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

by 모개

2학년이 된 아이에게 삼총사가 생겼다. 삼총사, 단짝에 대해 걱정과 우려가 많았던 나와 달리 아이는 좋아 보였다. 비밀까지 아니어도 삼총사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소속감이 생겼다. 따로 주말에 만나 함께 하며 관계가 돈독해졌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함께 가고 놀며 학교 생활도 더 즐거워졌다. 하지만 5월 즈음 아이들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셋 중 성격이 밝고 친절한 아이(A)가 있었다. 세 아이 중 한 명(B)이 적극적으로 그 친구와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내 아이는 가장 인기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또 인기 많은 아이와 붙어 다니는 아이도 아니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좀 더 친한 관계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내 아이도 인기 많은 그 아이를 가장 좋아했다. 위태로워 보였던 이들의 관계는 9월 어느 토요일에 와르르 무너졌다.

단톡방에 B가 ‘오후에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사람?’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A는 ‘나 가능해.’ 라고 답이 왔고, 아이도 ‘1시 30분에 나갈 수 있어.’ 라고 남겼다.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나갔던 아이가 30분 만에 집에 들어왔다. “어? 벌써 온 거야?” 점심 설거지를 하다 말고 거실로 나가 물으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이 마주친 순간 으앙 울음을 터트렸다. 혹시 어디 다친건가 몸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없었다. “왜? 무슨 일이야?” 울먹이며 대답했다. “친구들이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 ‘이게 무슨 일인가! 좀 전까지 톡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만나기로 했던 아이들이 왜 나오지 않았을까?’ 우선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나보다. 친구들에게 연락해봤어?” 아이는 훌쩍이며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보냈지. 그런데 이렇게 답장이 왔어.”


“얘들아, 어디야? 나 지금 놀이터인데.”

“어? 우리 안 만나기로 했어.”

“어? 나한테는 말 안 했잖아.”

“너 나오는 줄 몰랐는데?”

“내가 1시 30분까지 나온다고 했잖아. 약속이 취소되었으면 나에게도 연락을 줘야지.”

“너 나오는 줄 몰랐다고! 몰랐으니까 연락을 안 했지.”


심장이 요동쳤다. 뭐지? 떨리는 손으로 그 전에 아이들이 나눈 메시지 내용을 확인했다. 분명 있다. 아이가 1시 30분까지 놀이터로 나가겠다고 한 문자와 거기에 친구들이 알겠다고 대답한 내용이 있다. ‘뭐지? 얘들 뭐지?’ 계속 이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위해 애쓰며 우는 아이를 안고 진정시켰다. 울던 아이가 좀 진정되자 내 품에서 빠져 나왔다. 속상한 마음이 가라앉자 화가 난 것 같았다. “나 따져야겠어.”


단톡방에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위 메시지를 다시 확인해 봐. 나는 분명 나간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너희들이 대답도 했어. 그런데 나에게 약속이 취소된 상황을 알려주지 않고 너희 둘만 연락해서 약속을 취소한 건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아이 친구들은 답장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읽씹!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며 더 상처 받았다. 부글부글 화가 치밀었다. ‘싸가지 없는 것들! 당장 전화를 걸어 따질까? 빨리 사과하라고 할까? 아니지. 애들 엄마와 통화해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당장이라도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 머리끄덩이 잡고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 이래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고 하는구나. 나도 별 수 없구나.’ 싶어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우선은 힘들고 속상한 내 아이가 먼저였다. 아이를 다독이고 또 다독이며 그날 오후를 보냈다. 다음 날 B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너의 메시지를 읽고 다시 확인해 보니 내가 못 봤네. 미안해.’ 나가겠다는 아이의 메시지에 알겠다고 대답해 놓고 이제야 못 봤다는 말이 이상했지만 어쨌든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전의 메시지와 달리 너무 친절한 메시지의 문장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메시지는 상대 아이 엄마가 모든 문자를 보고 아이를 야단친 후 보낸 것이었다.)


그 후 삼총사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은근히 내 아이를 따돌렸다. 화장실을 갈 때도, 쉬는 시간에도 아이는 제외되었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다가가면 이내 흩어져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는 그 순간들마다 민망하고 가슴 아팠다. 힘든 마음에 서운함을 내비쳤더니 ‘너는 왜 이렇게 집착이 심하니?’ 라는 말만 돌아왔다. 아이는 이상한 아이가 되었다.

2학년 2학기를 지난 시점이라 다들 친한 무리가 생긴 후였다. 그 누구와도 어울리기 어려웠다. 걱정하는 나에게 아이는 괜찮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은 짧고 혼자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했다. 화장실은 혼자 다녀와도 된다고 했다. 마음이 쓰였지만 2학년은 곧 끝날 것이고 반 아이들과 헤어질테니 잘 지나갈거라고 믿었다.


얼마 후 위클래스 상담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서야 큰 착각이라는 걸 알았다. 쉬는 시간은 10분이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지만 점심시간은 아이에게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도서관을 가기도 했지만 혼자 오는 아이는 없었다. 이후 도서관이 아닌 위클래스를 찾아갔다. 매일 이야기를 나눠 본 상담 선생님께서 정기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셨다.

상담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가 많이 힘들었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힘든 시간을 감당하고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심장이 다 녹아내렸다. 매일 밤 자는 아이를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급한 일들만 처리하고 퇴근했다. 우울감으로 무기력해졌다.

‘이제라도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정기적인 상담을 받으면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지?’

아이는 매주 2번, 돌봄교실로 이동하는 오후 시간에 위클래스 선생님을 만났다. 상담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좋아했다. 힘든 마음을 털어놓으며 편안해졌다. 집에서 보여지는 모습도 괜찮아 보였다. 어리석게도 이번에도 보이는 것만 보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아이의 이상한 집착이 시작되었고 우리의 일상은 지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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