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여!

by 모개

매 주 토요일 상담선생님은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보드게임만 선택했다. 게임을 하며 좀 져주기도 했다가 단번에 이기기도 했다. 모래와 슬라임 놀이를 한 후 바로 손을 씻지 못했다. 강압적으로 ‘씻지마!’ 가 아니라 놀이나 대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손이 더러운 채로 두었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모습, 반응에 따라 적절한 조언을 해주셨다. 불편한 마음은 느낄 수 있지만 어떻게 대처하고 해소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또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접기를 하며 자신의 불안에 대해 털어놓도록 하셨다.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집에서도 아이가 좋아하는 보드게임과 함께 싫어하는 것도 했다. 여행 갈 때는 멀미약의 도움을 받았다. 일부러 새로운 식당도 갔다. 잘 먹어보지 않는 메뉴도 골라 먹었다. 주말 오후 갑자기 외출을 나가기도 했다. 여러 선택지 앞에서 아이 스스로 선택하게도 했다가 어떤 것은 부모의 결정을 따르도록 했다. 아이의 불편함은 들어주고 인정해주되 그래도 견뎌야 한다는 것도 지속적으로 알려주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다. 하루종일 내 옆자리에 앉아 엄마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지 지켜보았다.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직장 안을 둘러보기도 했다.


‘다 했니?’

‘그거 해야지.’

‘언제 할거야?’

‘이렇게 하지마. 조심 좀 해.’

‘지금 당장 해.’


통제, 지지의 말을 거두고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이는 할 일을 알아서 해주었다. 지금 했으면 하는 마음에, 좀 더 빨리 했으면 하는 마음을 거두었다. 내 목소리를 껐다. 아이 옆에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자 자신의 시간을 알아서 계획적으로 꾸려나갔다. 꼭 해야 하는 것과 중요한 것, 지금 당장 하지 않지만 오늘 중으로 하면 되는 것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상담은 5개월로 접어들었고 3학년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아이의 불안, 분리불안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 어느때보다 평온한 새학기였다. 상담은 격주로 바뀌었고 6월이 되자 선생님께서 상담을 종료하셨다.

6개월의 상담으로 우리는 일상을 되찾았다. 물론 아이의 불안은 일상 속에서 중간중간 나타났다.


‘내일 발표가 있는데 걱정이 된다.’

‘내일 영어 시험이 있어서 불안하다.’

‘내일 영어 연극에서 대사가 생각나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

‘아이들이 내 귀에 있는 전이개누공 수술 상처를 보고 뭐라고 할까 긴장된다.’


아이는 여전히 새로운 환경, 상황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했다. 또 태권도 2품 심사 특별훈련이 시작되면서 그로 인한 걱정과 불안도 생겼다.


‘태권도 특별 훈련수업 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이 된다.’

‘내가 특별훈련에 간 사이 집에 혼자 있을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된다.’

‘훈련장소가 갑자기 바뀔까 봐 걱정이 된다.’


상황에 따라 이유는 달랐지만 불안은 수시로 찾아왔다. 그래도 아이는 피하거나 감정적으로 폭발하지 않았다. 나 또한 불안한 아이를 좀 더 따뜻하고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매일 아슬아슬했지만 떨어지지 않는 줄타기였다.


아파트 입주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정신없이 두 달을 보내고 2023년 8월! 드디어 우리집이 생겼다. 하지만 아이 전학이 큰 걱정이었다. 동네가 바뀌어 전학은 당연했지만 시점이 고민이었다. 6개월의 상담으로 많이 좋아졌지만 전학이라는 큰 변화를 아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아파트 입주는 7월 말부터 시작되었다. 9월 1일 개학 시점의 전학생 숫자는 200명이 넘었다. 학교에서 학년별로 신규반을 한 학급씩 만들었다. 한 학급 정원이 다 차고 남은 아이들은 기존반으로 배치되었다. 바로 전학 처리를 해서 신규반으로 넣을지, 전학 처리를 미루고 기존반으로 넣을지 고민했다. 오랜 고민 끝에 신규 학급보다 이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로 구성된 기존반을 선택했다.


개학날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었다. 이미 와 있던 아이들이 ‘와~ 전학생이다.’ 외치며 우르르 달려왔다. 아이는 순간 당황했지만 관심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이내 한 아이가 아이 손을 잡고 교실로 안내했다. 아이 표정이 금세 밝아지더니 내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엄마, 이제 가.”


그 후 아이는 금방, 쉽게 잘 적응했다. 오히려 기존 학교 새학년보다 더 편안하고 즐거웠다. 반 아이들이 남녀 모두 어울려 노는 분위기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다. 새로운 피아노, 발레 학원도 아이 스스로 결정했다.

남편은 상담도 상담이지만 좋은 선택을 한 내 덕이라고 했다. 고민하던 시간은 힘들었지만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자 행복하고 뿌듯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여러 반응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사라졌다. 주변에서도 아이 얼굴이 ‘정말 밝아졌다. 좋아졌다.’ 고 했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아이는 여기저기에서 칭찬도 받았다.


전이개누공(이루공) 수술도 잘 되었다. 결혼 11년만에 장만한 아파트로 이사도 했다. 가장 걱정했던 아이 전학과 새로운 학원 적응까지 마쳤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 모든 걸 극복하고 이겨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참 좋겠지만 우리의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지인 가족과 함께 떠난 필리핀 세부 여행에서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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