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잘 나가던 논술 강사였다. 지방 도시였지만 엄마들 사이 입소문도 자자했다. 늘 시간표는 꽉 차 있었고 대기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논술 수업은 늦은 오후부터 시작해 밤이 되어야 끝났다. 토요일 오전 수업이나 특강을 할 때도 많았다. 육아와 병행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은 후 9년의 논술 강사 경력은 끝났다.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맡길 수 없었다. 돌봄 이모님을 구할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살림과 육아에 집중했다. 아이들을 다시 가르칠 수 없어 많이 아쉬웠지만 내 아이를 잘 키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니 괜찮았다. 집 안에 비싼 전집을 꽉꽉 채우지 못했지만 도서관 책을 이용해 열심히 읽혔다.
말이 늦던 아이가 한글은 빨리 깨우쳤다. 6세 겨울 책 한 권을 주고 스스로 읽어보라 시켰더니 한 달 만에 모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매일 읽어주던 많은 책과 끝말잇기 게임, 다양한 보드게임, 함께 읽었던 간판 글자들, 어린이집 교육과정의 결과였으리라. 한 달 만에 책을 술술 읽는 아이를 보며 슬쩍 수 개념도 가르쳐 주었더니 금세 이해했다. ‘어라? 잘하네.’ 덧셈과 뺄셈도 알려주니 그것도 금방 풀었다.
내가 툭툭 던지면 아이는 탁탁 받아 이해했다. 신나고 즐거웠다. 눈동자를 빛내며 앉아 생각을 쏟아낸 후 글로 표현하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온 몸에 에너지가 차오르고 의욕이 솟구쳤다.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학습지를 구입했다. 국어 학습지는 내 전문 분야니 어렵지 않게 골랐다. 수학 학습지는 인터넷으로 검색해 입학 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선택했다. 학습지를 내밀며 이제 학교에 가니 매일 저녁 정해진 시간에 엄마와 함께 풀어보자며 제안했다. 아이는 흔쾌히 해보겠다고 했다. 의욕도 보였다.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학습지를 풀었다. 생각보다 곧잘, 심지어 잘 풀었다. 과거 내가 만났던 7세 아이들보다 더 잘했다. 뿌듯했고 어깨도 으쓱했다.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곧장 아이 맞춤 독서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책을 읽히고 다양한 발문을 던져 정리시킨 후 그걸 바탕으로 글쓰기까지 시킬 계획을 짰다. 아이는 이번에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7세 여름이 되었다. 아이는 기본적인 연산을 이해하고 잘 풀었지만 조금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풀지 못했다. ‘아이가 수학이 약하구나.’ 수포자였던 나의 과거가 떠올라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 아이도 수포자가 되면 안되는데. 수학도 국어만큼 중요한데 어쩌지?’ 조급해졌다. 도형, 사고력, 문장제 수학 학습지를 추가로 배치했다. 학습지의 개수가 4개로 늘었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하지만 집중 시간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과거 90분 수업도 너끈히 해내던 7세 아이들이 생각났다. 집중력이 낮은 아이가 한심했고 화가 났다. ‘이 정도도 못 앉아 있으면 학교에서 어떻게 앉아 수업을 듣지?’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고 못 풀면 안되는 거 아닌가?’ 아이를 점점 몰아붙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