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 시작되다.

by 모개

6세는 긴 시간 앉아 상담 및 검사가 힘들다. 그래서 1회 상담을 3회(30분)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검사는 ‘그림 그리기’, ‘선생님과 놀이하기’, ‘질문에 대답하기’로 안내 받았다. 선생님의 일정에 맞춰 상담 요일은 수요일로 정해졌다. 매주 수요일 퇴근하면, 집과 멀리 떨어진 상담센터로 향했다. 대기실에서 30년 같은 30분을 보냈다.


3주 동안 우리 부부는 받은 검사지를 작성하고 제출했다. 남편의 검사지는 4장, 내 것은 6장이었다. 종이에 빡빡하게 적힌 질문을 하나씩 채워나갈 때마다 숨이 막혔다.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작성하던 검사지가 나의 가치관, 도덕성, 육아에 대한 평가처럼 느껴져 거부감이 들었다. 발가벗긴 기분이었다. 적는 모든 글자가 조심스러웠다. 단어 선택도 고민했다. ‘나는 또 내가 먼저구나. 남에게 보여지는 것에만 신경 쓰고 있었구나. 내려놓자. 그래야 도움 받을 수 있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마지막 문장 완성 검사는 첫 느낌, 생각 그대로 빠르게 적어 끝냈다. 그런데 나보다 적은 장수를 받은 남편은 작성을 계속 미뤘다. 그런 남편을 보며 답답함, 서운함을 넘어 화가 났다. 결국 아이 마지막 검사 전날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매주 수요일 퇴근해서 아이를 데리고 센터를 다니고 있어! 30년 같은 30분을 불안함 속에서 기다리고 있고. 검사가 끝나면 애 저녁을 챙겨 먹이고 다시 집으로 운전해서 와. 아직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깜깜한 밤, 긴장 속에 운전한다고! 집에 오면 밀린 집안일도 해. 집안일이 끝나면 아이를 씻겨 재우지. 그런데 너는 검사지 작성조차 미루는거니?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얘는 니 애기도 해. 이 정도도 못하면서 니가 아빠니?”

나만 아이 일로 조급해하고 종종거리는 것 같았다. 분명 남편의 마음도 지옥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센터 상담이 시작되니 나에게 다 떠 넘긴 것 같았다. 상담을 시작했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 굴었다. 너무 평온하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 같아 얄미웠다. 그제야 남편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사과했다. 남편의 사과에 나 역시 말이 좀 심했다는 걸 알았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힘든만큼 남편의 마음도 힘들게 하고 싶었다. 심보가 고약하고 못된 아내였다. 남편의 마음을 살피고 내 마음을 다독일 여유가 없었다. 온 몸에 돋아난 가시를 잔뜩 세운 채 날카롭고 위태로웠다.


3회에 걸쳐 나눠 진행된 검사, 부모의 검사지 작성 제출까지 한 달이 걸렸다. 센터장과의 상담은 부부가 함께 참석해야 했기에 주말로 요청했다. 센터장의 일정에 맞춰 검사 종료 2주 후 센터장을 만났다. ‘부모자녀놀이평가’가 시작되었다. 나와 남편 각자 아이를 데리고 놀이방으로 입장했다. 센터장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놀이 중간 종이에 적힌 글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그 내용은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장난감으로 놀이를 해보세요.’, ‘피규어를 선택해 놀이를 해보세요.’, ‘승부게임을 해보세요.’ 였다. 놀이 호불호가 확실한 아이는 제안하는 놀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최대한 센터장 앞에서 많은 것을 보여줘야 했다. 아이를 설득하며 어찌어찌 지시사항을 진행했다.


우리가 제출한 질문지 검사 결과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했다. 센터장은 부모자녀놀이평가를 바탕으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최종 상담일에 부모 질문지 결과를 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부모자녀놀이평가를 보니 엄마가 굉장한 프로네요. 아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문가고요. 아이와의 놀이에서 아이가 주도하고 있지만 실은 엄마가 제일 위에서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어요. 아이를 위해 엄마가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요. 하지만 이런 에너지 소비로 인한 엄마의 정신과 체력이 걱정되기도 해요. 또 현재 아이는 6세지만 발달은 6세를 넘어섰어요. 그런데 엄마는 아직도 3세 수준으로 대하고 있네요. 너무 많이 친절하게 설명하지 마세요. 현재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는 어린이집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엄마의 힘든 감정을 털어놓아도 좋을 것 같아요. 똑똑한 아이는 엄마의 불편함을 이미 다 감지하고 있어요.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며 인정받는다고 느낄거예요. 그럼 아이 감정과 생각도 쉽게 털어놓을 수 있고요. 울 때도 바로 안아 달래주지 마세요. 조금은 무심하게 두세요. 그 후 울음을 그치면 ‘왜 울었어? 엄마는 네가 갑자기 울어서 좀 당황스럽고 창피하기도 했어.’라는 식으로 엄마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해 보세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울음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알려주고요. 절대 울었던 상황을 모른 척, 은근슬쩍 넘어가지 말고 담담하게 짚고 넘어가야 해요.”


우리의 놀이만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그렇구나.’ ‘그래. 맞아. 내가 그렇게 아이를 대한 면이 있지.’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심란했던 마음과 복잡했던 머리가 개운해졌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와 남편은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 ‘일상에서 생기는 수많은 상황 앞에서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 등 뒤이어 따라오는 궁금증 때문에 다시 마음이 갑갑해졌다. ‘그래도 우리가 작성한 질문지에 대한 결과가 나오는 최종 상담 때는 좀 더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있겠지.’ 마음을 다독였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상담실을 나오는데 센터장이 나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이곳에 오신 거예요. 그러니 어머니께서는 잘하고 계세요.”

마음이 환해지며 맑아졌다.

“네. 맞아요. 저는 제 아이의 엄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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