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예민한 엄마입니다.

by 모개

아이가 수십 통의 전화를 할 때 숨이 막혔다. 도망치고 싶었다.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나와 떨어져 있을 아이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있을 다른 양육자(남편 또는 친정 식구들)를 믿지 못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결정을 하며 늘 부담감을 느꼈다. 내 결정이 최선의 선택인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어떤 것 하나도 대충, 적당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결정은 더 믿을 수 없었다. 결국 누군가와 상의하지 못한 채 내가 판단하고 결정했다.


몸이 힘들어 쉬고 싶어도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눕게 되면 혼자 놀게 될 아이가 안쓰러웠다. ‘일하느라 함께 하지 못하는데…….’죄책감을 느꼈다. 잠깐 영상물을 보게 하고 쉴 수도 있었지만 그건 싫었다. 그래서 피곤함을 참고 꾸역꾸역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결국 피곤함이 극에 달하면 짜증을 냈다.


퇴근 후 너저분한 거실을 보면 화가 났다. 그저 장난감 몇 개, 정리 안 된 식탁 정도였음에도 명치에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해 죽겠는데 집은 왜 이렇게 더러워?’ 누구에게, 무엇에 화가 난 줄도 모른 채 씩씩거리며 먼지포로 바닥을 밀었다. 밥을 먹으면 바로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용납할 수 없었다. 수전, 변기는 늘 반짝반짝 윤이 났다. 옷장과 서랍의 모든 물건들은 칼같이 열 맞춰 있었다. 줄이 흐트러지거나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짜증이 났다. 퇴근 후 집안일을 하느라 늘 바빴다. 항상 몸이 부서져라 했다. 어떤 날은 퇴근 후 저녁,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챙기면 정신이 너덜너덜해졌다. 심할 때는 숨이 막혔다. ‘내일은 좀 쉬자.’고 다짐했지만 다음 날 또 했다. 남편과 함께 할 수도 있었지만 역시나 남편을 믿지 못했다.


남편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신경이 더 곤두섰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남편의 표정, 시선, 대답하는 말투 등 모든 것이 자세하게 보였다. 잠깐씩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이 보이면 서운했다.


‘다들 어떻게 육아를 하는거지? 모두 이만큼 피곤하고 힘들까? 다들 둘, 셋씩 잘 키우는데 나는 왜 애 하나 키우는데 힘들지?’ 자주 두통과 어지러움을 느꼈다. 심할 때는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몸이 힘들어 가장 힘든 건 나였지만 아이와 남편도 힘들었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어떻게든 기운을 내어 일어나 움직였다가 다시 힘들어하기를 반복했다. 그저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육아에 익숙해지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다 해결해 주지 않았다.


나 역시 예민한 사람이다. 우리는 둘 다 불안도가 높지만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반면 아이는 내향형에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나는 외향형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즐거움이 크다. 아이는 내가 낳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나를 닮은 부분만 생각하고 판단했다. 이제 아이, 나를 구분 짓고 다름을 인정해야 했다.


예민한 부모는 정보를 깊이 처리할 수 있다.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척척 안다. 양심적으로 행동한다. 또 정서적으로 강하게 반응하고 공감을 잘한다.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 뇌가 더 활성화되어 감정을 더 정교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이를 기르며 기쁨, 슬픔을 더 크게 느낀다. 미묘한 자극도 잘 알아차린다. 아기 피부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부터 밤에 곤히 잠든 아기가 새근거리는 소리, 햇빛이 사춘기 딸의 머리카락에서 반짝이는 모습까지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자극을 받아 쉽게 방전된다. 책임감이 강해 남들보다 육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육아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더럽고 정리 안 된 집이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 집안일도 잘한다. 그래서 더 쉽게 지친다. 여기에 부모로서 내려야 할 결정도 한몫 한다. 아이 돌보미, 소아청소년과, 어린이집, 유치원 선택 문제로 오랜시간 고민하고 이 모든 것을 깊이 숙고한다. 몸에 대한 자극도 높다. 통증을 더 많이 느끼며 불편한 상황(불편한 의자, 복잡한 놀이공원에서 걷는 일, 장시간 노출되는 소음 등)에서 피로함을 느낀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요리법을 보고 있는데 아이가 말을 걸 때 예민한 부모는 능숙하게 처리한다. 하지만 복잡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예민한 부모를 위한 심리수업 중에서-


누군가는 나의 예민함에 대해 ‘유별나다. 아이에게 너무 집착한다. 혼자 다 하려고 한다.’ 며 ‘완벽주의자’, ‘욕심쟁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상냥하고 친절하며 책임감이 강하다. 현명하다.’고 했다. 다 맞는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일, 육아, 사회생활, 인간관계에서 강점이 되었지만 늘 지치고 피곤했다. 이제 우리의 예민함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내가 유독 화가 날 때는 언제인가?’ ‘아이의 어떤 행동을 가장 견디기 힘든가?’ ‘남편과 함께 나눠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또 아이를 좀 더 믿어줘야 했다. 서툼으로 인해 다칠까 봐 불안한 마음, 실패 후 속상한 아이를 바라보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다솜이가 해볼래?”

당황했지만 이내 좋아했다. 조심성이 많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아이는 알려주는대로 차근차근 해 나갔다.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 옆에서 소스를 만들었다. 저녁 준비가 끝나갈 때면 식탁을 차렸다. 밥 먹은 후 설거지도 했다. 계란프라이에도 도전했고 밥솥에 밥도 했다. 얼마 후 스팸주먹밥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었다. 빨래 개는 것, 옷장에 옷을 넣는 방법, 머리를 묶는 것, 꼼꼼하게 몸을 닦는 방법 등 생활 습관도 하나씩 익혀 나갔다. 숙제, 책가방도 스스로 챙겼다. 나는 그저 방법을 알려주고 시범을 보여줄 뿐이었다. 서툰 아이가 해내는 걸 지켜보다 적절하게 칭찬해 줄 뿐이었다.


스스로 여러 일을 해보며 요리가 정말 재미있고 즐겁다는 걸 알았다. 어른이 되면 요리사가 되어볼까? 하는 꿈도 생겼다. 바쁜 엄마를 도우며 돕는 기쁨도 느꼈다. 해내는 일이 많아지며 자신감도 차곡차곡 쌓였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엄마는 아이의 여러 도전들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다. 마음속으로 변화를 강하게 거부하며 ‘불편해! 불편해!’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허벅지를 꼬집고 들썩이는 엉덩이를 찍어 누르며 생각한다. ‘아이를 믿어주자. 기회를 주자.’ 이제는 망설이는 아이에게 “해 봐. 한 번 해보는거지. 해보고 안되면 다시 하면 되고.”쿨하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심장은 요동친다.)


오늘도 나의 예민함이라는 무기로 아이의 예민함을 스스로 불에 달구고 두드리고 갈아 자신의 무기로 만들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응원하며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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