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봄이 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솔직히 자신 없었다. 속마음은 ‘엄마도 잘 모르겠어. 네가 좋아지지 않을까 봐 너무 두려워.’였다. 그래도 용기 내 선생님과 함께 들어가는 아이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곤 혼자 남겨진 대기실에 앉아 훌쩍였다.
아이가 바라보던 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상담 선생님께 어떤 말을 듣게 될까?’, ‘ 아이는 좋아질 수 있을까?’, ‘우린 이 시간을 어떻게 버티고 견뎌야 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가 밝은 얼굴로 나왔다. 아이를 보니 긴장되고 불안했던 마음이 좀 놓였다. 하지만 내가 상담실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시 불안해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다솜이를 도와줄 수 있어. 그러니 아빠와 잠시 앉아서 기다려야 해.” 남편이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들을 꺼내 놓으며 거들었다. “아빠랑 이거 먹으면서 기다리자. 다 먹으면 엄마가 나올거야.” 그제야 아이는 내 품에서 나와 아빠 손을 잡았다.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다니! 선생님과 상담 하기도 전에 기운이 쭉 빠졌다. 하지만 따뜻한 미소를 지은 채 이 모든 시간을 차분하게 기다려주시는 선생님을 보니 힘이 났다.
“어머니. 제가 확인해보니 예전 상담 기록이 있더라고요.”
“네. 맞아요.”
“그때 아이 기질 등 여러 검사를 하셨네요. 그래서 제가 기록을 미리 살펴본 후 오늘 아이를 만나 이야기 나누며 관찰했어요.”
“아, 그래요? 저도 그때 검사와 상담으로 제 아이가 불안기질이라는 건 잘 알고 있는데요. 최근 친구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 후 아이가 저렇게 달라졌어요. 제가 직장에서 넘어져 머리가 깨져 죽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해요. 이게 말이 되냐고요. 암튼 아이는 제가 죽을까 봐 불안하다며 매일 전화를 30통 이상 해요. 제가 전화를 좀 늦게 받거나 못 받으면 난리가 나요. 아이 전화를 잘 받으려고 이 워치도 구입해서 손목에 차고 다닌다니까요. 제가 아무리 전화를 잘 받아주고 이야기해줘도 좋아지지 않아요. 저도 일을 하잖아요. 어떻게 아이 전화를 다 받을 수 있겠어요. 정말 미칠 지경이에요. 애가 왜 이러는 걸까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선생님 앞에 앉자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그렇군요. 어머니,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런데 어머니. 다솜이가 불안기질인 건 맞는데요. 지금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 기질 때문만은 아니에요. 제가 다솜이와 얘기해보니 견디는 힘이 부족해요.”
“네? 견디는 힘이요?”
“네. 견디는 힘이요. 다솜이는 예민한 아이라 감각이 발달해 있어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자극에 노출되고 스트레스 강도도 심하지요. 그래서 스트레스 견디는 훈련이 따로 필요해요. 그런데 그동안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최근 친구 문제를 겪었고 그 힘듦을 견딜 수 없으니 엄마에 대한 분리불안으로 나타난거예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니 스트레스 견디는 훈련을 따로 해야 하나? 마음이 힘든 것과 엄마에 대한 분리불안은 무슨 관계가 있는거지? 선생님 말이 이해되지 않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 평소 다솜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을 얘기해주세요.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시는지요.”
선생님의 물음에 생각 나는대로 두서없이 말했다. 우리의 평일 저녁 일상을 시작으로 주말에 무엇을 하고 보내는지, 학원은 어디에 다니는지, 학습은 어떻게 하는지, 학교 선생님에 대한 아이의 평가는 어떠한지,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는 무엇인지 등 털어놓았다.
예민한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양한 양상으로 표현된다. 내 아이는 분리불안이라고 했다. 아이들에 따라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 함구증,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모범생이었던 아이가 중학교 때 갑자기 반항이 심해지거나 성적이 떨어지고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아니, 그 정도 스트레스도 못 견디면 어쩐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바로 나다!) 예민한 아이들은 감각이 발달해 스트레스 강도가 더 심하다. 그렇기에 견디는 훈련이 따로 필요하다. 하지만 훈련한답시고
"이 정도도 못 견디면 어떡하니?"
"에휴, 애처럼 왜 그래."
라고 말하면 안 된다. 힘듦은 인정해주되 그래도 견딜 수 있게,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견디는 힘이 약하면 새로운 환경, 사람, 장소 등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곳에 갔을 때 거부감이 심하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늘 익숙한 것만 찾는다. 내 아이도 본인이 잘하고 익숙한 보드게임만 했다. 여행을 싫어했다. 물놀이도 무섭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일정이 생기면 부담스러워했다. 이동할 때도 남편 차만 타려고 했다. 가던 길로 가지 않으면 사고가 날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새학기 낯섦이 힘들었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면 긴장했다. 친구들의 태도, 관계 변화가 생기면 당황했다. 자신과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른 친구에게 대응하기 힘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뭐든지 알아서 했던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 나약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랴! 내 아이가 그런 아이인 걸. 상담 선생님께서는 엄마의 지시와 통제, 잔소리를 거두고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했다. 스스로 성공하는 경험이 쌓이면 견디는 힘도 생긴다. 거기에 선생님과 견디는 훈련을 하게 되면 더 좋아진다고 했다. 계속 새롭거나 불편한 상황을 툭툭 던져 노출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아이는 불안하고 예민하지만 규칙을 잘 지키고 성실하다. 또 잘 하려고 하는 욕구가 있으니 아이를 믿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엄마표’ 학습 중단하기!
원하는 학원만 다니는데 다 싫다고 하면 모두 그만두기!
영상 시간 제한하지 않기!
엄마 주도로 가던 도서관 가지 않기!
나 역시 갑작스런 변화가 두려웠지만 선생님의 판단과 조언을 믿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