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의기투합하다.

by 모개

‘잘 키우셨네요.’

‘아이가 참 야무져요.’

‘똑똑하고 예의 바르네요.’

초등학교 입학 후 아이가 칭찬을 들으면 내 칭찬처럼 느껴졌다.

‘봐라! 나는 일 하면서 아이도 잘 키운다. 어때? 멋지지?’

가슴이 활짝 펴졌다. 어깨에 힘도 잔뜩 들어갔다. 잘난 척이 하늘을 찔렀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겸손한 척 했다. 한심했다. 역겹기까지 했다. 아이 속이 썩어들어가는지 모르고 도대체 뭘 한거지?


‘엄마표’를 붙여 놓고 나 잘난 맛에 취해 아이를 가르쳤다. 맞고 틀리고에 따라 기분이 널뛰었다. 그 기분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문제가 틀릴 때마다 아이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고, 세상에서 엄마가 전부였던 아이는 그 마음을 참고 견뎠다. 하나라도 더 맞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늘 100점일 수 없었다. 학습지의 개수가 점점 늘어도 하기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결국 엄마의 강압을 이기지 못한 아이의 마음이 팡 터져버렸다.


상담실을 나오니 초조한 표정의 남편이 보였다. 그를 위해 말해줘야 하는데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이 학습에 열을 올리던 그때, 걱정하던 남편에게 어떻게 했던가! ‘네가 뭘 알아? 매일 늦게 들어오는 네가 아이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는대? 네가 나만큼 아이를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오만한 생각에 얼마나 남편을 무시했던가! 그런데 지금 아이 상황이 기질도 기질이지만 나의 훈육 태도가 원인이었다는 걸 어떻게 말한다 말인가!


“우선 매주 토요일 상담 받기로 했어. 먼저 다솜이가 선생님과 40분 상담을 하고 그 후 나와 10분 정도 대화하며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겠대.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이유가 아닌 앞으로의 일정만 말하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남편은 더 묻지 않았다.

(더 묻지 않던 남편에게 지금도 정말 고맙다.)

아이는 날 닮아 전이개누공(이루공)이 있었다. 가을에 곪기 시작하더니 결국 터졌다. 귀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고름도 계속 흘러나왔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서울대어린이병원에 2월 진료 예약을 잡았다. 그때까지 흘러나오는 고름을 계속 짜고 닦아주어야 했다. 주 6일은 퇴근 후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피부과에서 염증 치료를 했다. 여름 코로나에 이어 겨울 독감까지 걸려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유명 한의원에서 보약도 지어 먹였다. 매 주 토요일은 상담센터에 방문했다.


1년 중 12월이 가장 바쁜 달이었다. 낮에는 미친 듯이 일했다. 퇴근 후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피부과에 갔다.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숨고 회피했던 것에 대해 벌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참아야지. 견뎌내야지. 나 자신을 더 몰아붙이며 한 달 내내 아이를 살뜰하게 챙기고 보살폈다.


반면 아이의 12월은 여유롭고 한가했다. ‘너의 힘든 마음을 위해 좀 쉬자.’며 다 멈췄을 때 아이는 수긍했고 그저 학교, 피아노 학원만 갔다. 쓴 한약을 먹고, 매일 피부과에서 아픈 치료를 받는대도 훨씬 편안해 보였다.

선생님은 대화, 놀이 중 계속 아이에게 불편한 상황을 만들었다. 아이의 반응, 태도를 보며 따뜻하게 조언해 주셨다. 나는 일주일동안 고민되었던 순간을 메모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은 아이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도 편안하게 해주었다. 선생님의 조언으로 양육 능력치가 쌓여갔다. 육아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기다려줘야 하는 순간, 단호하게 말해야 하는 순간, 다독여줘야 하는 순간들이 언제인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니 아이에 대한 태도도 유연해졌다.


일관적인 태도로 유연하고 여유롭게 자신을 대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잘 추스렀다. 지속적인 가르침과 조언을 주의 깊게 듣고 노력했다. 겨울방학으로 친구들과 거리를 두게 되자 더 편안해졌다. 지시와 통제를 거두고 위험하지 않다면 되도록 아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두었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도록 기다려 주었다. 1월의 어느 날 아이가 다시 태권도 학원을 다니며 2품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또 서점에 가서 3학년 학습지를 직접 골라 매일 풀어보겠다고 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일을 시작했다.

두 달 정도 상담을 진행한 후 우리의 일상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여전히 아이와 장거리 여행은 어려웠다. 예정에 없던 외출이나 새로운 식당에 한 번 가려면 많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잘 하지 못하는 보드게임을 한 후 속상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를 지켜봐야 했다. 어떤 날은 평온하고 행복해 웃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폭풍이 몰아쳐 밤새 울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 이유와 방법을 알았으니 점점 괜찮아질 것이라고 행복회로를 돌렸다. 더 이상 우울함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지 말자며 다짐도 했다. 하지만 나의 양육태도는 지시, 통제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오랫동안 꿈꾸었다 내려놓았던 ‘완벽한 엄마’의 잔해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결국 그것은 나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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