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좀 살려줘!

by 모개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의 힘듦을 몰랐고 도와주지 못했으니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이상한 집착으로 우리 일상은 무너졌다.


아이는 쉬는 시간마다 수신자 부담 전화로 연락했다. 전화를 거는 이유는 ‘엄마가 잘 있는지 걱정되어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갑자기 직장이 바뀐 것도 아니고 밖에서 몸 쓰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거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가 걱정된다니 매번 전화로 ‘살아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회의에 들어가 전화를 못 받았다. 잠깐의 회의 후 자리로 돌아오니 부재중 전화 15통, 카카오톡 1개가 와 있었다. 뭐지? 통화목록을 확인하니 수신자 부담 전화가 14통, 남편의 전화 1통이 있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긴걸까? 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내가 전화를 받을때까지 계속 전화를 걸었나보다. 결국 나와 통화가 되지 않자 자지러지게 울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아이 울음에 당황했지만 우선 아이를 진정시킨 후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전화 한 번을 못 받았을 뿐인데 이렇게 불안해 한다고? 불과 50분 전에 나와 통화하지 않았나? 그래도 아이가 불안하다니 워치를 구입하고 전화기도 늘 들고 다녔다. 하지만 어쩌다 전화를 조금 늦게 받으면 소리 지르고 화를 냈다. 아이의 낯선 모습에 당황했다. 이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의 힘듦을 온전히 받아줘야 했다. 그래서 아이 일과에 맞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 수업 시간에 일을 부지런히 해놓고 쉬는 시간에는 전화를 기다렸다.


아침 등교로 첫 통화를 시작했다. 쉬는 시간, 돌봄 교실에 있을 때, 학원으로 이동할 때, 도착했을 때 등 매일 30통 이상 전화를 했다. 핸드폰 앞에서 늘 긴장 상태로 대기했다. 혹시라도 전화를 못 받을 상황이 생기면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놓고 안절부절했다. 직장 동료와 업무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먼저 받았다. 핸드폰에 아이 이름이 뜨면 숨이 막혔다. 벨소리는 날카롭게 가슴을 찢어놓았다.


일에 집중하지 못했고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를 했다. 책임감, 성실함 하나로 직장에서 인정 받던 나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산 후 어렵게 얻은 자리였고 인정받기까지 했던 나의 노력이 물거품 될까 두려웠다. ‘남들은 이 정도 키워놓으면 편하다는데 내 애는 왜 여전히 힘들게 할까?’ 싶어 아이를 원망하기도 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어 나의 불안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의 힘든 마음에 아이를 잠시 제쳐두었다. 아픈 아이를 어찌해야 할지도 몰랐다. 답을 찾고 싶었지만 숨고 회피하고 싶었다. 부모가 되어서 아이 문제를 놓고 이런 마음이 들다니! 그런데 나는 그랬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얕은 책임감 때문에 어쩡정한 자세로 그저 아이 전화를 열심히 받아주며 엄마 역할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12월의 어느 날, 어김없이 전화를 한 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나 좀 살려줘.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못하겠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니 맞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차려!

“알겠어. 엄마가 도와줄게. 우선 수업 들어가고 이따 다시 통화하자.”

전화를 끊고 바로 아이가 6살 때 갔던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현재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불안이 심해 학교생활을 힘들어해요. 이런 아이를 잘 봐 줄 수 있는 선생님으로 빠른 상담 예약 부탁드립니다.”

예약을 끝낸 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다솜이가 살려달래. 우리 아이부터 살려야겠어.”


그 주 주말, 우리는 상담센터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물끄러미 벽면을 바라보던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내 마음에도 봄이 오겠지?”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오고말고. 다솜아, 너의 마음에도 꼭 봄이 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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