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곧 필리핀 공항에 도착 예정이다.
우린 이제 필리핀 공항에 착륙했어.
공항에 내린 순간 더운 공기가 훅 느껴져 숨이 막히는 기분이야.
아니면 에어컨 바람이 강해서 좀 춥게 느껴질 수도 있어.
비행기 안에서 자고 일어나 졸리고 피곤해 짜증이 날 수도 있지.
하지만 괜찮아.
조금 참고 공항을 벗어나면 숙소에 가서 쉴 수 있거든.
우선 더우니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자.
공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어머나! 사람이 엄청 많네. 기다려야겠어.
힘들겠지만 기다리면 곧 끝날거야.
건이 오빠와 함께 간단한 게임을 하며 기다려도 좋겠다.
이제 빠져나왔어. 캐리어를 찾아야지.
엄마, 아빠랑 같이 찾자. 힘들면 잠시 앉아 있을 곳을 찾아 앉아 있어도 되.
캐리어를 찾아 밖으로 나오니 깜깜해.
깜깜해서 무서울 수 있어.
하지만 괜찮아.
우린 손을 꼭 잡고 있으니까.
모두 상상이다. 상상 여행은 집을 나서는 것부터 시작해 지금은 필리핀 공항까지 진행되었다.
남편 친구 부부와 인도네시아 발리로 신혼여행을 함께 했다. 남편 친구가 인도네시아 전문 가이드였다. 덕분에 아주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여행으로 친해진 후 연락도 자주하며 서로를 챙겼다. 각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여행도 함께 다녔다. 언니(남편 친구 부인)는 늘 열린 마음으로 날 응원해 주었다. 내 아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격려와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센터 상담 후 아이가 좋아졌다는 소식을 전하자 필리핀 여행을 제안했다.
2023년 1월 말로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첫 비행기였다. 국내 여행도 2시간 이상 이동한 적이 없었다. 4시간의 비행 시간, 낯선 해외라는 장소 모두 걱정이었다. 그래도 시도해 보고 싶었다. 상담 후 생긴 자신감,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컸다.
아이를 위해 매일 밤 예행연습을 했다. 12월부터 잠들기 전 상상 여행을 떠났다. 아이는 이야기하며 즐거워하기도 했고, 불안해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대비할 수 있는 것(비상약, 애착이불, 좋아하는 간식 등)을 함께 찾았다. 필요한 물건을 목록으로 만들어 준비했다.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이 집에 속속 도착했다. 함께 즐겁게 뜯어보고 열어보며 걱정보다 설렘이 커졌다. 또 내가 자신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과 과정에 대해 고마워했다.
새로운 곳에 대한 낯설고 두려웠던 마음이 설렘과 흥분, 즐거움으로 바뀌기를 바랐다. 우리의 상상과 달리 흘러간다 해도 짜증과 실망이 아닌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하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불안하고 걱정했던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았으면 했다. 이미 여행 전부터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지만 괜찮았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도 굉장히 좋은 추억이 되리라 믿었다.
상상 여행 덕분인지 긴 비행을 잘 견뎌주었다. 늦은 밤 도착한 숙소에서 잠도 잘 잤다. 여행의 시작이 좋았기에 약간 흥분되었다. 하지만 둘째 날 밤부터 컨디션이 안 좋아지더니 급기야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체온계에 찍힌 39라는 숫자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정말 기대하고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몇 달 전부터 우리, 아니 나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생각보다 잘 견디며 새로운 것에 조금씩 도전하는 아이를 보며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열이라니! 열이라니!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날씨가 문제였다. 덥다고 들었던 필리핀 세부는 우리가 도착할 날부터 계속 흐렸고 바람도 불었다. 해가 없으니 수영장 물은 차가웠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물놀이는 해야지 싶어 30분 정도 했던 물놀이가 문제였다. 하지만 내 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잘만 놀던데(부러움), 우리 애는 고작 이 정도에 아프다니(답답함), 내가 더 옷을 챙겨 입혔어야 했나(자책), 해열제를 더 넉넉하게 준비했어야 하나, 소아과에서 약을 받아 왔어야 했나(후회), 여러 감정들 속에 허우적거렸다.
아이 열이 떨어지지 않자 숙소 근처 병원을 검색했다. 한국보다 느린, 아니 느려터진 와이파이에 분통이 터졌다. 숙소 근처 병원을 검색하며 갈까 말까 계속 고민했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병원을 믿을 수 없었다. 약국에서 해열제라도 더 사려고 했는데 다행히 언니가 소아과에서 지어 온 약이 있다면 주었다. 하지만 알약이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아이는 아직 알약을 먹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일찌감치 알약도 잘 먹던데 내 아이는 왜 알약도 못 먹을까?’ 원망스러웠다. 아이가 부족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 열이 먼저였다. 알약 속에서 해열제와 소염제를 찾아 빻아 가루로 만들었다. 물에 녹여 먹였지만 차도는 없었다.
열은 3일째까지 이어졌다. 초조해지고 마음이 타 들어갔다.(입까지 바짝 말랐다.)집이 아닌 곳에서의 열보초, 조금씩 일정을 시도해보며 견디는 아이,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나. 결국 저녁이 되자 마음의 힘듦이 절정에 달했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흔들리는 나의 멘탈을 원망했다. 힘든 마음 하나 견디지 못하는 나의 연약한 마음에 화도 났다. 하지만 당장 집에 갈 수 없었다. 그저 체온계를 손에 쥔 채 아픈 아이를 지켜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