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이 된 아이가 모든 음식을 거부했다. 처음에는 ‘양이 좀 줄었나?’싶었다. ‘자라는 과정에서 그럴 수 있지.’도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걱정과 불안이 차올랐다. 다시 맘카페, 인터넷, 주변 지인, 소아과 원장님을 동원했다. 다들 ‘자라는 과정에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 불안을 잠재울 수 없었다. 다시 근심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는 것으로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신생아 시절 다 토하더라도 모유든 분유든 쭉쭉 먹었다. 변비로 일주일 동안 대변을 보지 못할 때도 밥은 물론이고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폐렴으로 입원해 열이 펄펄 날 때도 밥이 나오면 벌떡 일어났다. 수족구에 걸려 목이 부어도 음식을 씹어 삼켰다. 그랬던 아이가 입을 꾹 다물고 안 먹기 시작했다.
6살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 반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 5살 때는 4살 때 만난 부원장님의 배려로 그대로 올라갔다. 하지만 6살이 되자 아이들 숫자가 늘어 변동이 생겼다. 다행히 기존 반에서 친했던 친구 몇명과 같은 반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도 자주 보던 선생님이었다. 아이도 좀 자랐으니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학기가 지나고 4월부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울기 시작했다. 등원을 맡고 있던 남편은 매일 우는 아이를 억지로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출근했다. ‘그래. 내 생각과 달리 아이 기준에는 큰 변화일 수 있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자.’고 마음 먹었다. 늘 그렇듯 머리와 다른 마음이 문제였다. 우리의 아침은 늘 아슬아슬했고 초조했다.
4월 한 달은 어린이집에서 종일 굶고 저녁으로 배를 채웠다. 5월이 되자 저녁까지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계속 안 먹으면 어쩌지?’ ‘도대체 뭐가 문제지?’ ‘어린이집에 처음 가는 것도 아니고 새학기도 지났는데 왜 이러지?’ ‘어린이집에서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는건가?’ 걱정되고 답답한 마음에 담임 선생님과 여러 차례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등원 시 좀 울지만 이내 진정이 된다.’ ‘친구들과 잘 논다.’ ‘수업에도 잘 참여한다.’ ‘점심시간에 좀 권하면 몇 숟가락 먹기도 한다.’고 하셨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을 준비했지만 안 먹거나 다섯 숟가락 정도 먹었다. 과거 아이 변비를 지켜보던 때처럼 다시 기분이 널뛰기 시작했다. 아이가 좀 먹은 날은 기분이 좋아 행복했다. 아이가 아예 먹지 않은 날은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났다. 아이 엉덩이만 바라보던 힘든 시절이 지나니 이제 아이 입만 바라보는 내 신세가 처량하고 불쌍했다.
그때의 나는 출산 전 하던 논술 교사가 아닌 다른 일을 시작했다. 근무 시간, 환경, 급여 등 예전 직장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다. 어렵게 다시 시작한 직장생활을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빨리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위해 눈을 빛내고 귀를 쫑긋한 채 일했다. 초보운전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운전이 능숙하지 않아 출, 퇴근길 늘 긴장 상태였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여파로 여기저기 몸이 아파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고 있었다.
신생아 시절부터 힘들었던 아이 양육에 지쳐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돈도 벌고 사람들을 만나니 에너지가 솟았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출산으로 인해 둔해진 몸과 떨어진 체력도 챙기고 싶어 운동도 시작했다. 하지만 한정된 에너지를 일과 운동에 쏟으니 아이에게 쏟을 기운이 없었다. 겉으로 아이의 문제를 인지하고 주변에 묻고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고 인터넷과 책을 뒤적거려 정보를 찾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래도 엄마라고 걱정되는 마음에 신경이 곤두섰고 자주 체해 잘 먹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 8월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이 ‘오늘도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출근했는데 마음이 지옥 같더라. 그래서 차에 앉아 울었어. 우리 이렇게 사는 게 맞는걸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지옥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나 뿐만 아니라 남편도 힘들었구나. ‘그래.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지. 시간이 약인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는거지. 무언가 잘못된거야.’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심리상담센터에 한 번 가보는 건 어때?”
심리상담센터라고? 내 아이가 심리상담센터에 갈 정도로 심각한건가? 하지만 남편 뿐만 아니라 내 마음도 지옥이었다.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고 더 이상 아이의 상태를 두고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지역에서 평이 좋은 심리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