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내 모습을 마주하다.

by 모개

4일째가 되자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일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결국 물놀이는 첫날 30분 한 것이 전부였다. 커플 원피스는 잠깐 입고 사진만 찍었다.(사진을 찍을 때도 체온은 38도였다.) 캐리어에 챙겨간 많은 옷 중 가장 많이 입은 옷은 파자마였다.


열이 떨어지자 지인 가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함께 여행을 온 저들은 무슨 잘못인가! 매일 나의 안색과 아이의 열을 확인하며 걱정했다. 아이 옆에 붙어 있는 나 때문에 맥주 한 잔 마시지 못했다. 식사 메뉴를 정할 때도 다 내 아이 위주로 결정해줬다. 모든 일정을 다 취소하고 숙소에 같이 머물렀다. 미안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수영장으로 향했다. 지인 아들은 물놀이 중이었다. 우리는 선베드에 앉아 같이 간식을 먹었다. 그제야 수영장, 숙소 주변 풍경이 보였다.


지인 가족은 열이 떨어진 아이를 보며 안도했다. 오랜만에 밖에 나왔으니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 먹자고 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가 될 것 같았다. 남편이 숙소 입구로 나가 치킨을 받아왔다. 그런데 치킨을 펼쳐놓고 보니 햇반과 컵라면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숙소에 들어가 갖고 온다며 일어섰다. 남편도 떨어진 맥주를 사오겠다고 했다. 지인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컸던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얼마 후 자리로 돌아오니 지인 가족의 표정이 뭔가 묘했다.

“다솜이에게 치킨을 주었더니 혼자 못 발라 먹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한 번 먹어보라고, 했어. 그런데 너무 대충 먹고 버리더라고. 이것도 다 먹어야지. 했더니 다솜이가 ‘엄마, 아빠는 이렇게 먹고 남기면 알아서 다 먹어줘요.’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엄마, 아빠는 네가 남긴 것을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했어. 그런데 말해놓고 보니 다솜이가 서운한 것 같더라고. 우리가 말실수를 한 것 같아.”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멍해져 잠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말없는 나를 보며 지인 부부는 더 당황해 사과하려고 했다. 그런 지인 가족을 황급히 말리며 말했다.

“아냐. 사과하지마. 사과할 일 아니야. 잘했어. 잘 말해줬어. 내가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다 맞는 말이야.”


지인 부부는 잠시 고민하더니 용기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다솜이가 어렸잖아. 또 우리가 길게 여행을 다닌 적도 없었고. 이번에 지켜보니 다솜이는 알아서 잘 할 것 같은데 너희가 다 해주는 것이 많더라. 뭐랄까? 부모가 아닌 수행원 같은 느낌? 물론 다솜이가 열이 나고 아프긴했지. 그래도 좀 과하다 싶었어. 덥다고 한 마디만 하면 너는 손선풍기를 틀었어. 아빠는 아이 가방을 덥석 받아 들었고. 그거 다솜이 가방이잖아. 너희도 각자의 짐을 들고 있고. 만약 힘들다면 도와달라고 직접 말해야지. 아니면 자신의 가방이니 좀 힘들어도 참고 들어야 하는 게 맞아. 식당에 가서도 다솜이가 알아서 잘 먹을 것 같은데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고 뜨겁지 않게 식혀서 앞에 놓아주더라고. 아침 조식을 먹을 때도 먹고 싶은 걸 고르고 있는데 벌써 아빠가 모든 음식을 담아 와 아이를 불렀어. 어떤 음식이 있는지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골라 먹어도 보고.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줘야지. 주스도 직접 따라서 들고 와 보고. 그런데 주스, 물 종류별로 다 담아서 앞에 놔주고 접시에 디저트까지 담아 갖다 주더라고. 다솜이가 아팠으니 안쓰럽고 그런 건 알겠어. 그런데 다솜이 어느 정도 커서 그런지 열이 나는 동안에도 잘 먹고 움직였거든. 다솜이는 잘 참고 견뎌주고 있는데 너희가 더 불안해 보였어. 다솜이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야. 한 번 설명해주고 알려주면 알아서 정말 잘할 것 같던데 다솜이가 할 수 있는 기회를 너희가 막고 있는 것 같아.”


첫 상담 코칭 후 가장 크게 적어놓았던 말 ‘엄마는 완벽한 엄마를 내려놓아야 한다.’ 는 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최근 견디는 힘을 길러주겠다고 열심히 노력했다. 잘 해냈다고 스스로 만족했지만 정작 나는 끝까지 ‘완벽한 엄마’를 내려놓지 않았다. ‘계속 잘해주고 싶어서’,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겪게 될 어려움을 미리 차단했다. 스스로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이가 할 줄 아는 것을 없게 만들었다. 자신감을 떨어트렸다. 결국 내가 아이의 불안도를 높이고 있었다. 최근 다시 찾은 센터 상담으로 눈에 보였던 아이의 분리불안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완벽한 엄마’라는 이유로 행해졌던 양육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아이가 다치거나 위험할까 두려운 마음에 아이를 늘 세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대했다. 이렇게 하다보면 결국 아이의 불안이 스멀스멀 다시 고개를 쳐 들어 집어 삼키겠지. 결국 타인의 눈을 통해 꽁꽁 감춰두었던 숨겨진 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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