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3살 많은 언니가 있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파 일 년 중 반은 병원에 입원했다. 엄마는 병원에서 언니를, 아빠는 집에서 나를 돌봤다. 늘 피곤한 부모님과 기운 없이 누워 있는 언니가 걱정되었다. 그런 부모님을 위해 7살 때부터 방을 쓸고 닦았다. 아빠의 재떨이도 깨끗하게 비워놓았다. 유치원 알림장을 읽고 스스로 준비물을 가방에 챙겼다. 부모님은 그때마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아 좋았다. 어리지만 의젓한 아이. 7살의 나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내가 아닌 언니만 돌보는 엄마를 미워했고 아픈 언니를 원망했다. 그러다 이런 마음 때문에 언니가 죽을까 봐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의젓했지만 마음속에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 차 있던 7살을 지나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어보니 그때의 내가 자꾸 생각나 가슴 한쪽이 뜨끔뜨끔 아팠다. 내 아이만큼은 나처럼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도록, 외롭지 않도록 키우고 싶었다. 가족이 떠날까 봐 두렵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 옆에 착 달라붙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척척 해주는 엄마로 살았다.
어린이집 부원장님의 조언을 듣고 아이 말을 트게 했지만 일을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일하는 엄마’가 되니 아이를 못 챙겨줄까 걱정되고 불안했다. 부원장님의 조언은 까맣게 잊은 채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를 돌봤다. 아이가 서툰 젓가락질을 하면 반찬을 집어 밥 위에 올려주었다. 샤워기를 들고 씻는 흉내를 내면 위험하다며 빼앗았다. 옷을 혼자 입어보려고 하면 재빨리 입혀주었다. 양말을 신으려고 끙끙대는 아이가 안쓰러워 신겨주었다. 놀이도 아이가 원하는 놀이가 아닌 지금 아이 발달 시기에 필요하고 좋다는 놀이를 하도록 유도했다.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너덜너덜하게 읽는 아이에게 더 많은 책을 읽히고 싶은 욕심에 다른 책을 읽도록 했다. 오랜 시간 독서지도를 했던 선생님으로서 무척 부끄럽다.
전문가의 입을 통해 들으니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유별나다는 얘기를 듣고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부모에게 공감받지 못했던 감정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이 되면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 책상 정리에 공을 들였다. 시험 당일에는 수많은 징크스를 하나씩 만들어 불안도를 낮췄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억누르기만 했다. 남자친구가 떠날까 두려워지면 집착했다. 친구가 날 싫어할까 봐 무조건 맞춰주고 눈치를 봤다. 결국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어떤 계기로 터져버리면 미친 듯이 화를 내거나 울거나 소리를 질러 미친년이 되었다. 예측, 통제할 수 없는 신생아 육아를 시작하며 다시 불안이 생겼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가 먹고 자고 싸는 것에 어느 정도 규칙이 생기고 말을 알아 듣자 늘 그랬듯, 아이를 통제하며 나의 불안을 낮추고 있었다.
완벽한 엄마는 개뿔.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아닌, 일하는 엄마라서 아이를 잘 못 키운다는 남들의 비난이 두려웠다. 어떤 날은 대충 놀거나 놀지 않아도 되고, 어떤 날은 목욕을 재미있게 해주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가 뭔가에 관심을 보이고 스스로 해보고 싶어 하면 위험하지 않게 지켜보고 기다려주어야 했다. 서툴고 실패하는 그 과정 또한 아이의 몫으로 남겨둔 채 아이를 격려하고 응원했어야 했다. 나 또한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괜찮지 않다면 괜찮지 않다고 말했어야 했다. 완벽한 엄마라는 이름을 벗어나 나를 돌봤어야 했다. 아이의 현재 상황이 나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지만 과거의 내가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그 후 센터장은 나를 위로했다. 지난번 상담 때처럼 모두 다 아이를 위해 그런 것이니 이미 좋은 엄마라고 했다. 아이의 기질을 다시 한번 알려주며 놀이, 가정, 어린이집 생활에 도움이 되는 조언과 전체적인 양육 코칭을 해주었다.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열심히 메모했다.
센터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 마음은 좀 편안해졌다. 센터장의 조언대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아이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나의 작은 변화로 아이는 울음이 아닌 말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후 어린이집 등원도 조금씩 수월해졌다. 밥도 잘 먹게 되었다. 검사와 상담만으로 좋아진 아이를 보며 센터에 가길 잘 했다 싶었다. 남편과도 힘들었던 마음을 다독이며 육아 동지로서 더 단단한 관계가 되었다.
힘들었던 6세를 지나 7세가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한글 떼기, 간단한 학습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아이가 한글을 쉽게 떼고 책도 술술 읽었다. 연산 문제도 곧잘 풀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초등학교 새학기 적응만 잘 시켜주면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깜박한 것이 있었으니(도대체 이 깜박깜박은 언제까지 하려나. 쯧쯧.)센터장님께서 초1~2, 초4, 중1~2학년 시기에 아이를 특히 잘 살펴보라고 하셨던 걸 까맣게 잊고 말았다. 곧 거대한 폭풍이 몰려온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