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많이 사랑해주고 싶었어요.

by 모개

떨렸지만 차분하고 여유롭게 의자에 앉았다. 긴장 되었지만 얼굴에 미소도 머금었다. A4를 가득 채운 질문지 3장을 양손에 꼭 쥔 채 센터장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메모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종이의 글자들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엉엉 울어버렸다.


센터장이 말한 아이의 기질과 특징은 이랬다. 아이는 예민하고 섬세하다. 굉장히(앞에 ‘굉장히’를 강조)예민하고 섬세하고 관찰력이 좋게 태어났는데 부모 역시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아이의 모든 것을 깊게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양육한다. 보통 아이의 기질과 성격은 24개월부터 6세까지 형성된다. 그렇기에 이미 다 형성되었고 바꾸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어려울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좀 더 수더분하게 크기를 바라지만 아이의 기질과 성향,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야 한다. 아이의 예민함과 섬세함, 관찰력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니 엄청난 능력이 될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기질을 인정하고 다른 부분, 능력을 좀 더 개발해 주고 이끌어주어야 한다. 예민한 아이는 엄마의 생각, 마음을 금방 알아차리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욕구를 많이 억누르고 있다. 엄마가 원하는, 좋아하는 방향대로 따라줄 것이다. 현재 아이가 보이는 음식 거부는 달라진 어린이집 환경과 자신의 욕구를 꾹꾹 눌러왔던 것이 충돌해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질문사항이 빼곡하게 적힌 A4 3장 종이 여백에 정신없이 받아 적었다. 센터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열심히 적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드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웃는 얼굴과 여유로운 태도로 아이의 뜻에 따라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 머리 꼭대기에서 지켜보며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지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검사지 분석 결과를 보면 불안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요. 불안한 마음 때문에 통제하고 본인의 뜻대로 지시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강압적이지 않기에 어머니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통제, 지시인지 잘 모를 거예요. 육아에 대한 불안이 높아 자신이 할 수 있는,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완벽을 추구하고 있으시죠? 그래서 집안일도 굉장히 잘하시죠? 남편분보다 어머니께서 거의 다 하시고요. 육아와 집안일. 거기에 직장까지. 또 일하며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 또한 있고요. 하아~ 에너지 소모가 굉장할 것 같은데. 힘들지 않으세요?”


‘일하는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자 걱정이 많아졌다. ‘아이가 나의 부재로 외로움을 느끼면 어쩌지?’, ‘혹시라도 내가 놓치는 것이 생기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들면 더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퇴근하면 아이의 저녁과 놀이, 목욕, 어린이집 준비물, 독서 활동 등 놓치지 않았다. 놀이도 다양하게, 목욕도 재미있게, 책도 열심히. 다 잘하려고 했다. 몸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괜찮았다. 분명 괜찮지 않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이를 위해 참아야 한다며 다그쳤다. 하지만 완벽한, 좋은 엄마의 기준이라고 정해놓은 것들(생각해보면 대부분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들이었다.)을 임무 완료하듯 하나씩 하며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었다. 사람들 눈에 나는 일하면서도 아이를 참 잘 키우는 ‘완벽한 엄마’였다. 거기에 아이도 엄마 말을 잘 듣는 ‘똑똑하고 귀여운 아이’로 보였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정곡을 정확히 찔린, 깊은 비밀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거기에 불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당황스러움과 죄책감, 늘 불안했던 어린 시절도 떠올랐다. 해답을 찾아 시원한 기분까지 한 번에 몰아쳐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은 어느새 꺽꺽 우는 통곡으로 바뀌었다.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정말 잘해주고 싶었거든요.’, ‘많이 사랑해주고 싶었거든요.’ 이 말만 계속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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