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없음'이 아닌 '이상있음'

by 모개

시작은 방광이었다. 새벽 1시, 찌르는 듯한 방광의 통증에 잠에서 깼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이었다. 눈을 번쩍 뜨고 변기에 앉았다. 소변을 누니 통증이 좀 사라졌다. ‘자기 전에 물을 너무 많이 마셨나?’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신경을 긁는 통증이 시작되었다.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을 검색했다. 좀 찾아보니 방광염 증상과 비슷했다. 비뇨기과에 방문해 약을 먹으면 금방 좋아진다고 했다. 마음이 좀 놓였다. 주말에 병원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날 새벽에도 심한 통증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주말까지 기다릴 수 없어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다. 여러 검사 결과 방광염이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자궁에 문제가 있어도 그럴 수 있으니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했다. 이미 자궁내막증으로 두 번의 수술을 했던지라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재발한건가? 예전에도 이런 통증이 있었던가?’ 불안한 마음에 급히 산부인과로 차를 몰았다. 긴 대기시간 후 주치의를 만나 자궁 초음파를 했다. 주치의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방광염도 아니고 자궁 문제도 아니면 뭐란 말인가! 다시 비뇨기과에 전화를 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방광암일지 모르니 초음파를 해보자고 했다. 목덜미가 서늘했다. 우리집에 방광암 내력이 있던가? 급히 머릿속으로 얼굴도 모르는 집안 조상님을 떠올렸다. 그들의 병명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기억날 리 없었다.

다시 찾아간 비뇨기과에서 정밀 초음파를 진행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이상없음’이었다. 의사가 내린 결론은 ‘노화’였다. 방광암이 아니라는 건 정말 다행이었지만 아픈 이유가 노화라니 충격이었다. “네? 노화요?” 라고 되묻자 의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설명했다. “올해 나이가. 아! 마흔이시네요. 마흔이면 뭐 그럴 때도 되셨죠. 생각해보세요. 사십 평생 방광이 쉬지 않고 일하고 애도 낳았는데 이제 방광이 힘들 때도 되었죠. 괜찮아요. 제가 적절한 약을 좀 처방해 드릴게요.” 충격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환자에게 밀려 진료실을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는 처방전이 들려 있었다. 1층 약국으로 내려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문자가 왔다. ‘자궁경부암 검사 결과 이상없음’. 방광도 자궁도 모두 ’이상없음‘ 이었지만 내가 느끼는 내 몸은 ’이상있음‘ 이었다.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직장 생활로 차곡차곡 쌓여 가는 통장 속 숫자를 보며 내 집 마련 꿈을 꾸었다. 남들 다 먹는다는 나이 때문에 우울한 감정에 휩싸여 있을 수 없었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 후 아파트 청약까지 당첨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노화, 나이 듦, 마흔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빨리 새로운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가야 했다.


기특하게도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생활을 잘했다. 담임선생님도 아이를 잘 키웠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7세부터 시작했던 학습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학교 공부도 수월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학교, 학원, 이웃, 가족들에게 성실하고 야무지고 밝은 아이였고 어디서든 칭찬 받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변 실수를 해도 1학년이니 그럴 수 있다며 넘어갔다. 학습 도중 뜻대로 되지 않으면 책상에 머리를 박거나 자신의 머리를 때릴 때도 속상한 마음에 그런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는 일이 좀 많아졌다 싶었지만 원래 눈물이 많은 아이니까 그런가보다 하며 넘겼다. 돌봄교실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때렸을 때도 호되게 혼을 내긴 했지만 아직 어려 친구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니 앞으로 가르쳐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아갈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자잘한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학년별 독서 커리큘럼을 짜고 더 좋은 학습지를 찾아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또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 자금 마련을 위한 저축, 대출, 이자 따위였다. 공부 잘 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목표,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에 눈이 멀었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이루겠다는 조급함까지 더해졌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들은 분명 ’이상있음‘ 이었지만 내 몸의 노화처럼 그저 아이를 키우며 생기는 ’이상없음‘ 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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