풍년빌라가 그와 아주 유사해 보였다. 며칠 전에는 엄마와 전참시를 보다가 실버타운 더클래스 500과 청심빌리지 입주 조건을 찾아보기도 했다. 다행히 이제 혼자 살아도 고독사를 면할 길들이 생기고 있다.


재밌는 건, 내가 부득불 결혼을 고집할 땐 많은 이들이 싱글의 자유를 찬양하며 결혼 생각을 재고하기를 집요하게 권하더니, 결혼을 포기했다 하니 이번엔 하나같이 그래도 결혼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생각은 물 같아서 쉼 없이 흐르고 결국 나는 그때그때의 나이와 상황에 맞춰 기존의 생각들을 교정하거나 갈아치우게 될 것이다. (뭐든 어설프거나 애매하게 하지는 못 하는 성미상, 나는 보통 양 극단의 생각이나 태도, 행동을 채택해보고 결론적으로 중간의 어딘가 절충점을 찾곤 한다.) 그래서 불혹을 맞으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생각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이제와 돌아보니 (직업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기능적으로 내게 주어진 역할은 기록하는 자인 듯하다. 언젠가 누군가 했을 법한 또는 하게 될 생각들을 굳이 다시 해체하고 배열하고 조립하여 꿰어내는 일 따위를 한다. 홍보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20대 중반부터 인턴기자, 에디터, 프리랜서 작가 등으로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를 해왔고 그게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걱정은 넣어두자. 돈 받고 쓸 땐 브런치처럼 추상적이거나 복잡하게 쓰지 않는다. 글감은 내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집어온다. 개인적으로야 밀란쿠의 문장처럼 거의 부호 수준으로 해독이 필요한 복문과 만연체를 사랑하지만 돈 받고 쓸 땐 짧게 쓴다.)


오춘기의 끝, 이십 대의 어느 날, 앞으로는 남의 것만을 쓰고 살기로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내 것은 되도록 쓰지 않기로 했었다. 끝도 없이 가지치기하는 생각들을 유폐시키기 위해서였다. 날 것 그대로의 내 생각들을 적은 것은 그저 감정의 배설일 뿐 아무 쓸모도 재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완벽한 하나의 세계로서의 소설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자기 푸념이나 하소연과 다름없는 에세이 같은 건 쓰지 않을 참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에 대해 떠들고 싶어 하고, 세상에는 늘 들어주는 쪽이 부족하니 나까지 보탤 필요는 없다고도 생각했다(물론 마음먹은 만큼 입이 잘 다물어지진 않았다).


수년 전에 작가 등록만 해두고 거의 쓰지 않던 브런치에 얼마 전 셀프 치유용 끄적임을 하나 올렸다. 라이킷을 눌러준 사람들의 브런치를 한 번씩 들어가 보다가 어떤 이가 자신이 에세이를 즐겨 읽는 이유를 정리해놓은 것을 보았다. 그 글을 읽으며 에세이가 갖는 치유의 힘을 떠올렸다. #woundedhealer 문학적 완성도는 낮을지언정 실용성은 있을 수 있겠다 싶다.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통한 위로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요즘 사람들의 난독증을 고려해보면 무언가를 다시 읽기 위한 입문 단계에서 쉽게 읽히는 잡문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불혹을 준비하는 시간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얼굴 모르는 불특정의 동생들을 위해 어차피 크게 다르지 않을 고민과 (답은 없지만)나름의 풀이들을 남기기로 했다. 어쩌면 내 끄적임을 통해 싱글을 부러워하는 기혼의 누군가가 새삼 자기 옆의 반려를 고맙게 여기게 되거나 또래의 미혼들이 동지를 발견한 반가움을 느낄 수도 있을 터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자주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인간은 자신의 나이 속에서만 존재하고,
모든 것은 나이와 함께 변한다는 점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지금 먹어가는 나이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_밀란 쿤데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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