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았지만 또 다른 우리

by 모개

20대의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20대 청춘이라면 다들 느끼며 고민한다는 미래의 불확실성만은 아니었다. 그냥 나 자체가 불완전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성인이 되었다. 몸은 다 자랐고 주어진 일도 잘 해냈다. 하지만 감정기복이 심했고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해소할지 몰랐다.


불편한 감정을 빨리 털어내기 가장 좋은 방법은 술이었다. 다행히 내 몸에는 술이라고는 입에도 못 대는 이씨 집안의 피보다 술을 잘 마시는 전씨 집안의 피가 더 흘렀다. 하루종일 폭음을 하고 다음 날 숙취를 핑계로 하루종일 자면 불편한 감정도 함께 사라졌다.


20대의 연애도 좋을 리 없었다. 관심과 애정을 보이던 남자들은 ‘변덕스럽다.’ ‘너무 예민하다.’ ‘까칠하다.’ 라는 말을 남기고 이별을 고했다. ‘그래. 가라 가! 그깟 연애, 결혼 안 하면 되지.’ 떠나는 남자들을 미련없이 보냈다. 그러다 20대 끝자락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의 큰 감정 변화 앞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기다려줬다. 감정에 북받쳐 엉엉 울면 말없이 휴지를 건넸다. 별 일 아닌 일로 서운하다고 소리 지르고 따지면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내 감정이 가라앉으면 미안하다고, 자신이 더 잘하겠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 남편의 차분한 태도, 목소리에 이상하게 감정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화를 내고 소리 지른 것이 무안해질만큼. 그래서 나는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다.



섬세하고 따뜻한 남편.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던 남편.

항상 나의 변덕, 짜증, 신경질 앞에서 허허허 웃어주던 남편.



그런 남편이 아이가 울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울지 않을 때는 세상 다정한 아빠였지만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불편한 감정을 표현했다. 하지만 예민한 아이의 울음이 쉽게 잦아들리 없었다. 그럼 남편은 소리 지르기도 했다. 아이가 울면 남편 눈치가 보였다. 아이의 불편함을 미리 차단해 최대한 아이를 울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의 울음 소리에 격렬하게 반응하던 남편은 잠이 들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땅에 머리만 닿으면 잘 잤다. 남편과 달리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고요한 밤이 되어 자려고 누우면 모든 감각들이 살아나 나를 괴롭혔다. 하루를 돌아보며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곱씹으며 자책했다.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랐다. 입고 자는 옷, 이불의 모든 촉감들이 피부를 자극했다. 자연스레 밤새 아이를 돌보고 안아주는 건 내 몫이 되었다. 밤이 되면 모든 감각을 끄고 잘 자는 남편이 야속했다.


남편은 섬세하고 따뜻하고 차분하다. 또 책임감이 강하며 성실하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나보다 느리고 유독 청각에 예민하다. 그래서 자신에게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면 무척 괴로워한다. 새로운 장소, 사람에 적응하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또 예의 바른 사람이라 예의 없는 타인을 만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나도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좋은 것과 싫은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장소,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아 에너지가 샘솟는다. 유독 발달한 감각은 없지만 잠들기 전 감각들이 예민해진다. 예의 바르고 도덕적인 규범, 규칙을 잘 지키지만 융통성이 없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잘하며 미세한 감정 변화를 잘 파악한다.


‘그 부모에 그 자식.’ 역시 조상님의 말씀은 다 옳다. 아이는 우리 둘을 골고루 닮았다. 굳이 따지자면 남편을 더 닮았다. 우리는 닮은 듯 하지만 모두 다른 예민함을 갖고 있다. 셋 다 예민하기에 서로의 예민함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다. 남편의 힘듦은 나와 아이가, 나의 힘듦은 남편과 아이가, 아이의 힘듦은 남편과 내가 배려하고 응원해준다. 가끔 우리 셋 중 하나라도 좀 무던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좀 더 편하고 좋았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의미 없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할 시간에 우리의 예민함을 좀 더 챙겨주자. 우리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함께 잘 살아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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